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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May 10. 2024

머세드의 봄

봄날의 산책 

머세드에는 한국과 같은 겨울은 없다. 기온이 영상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눈도 오지 않으며 당연히 얼음도 얼지 않는다.  대신 겨울에는 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 겨울에 잔디가 파랗다. 혹시 겨울에 춥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여기 살아보니, 겨울이 한국의 겨울보다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에서 입던 오리털 파카 그대로 입는다. 아마 이 더운 날씨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면 여기 머세드에서는 3월인 것 같다. 온도가 10도에서 20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웅크렸던 몸과 마음을 열게 한다. 반팔과 긴팔의 옷이 섞여있다. 사람들은 풀장으로 나와서 ' The season of the year라고 하면 한껏 태양을 즐긴다.


 5월은 이제 여름으로 변환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5월 중순이면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어간다.  초록색 잔디와 잡초들은 탈색을 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절대 죽지 않는다. 겨울에 다시 그 초록의 본색의 드러낼 때까지 낮은 포복으로 숨죽이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하여 산책하기에 딱 좋다. 


봄은 꽃의 계절이다. 한국에서 벚꽃, 개나리, 진달래 이렇게 무리 지어 사람들을 현혹시킬 때 여기서는 장미가 절정을 이룬다. 동네 모든 집에서 장미를 키우는 듯하다. 그리고 한국에 비해 장미가 꽤 오랫동안  꽃을 피우고 있다.  색깔도 다양하다. 이제는 두 개의 색이 섞인 장미도 제법 많다. 이 동안 장미는 아무 거리낌 없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최대한으로 자랑하고 싶어 하는 욕망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어찌 그냥 지나갈 수 있으랴. 모자 벗어서 인사하고 아름답다고 한마디 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장미를 키우시는 집주인 분들에게 들리지 않은 감사의 말을 한다. 



장미만 꽃인가? 다른 꽃들도 봄을 즐기러 최대한 단장하고 집 앞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다. 장미처럼 나대지는  않지만, 절대로 사람들이 그냥 지나가게끔 놓아두지 않는다. 이중에는 집의 뒤뜰에 있었으면 잡초로 뽑힐 뻔한 꽃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도 봄에는 모든 게 용서가 된다고 믿는 듯 당당하다. 잡초와 들꽃이 동음이의어이지만 지나가는 객도 그냥 미소를 띠며 그들을 바라본다.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다양한 색채와 모양, 그리고 크기로 꽃의 잔치는 이들이 하고 있다.  장미는 옆에서 거들뿐.  



이 기라성 같은 꽃들 중에서도 우리의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이 있다. 선인장꽃. 이제까지 선인장 열매는 보았어도 꽃은 처음이다. 구슬처럼 영롱하다. 파스텔조의 활짝 핀 꽃들은 혹시 조화가 아닌가 하고 만져보게 된다. '자신의 꽃을 보호하고자 이렇게 선인장에 가시가 달린 거구나'라고  말도 안 된다는 것 알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황홀한 순간이었다. 



이렇게 봄날은 꽃과 함께 와서  아름다운 추억과  상쾌한 공기의 감촉을 남기고 가고 있다. 아쉽다.  예전부터 왜 '봄날은 간다'는 제목의 노래와 영화가 계속 재생되는지 알 것 같다. 이제 여름이 화살촉 같은 햇살과 함께 올 것이다. 하지만 이 봄날의 기억으로 우리는 아쉬움보다는 다음 봄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른 계절들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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