연봉 3억원 받는 꿈의 직장 : 글로벌 투자은행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연봉 3억 원 받는 직장인 이야기
"당신이 지금 서 있는 곳은 당신이 과거에 꿈꾸었던 자리이다"
- 밥 프록터
2011년 3월. 나는 뉴욕 200 West Street 건물 앞 벤치에 앉아 있다.
29살 청년은 높게 솟아 있는 건물을 바라보며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여기 앉아 있어도 되는 걸까?'
골드만삭스. 글로벌 최고의 투자은행.
영화 월스트리트의 고든 게코가 수천만 원짜리 정장과 수억 원짜리 시계를 차고 고객과 은밀하게 수조 원짜리 딜을 논의하고 있는 장소이지 않을까?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수백억 원 대의 높은 연봉을 받으며 금요일 밤마다 게츠비 같은 파티를 뉴욕 한복판에서 하고 있지는 않을까?
30분 뒤 벤치 앞으로 갈색 더블브레스트 정장을 입은 한국 사람이 걸어온다.
"Hey Bro, It's fucked up. Let's get some drinks"
룸메이트 형은 2009년 말 금융위기의 여파로 직장을 잃었고, 나는 가난한 석사 과정 유학생이었다. 룸메이트형은 차로 중고로 팔고 1,000만 원 남짓한 남은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가난한 유학생으로 매주 교수님께 리서치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급 300 달러로 생활하고 있는 처지였다. 게다가 이제 두 달 뒤면 석사과정도 졸업이다. 아직 어디 하나 취직도 안된 가난한 석사 유학생과 금융위기로 실직한 한국계 교포 - 이렇게 둘은 바퀴벌레 나오는 뉴욕 퀸즈에서 월 150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때 룸메이트형은 골드만삭스 인터뷰를 망쳤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날 합격했다. 골드만삭스는 2009년 금융위기로 대량으로 직원을 해고했고, 2011년 당시 다시 직원이 필요했었다. 그것도 싸게 쓸 수 있는 낮은 임금의 한국계 교포 같은 사람이 딱 좋은 상대였다.
그리고 나는 그 해 5월에 한국으로 귀국하여 국내 모 증권사에 신입직원을 취직했다. 그 해 내 나이 29살. 미국을 떠나기 전 맨해튼 다리를 걸어서 건너면서 나는 룸메이트형에게 이런 말을 했다. (사실 그날 Brooklyn Bridge를 건너는 줄 알았는데 건너가 보니 Manhattan Bridge였다. 우리 둘 다 돈을 아끼려고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일반 휴대전화를 쓰고 있었다.)
"형, 저도 형처럼 글로벌 IB에 취직하는 게 꿈입니다. 저도 Investment Banker가 되고 싶어요."
아이러니하게도 룸메이트 형은 나에게는 꿈의 직장인 골드만삭스를 약 2년여 만에 떠나 글로벌 신용평가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나는 국내 증권사 신입직원으로 반포지점으로 발령받았다.
'미국에서 석사 학위 받은 29살 증권사 지점 막내'
이게 그 당시 나의 타이들이었다. 그렇게 나는 증권사 리테일 영업직으로 내가 꿈꾸는 "투자은행"으로의 여정을 시작했다.
2024년 1월 2일. 나는 글로벌 투자은행에서 글로벌 사모투자 담당자로 일하고 있다. 신년 모임 때 나는 한국 지점 전 직원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다.
"여러분이 앉아 계신 지금 그 자리, 그리고 제가 서 있는 이 자리는 제가 13년 전에 꿈꾸던 자리였습니다."
감동적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이 책을 쓰는 이유는 연봉 3억 원 받는 글로벌 투자은행 직장을 여러분에게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로 내가 13년간 금융업계에서 금융인으로 일하면서, 그리고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믿었던 믿음이 글로벌투자은행에서는 얼마나 형평 없이 무너지고 무시되고 있는지를 알려주기 위함이다.
또한 당신이 꿈꾸는 직원이 글로벌 투자은행이던, 잘 나가는 사모펀드의 펀드매니저이건, 부동산 PF팀장이건 간에 변치 않는 사실이 하나 있다.
"이 모든 사람은 직장인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곳에 나의 삶을 맡기는 것.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모든 직장인의 운명이다. 그리고 이 운명은 글로벌 투자은행에 와서 내가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