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독한 부자와 성실하지만 가난한 자에 대한 편견
feat. "부의 속성" by 김승호
얼마 전 넷플리스 드라마 "더글로리"가 대중들 사이에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대중들은 악덕한 부자들의 부당한 폭력과 횡포, 그리고 비열함과 야비함에 치를 떨었고, 주인공 문동은의 치밀한 복수극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문동은은 약자이자 부자들의 악덕함에 피해자였으나, 장기 간에 걸친 치밀한 복수의 계획과 약자들 간의 연대를 통해 "악한 부자들"은 하나둘씩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이나 드라마, 심지어는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익히 들어온 "흥부와 놀부"같은 전래동화에서도 부자들의 악독함은 단골 소재이다. 그리고 가난한 이들의 선함과 간절한 노력의 끝에 가난한 자들에게 언젠가는 복이 오는 해피엔딩을 대중들은 좋아한다.
심지어는 우리가 믿고 따르는 부모님 조차도 "악덕한 부자는 벌을 받고 선하고 성실한 자에게는 복이 온다"는 믿음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에게 전파한다. 초등학교 시절 옆 집에 살던 친구 집은 대대로 "땅 부자" 집이었다. 현대 그랜저만 타고 다녀도 부자 소리를 듣던 90년대에 외제차를 모는 아버지를 두고, GUESS 청바지와 나이키 운동화를 신던 친구는 우리 또래 사이에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동네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그 집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그 집 엄마는 우울하게 살고 집안 분위기도 안 좋다는 등등 단골 가십거리였고, 은연중에 엄마도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지 말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수년이 지나고 내가 대학생이 되었을 무렴, 그 집 아버지가 사업 실패로 집안이 뿔뿔이 흩어졌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동네 사람들은 반응은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부자에 대해 이중적인 태도를 가진다. 부자를 보면 "돈은 많지만 행복하진 않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돈이 없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 부자들은 돈은 많지만, "악덕하고 우울한" 사람일까? 안타깝게도 나는 실제 부자를 본 적이 없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몇몇 부자에 가까운 사람들과 잠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는 있었으나, 나는 부자가 아닌지라 진짜 부자의 삶을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다행히도 부자들은 여러 가지 동기로 인해 가끔 책을 쓰기도 하는데, 우리는 부자들이 쓴 책을 통해 "부자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알 수 있다.
"돈의 습성" 김승호 회장님은 누가 봐도 부자다. 4000억대 자산가로 알려진 부자인 김승호 회장님의 자산은 "남들의 도움이 없이는" 정확하게 계산하기 힘들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부자가 되기 위해 가져야 할 능력을 4가지로 구분하고 있는데, 1) 돈을 버는 능력, 2) 돈을 모으는 능력, 3) 돈을 유지하는 능력, 그리고 4) 돈을 쓰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돈을 버는 능력은 자신의 사업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영업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저자가 말하는 돈을 버는 능력은 직장에서 월급은 받는 능력이 아니다. 즉 직장인이 부자가 되려면 대기업 임원이나 사장이 되어야 하는데, 그 확률이 전체 직장인의 0.7%로 극히 낮은 확률이다. 반대로 사업에 성공할 확률은 10%인데, 임원이 될 확률보다 무려 14배 높다. 하지만 저자는 직장인도 돈을 버는 능력을 만들 수 있는 데, 그것은 동업을 한다는 마음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우리 일반적인 사람들은 부자들의 "돈을 버는 능력"에 열광한다. 하지만 저자는 "돈을 모으는 능력"과 "돈을 유지하는 능력"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돈을 모으는 능력은 "관리"의 영역이다. 회계적인 문제, 세무적인 문제, 사람을 관리하는 일, 투자나 사업의 세세한 문제들은 해결하는 능력이다. 이런 것에 소홀히 하면 빚을 크게 지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직원의 횡령으로 큰돈을 잃게 될 수도 있다. 또 돈이 많아지면 사치와 허영에 쉽게 빠지게 때문에 큰돈을 쉽게 써버리거나. 혹은 부자라는 자만감에 빠져 자칫하면 스스로 선생이 되어 자만감에 빠지게 될 수 있다.
또한 "돈은 쓰는 능력"도 부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능력이다. 작은 돈이라도 함부로 쓰게 되면 큰돈 쉽게 쉽게 써버릴 수 있고, 반대로 내가 아낀다고 남에게도 절약을 강요하면 자칫 인심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들이 나를 "부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돈은 후하게 써야 할 때와 돈을 아껴야 할 때를 구분하여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결국엔 김승호 회장님이 말하는 부자란, 어떠한 결과물이 아니라 "작고, 큰 능력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그 능력들은 하루아침에 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수 십 년간에 걸쳐 배움과 경험, 노력과 지혜라는 내부적인 요소와 기회와 운이라는 외부적인 요소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또한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것은 아니고,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본다면 부자란 완성될 수 없고 평생에 걸쳐 만들어 가야 하는 "지향점"으로 볼 수도 있다.
우리가 부자에 대한 잘못된 시각은 가지고 있듯이. 반대로 "가난한 자"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즉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에서 처럼 가난한 사람은 "열심히 일하지만 운이 없는 사람" 또는 "부자들의 착취와 부당한 대우로 인해 만들어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행복하면 됐어"라고 말하거나 "탐욕스러운 부자보다는 워라밸이 있는 삶"을 지향하기도 한다.
하지만 김승호 회장이 말하는 가난한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비참하다. 먼저 가난은 인간을 돈에 노예가 되게 만든다. 돈에 노예가 된다는 것은 자유의 박탈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의 존엄성과 품위마저도 박탈되고, 말 그대로 비참한 삶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가난은 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가난하면 마음에 울분이 생기고 쉽게 화가 나서 나의 정신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쉽게 불화를 만들어 인간관계마저 파괴한다.
"악독한 부자"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과정되었 듯이,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가난해지지 않는다"라는 믿음 역시 과장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성실하게" 살면 가난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가난은 "성실하게" 살아도 누구에게나 올 수 다. 2021년 기준 직장인 평균 은퇴연령은 51.7세이다. 만약 내가 35살에 결혼하여 37살에 첫 아이를 낳았다고 가정한다면 첫째 아이가 15살이 되었을 때 나는 직업을 잃게 된다. 만약 직장은 다니는 동안 "적당한 절약과 적금"으로 51살의 은퇴를 준비하였다면, "성실한 나"에게는 당연히 없어야 하는 "가난"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김승호 회장인 말하는 "부자가 되기 위한 여러 가지 행동들"을 반대로 뒤집어 생각하면 이런 행동들을 하지 않으면 가난해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워라밸을 지킨다면서 나의 작은 희생도 포기하지 않는 태도, 도움이 필요한데도 자존심을 지킨다면서 남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 태도, 품위 없는 태도, 욕하고 투덜대고 경박한 행동과 말을 서슴없이 하는 태도, 시간이 많다고 생각해서 공부를 게을리하고 투자에는 근처에도 가지 않는 태도 등 이러한 태도 하나만으로 가난에 이른다고 할 수 없으나, 장기간 쌓이고 이를 자신의 삶에서 지속, 반복, 강화한다면 "가난한 삶"은 언제든지 나한테도 찾아올 수 있다. 즉 "가난한 사람" 역시 "부자"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결과물이 아닌 부정적인 삶의 방식과 태도가 축적된 "과정"이기 때문이다. 다만, 부자와는 그 방향이 반대일 뿐이다. 부자는 긍정의 시간과 태도를 축적해 나가는 과정이고, 가난한 자는 부정의 시간과 태도를 축적해 나가는 과장인 것이다.
모든 부자들이 행복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고, 모든 가난한 자들이 불행한 삶은 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는 것, 그리고 가난한 자가 되는 것은 모두 오랜 시간 동안 쌓아온 본인의 태도와 선택의 "과정"이다. 그리고 그것은 마치 중력의 법칙처럼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굳어지고, 빨라지고, 서로를 끌어당긴다.
과연 나의 하루는, 그리고 나의 지금 이 시간은 부자의 과정이라는 선상에 서 있는 것일까? 아니면 가난의 과정이라는 선상에 서 있는 것일까? 한 번쯤 생각해 볼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