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글쓰기의 순위가 하도 밀려서, 21일 동안 글을 쓰는 연습을 하는 글쓰기 클럽에 들어갔다. 이름하여 매력글쓰기 클럽. 이제 4일째. 매일 자신이 하던 블로그나 브런치 플랫폼에 글을 올리거나 아니면 클럽장이 제시하는 그날의 글감을 주제 삼아 자신들의 생각을 펼치게 된다. 나같이 의지가 박약한 사람은 이러한 타인의 격려와 아이디어가 도움이 많이 된다.
글감 중 하나가 '나는 왜 글을 쓰려하는가?'였다. 사실 이 질문은 자주 하던 거라 이전에도 정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집중력은 뻥튀기보다도 약한지라 생각의 꼬리를 이어 잡지 못하고 잊혀 가곤 했다. 그래서 이 기회에 각 잡고 책상 앞에 앉아 솔직하고 간단하게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려 한다.
지난 2월 초에, 딸내미가 엄마 아빠의 결혼 38주년, 자신의 승진, 그리고 내 생일, 등 지난 1년 동안 기념할 일을 다 몰아서 축하한다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한턱을 냈다. 정말 생각지도 못한 맛을 내는 창의성과 프레젠테이션의 아름다움에 저절로 탄성을 지르며 즐겁게 음식을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명치까지 음식으로 다 찬 것 같았다. 아직 코스의 1/3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음식이 나올 때마다 등 뒤에서 땀이 났다. 큰 맘먹고 우리를 대접하는 딸을 실망시킬 수는 없어서, 나오는 음식을 적게 먹는 것으로 모면하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대화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기 어려웠다. 그냥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다리며 매스꺼움과 혼란의 시간을 보냈다.
끝나고 호텔에 와서, 몸이 힘들어 그냥 자리에 누웠다. 식당에서 보낸 시간이 두꺼운 검은 천으로 덮여버린 느낌이었다. 1시간이 지나도 잠이 들지 못했다. 자리에서 일어나 들고 갔던 ipad를 켰다. OneNote를 켜서 찍어 놓은 음식사진을 순서대로 '붙이기'를 하였다. 그리고 각 사진마다 그 음식의 재료들, 그 음식을 처음 보았던 순간, 첫 숟갈을 떠먹었을 때, 다 먹고 나서의 느낌을 하나씩 떠올리며 적어보았다. 그랬더니 음식을 처음에 먹었던 그 신기함과 즐거움이 그대로 살아났다. 기억의 재정리가 끝나고 나니 새벽 3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참 좋은 날이었다.
지난 3월, 문득 내가 이제까지 세월 동안 상당히 내 인생의 중요한 일들이 3월에 많이 일어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미국으로 오던 때,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던 때 등등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나도 결코 조용히 살던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누구에게 나의 이야기를 한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나아가 내가 나 자신에게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한 번 가버린 세월에 나는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한 번, 내 일생에서 그달의 인상 깊었던 일들을 달별로 정리해서 글로 써자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 좋게 남아 있는 기억 우선으로 정리하기로 하였다. 벌써 2달의 기억을 끝내고 세 번째 달의 기억을 적고 있는데, 적다 보니 지난날의 나와 만나는 것이 나에게는 어렵지만 뿌듯한 경험이 되어 버렸다. 지금 만나는 과거의 나는 예전의 나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아마 현재의 내가 보내는 애정의 눈길을 받는 과거의 나 일 것이다. 글로 씀으로써 나는 그 애정의 눈길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안 좋은 기억들도 많이 있다. 내가 그것들을 정면으로 바라보고자 할 때, 아마 나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아마, 글을 쓰려고 하는 이유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 필력의 자람에 따라, 아니면 아무런 이유 없이 바뀔 것이다. 현재로서는, 나는 나의 순간을 기록하고, 그 기록된 나의 순간들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글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