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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셋진 Jan 24. 2024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낙성대 언덕집과 함께하던 첫 주는 누구보다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과 더불어 내 향기와 흔적으로만 빼곡히 가득 채운 방 안을 한참 동안 감상했다.


내가 마련한 첫 자취방은 거실이 있고 넓은 방 옆에 또 다른 방이 있고 이런 구조가 아닌 원룸이었다.

신발장에서 신발을 벗으면 바로 부엌이 반겨주고 몇 발자국 더 나아가면 침실이 있고 그냥 일반적인 원룸이었다.

생활하기에 좁고 적막하다는 생각 자체는 나지 않았다.

혼자 지내면 말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내가 떠들지 않으면 고요함이 공간을 뒤덮는 게 당연하지만 나는 그 고요함마저 즐겼던 것 같다.

조용함 속에 나의 따뜻한 온기와 활기가 느껴지는 게 그저 좋았다.


혼자 마련한 공간에서 더 이상 나는 부모님이 주시는 억압과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었다.

밤늦게까지 블루투스 스피커로 노래를 주구장창 틀어놔도 시끄럽다 소리 줄여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배가 고파 출출할 때면 집 앞 편의점에 내려가 구워 먹을 만두를 사서 연기 풀풀 나게 구워 먹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내 침대 위에서 턱을 괸 자세로 편하게 누워 과자 부스러기를 흘리며 영화를 봐도 열불을 내며 혼내는 사람도 없었다.


왜 진작 서울에서 독립을 하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를 표현하자면 일주일간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모두 요리를 해서 챙겨 먹었다.

그래도 내가 요리를 못하는 편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음식들이 꽤나 되었다.

그냥 무작정 나가서 동네에 큰 마트를 들려 이것저것 사 와서 내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자체가 너무 뿌듯하고 좋았다.

서울에 아는 친구들이라고는 집 구할 때 잠자리를 제공해 준 친구 한 명뿐이었고 내가 한 요리를 먹어줄 사람조차 없었다.


하지만 전혀 외롭거나 고독하지 않았다.

그냥 런 나의 공간 자체를 즐기고 있는 내가 좋았다.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요리도 빠짐없이 해 먹고 집에서 좋아하는 영화를 보며 스르륵 잠이 들기도 하고 청소도 깨끗하게 열심히 하며 집에 온기를 더해갔다.

이 행복과 동시에 내가 서울에 온 이유를 다시 머릿속에 이따금 상기시켰다.


'이제 다음 달부터 다가오는 월세는 어떻게 해결하지?'

'내가 서울에 온건 하고 싶은 걸 찾는 건데 난 뭘 하고 싶지?'


내가 꿈을 찾으려고 이곳에 왔는데 나의 꿈은 대체 뭔지, 가 잘하는 건 무엇인지 고뇌가 뒤엉키며 머릿속이 살짝 복잡해졌다.

이대로는 내가 좋아하는 걸 알 길이 없었다.


무언가라도 찾으려면 두 눈 질끈 감고 부딪혀야 했다.


노트북을 켰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야 했기에 몸을 움직이고 생을 하며 돈부터 벌며 하고 싶은 것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생각 저 한편으로는 나를 탐구하는 시간도 가지며 돈을 벌면 어떨까 하는 의견도 뇌에서 조율되고 있었다.


무작정 검색을 했다.

나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기도 했고 음식이나 섭취하는 것에 대하여 꽤나 관심이 있었고 그 자극 포인트가 검색할 때 크게 작용한 것 같았다.

또한 한참 영양사에 지원하려고 열심히 준비할 때 취득했던 바리스타 자격증이 문득 떠올랐다.


'커피?'


꽤 괜찮았다.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그래, 이거다.


손가락으로 펜을 까딱까딱하며 노트북 앞에 새하얗게 펼쳐져 있는 커다란 수첩에 '커피 관련 직업 찾기'를 한 줄 적어 내려갔다.

곧이어 노트북 타자기를 타닥타닥 두드려가며 카페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우연하게 발견하게 된 카페 정직원 모집.

'커피빈 바리스타 정직원 모집 공고'였다.


커피빈에서는 커피에 대한 열정과 전문성을 가지고 진취적인 자세로 즐길 줄 아는 인재를 원하고 있었다.

어머 이건 나잖아?라고 함박웃음 지으며 지원하기 위해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했다.

모집 공고에 지원을 했고 며칠 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면접도 봤다.


이후 합격 연락을 받았고 4일간 진행되는 신입 바리스타 교육을 받게 되었다.


교육을 받으러 가는 곳은 내가 살고 있는 낙성대와 반대 방향으로 거리를 두고 있는 삼성역 코엑스 근처 건물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집에서 일주일간 요리를 해 먹고 난 후 한번 더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아직 가보지 못한 서울의 지역이 많았다.

교육을 받으러 가면서 처음 삼성역쪽을 마주하게 되었다.

삼성역 근처 건물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회사 건물도 많이 즐비해 있었고 무엇보다 코엑스 스타필드가 엄청나게 크게 나를 반겨주고 있었다.

가지런히 즐비한 건물들을 지나 커피빈 교육장으로 입장했다.


신입 바리스타 교육은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점심시간을 제외하고 꽤나 긴 시간 동안 이뤄졌다.

그때 교육에 참가한 사람들은 50명 남짓 되어 보였고 남녀 할 것 없이 성비는 균등했다.

본인이 은 옷에 '교육생 OOO' 명찰을 달고 책임감 있게 교육을 진행하게 되었다.


교육은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커피빈의 색깔답게 보라색으로 칠해진 커피빈 OT일지 책자를 주었고 그 안에는 커피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고객 응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커피빈 메뉴의 모든 레시피가 담겨 있었다.

매번 커피빈을 마시면서 이건 어떻게 만들까 했던 모든 음료들의 맛을 어떻게 제조하는지 알 수 있었던 건 참 좋았던 부분이라 생각한다.

전국의 커피빈 매장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많은데 각 지점의 지점장분들께서 4일 중 하루씩 교육생들을 위해 교육을 진행해 주셨다.


고객을 대할 때 어떤 미소와 대답으로 고객들을 반겨야 하는지 서비스업의 기초부터 적용시켰다.

그리고 어떠한 상황에서 칭찬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고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에 대하여 즉석으로 대처하는 법 등도 체험해 보는 경험을 가졌다.

이러한 서비스와 더불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 중의 하나가 커피빈에서 제공하고 있는 음료의 레시피로 똑같이 만들어 어느 지점에서든 같은 맛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군가 더 마음에 든다고 초코파우더를 1T 스푼 더 넣거나 또 어떤 음료에서는 많은 과정 중 하나를 빠트려 음료 맛의 본질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4일 연속으로 아침부터 저녁이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낙성대에서 삼성역의 교육장까지 체력과 정신력을 소비해 가며 교육을 받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물론 교육을 받으면서 50명 정도 되었던 인원이 어느새 4일째쯤엔 30명만 남아있었다.

합격생들 중 첫날부터 나오지 않은 사람들도 꽤 있었으며 2,3일쯤 중간에 도망을 간 교육생들도 여럿 존재했다.

그들도 교육을 받으면서 이 일이 나와 맞지 않겠구나 하며 돌아선 이들도 있을 거고 들고 지쳐서 그만둔 사람도, 커피빈 자체의 시스템이 맘에 안 든다던지 각자의 사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커피빈에 대한 도전이 서울에 올라온 그 순간부터는 삶의 중요한 한 줄기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이 도전조차도 지쳐하고 힘들어한다면 다음에 어떤 무엇도 용기 낼 수 없을 것 같았고 쉽게 포기하는 법을 먼저 배울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 교육을 끝까지 완수하여 수료증도 받고 싶었고 주어진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임하니 나는 정말로 커피빈 교육을 모두 완료한 승리자가 되어 있었다.

교육을 모두 수료한 교육생들에게 수료증을 나누어주며 한 사람씩 이름을 불러주며 박수를 받는 시간을 가졌다.

내 이름을 당당하게 불러주는 것을 들었고 나도 앞에 나가서 수료증을 받으며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동시에 커피빈 지점 발령도 함께 발표해주고 있었다.


내가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커피빈 사당역점'이었다.

서울에서 내가 내 힘으로 얻은 첫 발령지였다.


너무도 뜻깊었다.


이 일이 나에게 앞으로 잘 맞을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있는 건 없었지만 내가 해냈다는 기쁨을 마주했다.

드디어 처음으로 울에서 일할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서울, 커피빈, 그리고 첫 근무가 주는 설레임.

이 느낌을 고이 간직한 채 커피빈 사당역점으로 발걸음이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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