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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H Apr 18. 2023

한국의 인구문제

시평

인구 문제. 

 수십 년 전에는 많아서 문제였고 지금은 없어서 문제랜다. 우리나라 얘기다. 그때 많긴 했다. 어길 가나 사람이었고 학교 교실 수가 모자라 오전 오후반으로 나뉠 정도였으니까. 정말 북적이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어딜 가나 사람들이 북적인다. 보니까 그동안 인구는 계속 늘어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큰일이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애들이 없어서 학교가 문을 닫는다느니 이러다 나라가 없어진다느니 하는 자극적 표현들이 난무했다. 여전히 북적이고 있는데? 그럴 때면 그들은 미래를 들이밀며 계속 경고했다. 얼마 후면 노인들만 북적이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공식적인 노인폄하 발언이 매스컴을 타려면 노인 혹은 준 노인이 최종 컨펌을 할텐데 저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싶었다. 아무튼 그래도 사람들은 애를 낳지 않았다. 국가에 반항하려는 게 아니라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였다. 국가는 대의에 호소하는 게 안 먹힌다는 걸 깨닫고 개인에게 이익을 주기 시작했다. 출산장려금, 각종 혜택 등이 그것이다. 육아에 들어가는 에너지의 약 0.1% 정도를 과감하게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애를 낳고 국가가 주는 혜택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국가가 주는 혜택을 받으려고 애를 낳는 사람은 없었다. 이상이 지구 육지 면적의 몇천분의 1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남한의 면적은 약 10만제곱킬로미터. 인구는 약 5천만이다. 우리와 비슷한 면적을 가진 나라로는 쿠바, 니카라과, 온두라스, 과테말라, 그리스, 포르투갈, 헝가리,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등이 있다. 이들의 인구를 순서대로 나열하면 1100만, 600만, 720만, 1300만, 1100만, 1000만, 1000만, 720만, 30만이다. 우리보다 한참 적다. 이들도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그게 ‘적은 인구’ 때문은 아닐 것이다. 소위 유럽을 대표한다고 알려진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태리를 보면 인구가 6천만에서 8천만이지만 면적이 한국의 두배에서 세 배고 인구가 많아서 문제라는 중국과 인도를 보면 인구가 10억을 넘지만 한국 면적으로 환산하면 각 1400만, 3800만이 된다. 그러나 이들은 출산장려의 반대인 산아제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또한 전 지구적으로는 인구가 80억이다. 덕분에 모든 동식물이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매일같이 애를 낳으라고 협박하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 못하고 그저 사람들의 심기만 불편하게 만드는 저들은 과연 누구인가, 국가인가? 언론인가? 국가도 언론도 주요 구성원이 물갈이가 되는데 어째서 지난 대략 20여 년간 똑같은 주장을 똑같은 언어로 되풀하는 것인가. 

 일단 첫 번째로 떠오르는 생각은, 저들은 북적거림에 대한 불편함의 경험이 없을 거란 조심스런 예측이다. 폭우가 내릴 때 찢어진 우산을 쓰고 걷다가 결국 다 젖어버리고 마는 사람들을 통유리 너머로 구경하는 위치일 확률. 둘째로 1%와 99%가 만들어내는 시스템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사람들일 가능성이다. 물건을 만들거나 행사를 기획하면 구름같은 소비자들이 몰리고 그에 따른 매출 전표를 작성하는 이들. 마지막으로 아이를 낳아 다른 집 아이가 갖지 못하는 우수한 생활환경과 교육환경을 제공한 후 그 아이들이 모든 면에서 우월하게 성장하여 피라미드의 꼭지점 근처에 자리잡을 때 피라미드의 바닥을 튼튼히 받쳐줄 아이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부류다. 구질구질 설명했지만 그냥 한 마디로 ‘기득권층’이다. 이들은 북적거림의 기반 위에서 성장했고 북적거림의 유지를 선호한다. 또한 북적거림의 부작용으로부터는 안전하게 분리되어 있다. 이들의 주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실리보다는 대의 쪽에 치우쳐 있다. 당연한 것이, 실리를 논하면 그들의 실리가 되므로 쉽게 들통나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산자들이 어려운 형편에도 애를 낳아 빠듯하게 키우면서 기본 교육을 이수시킨 후 사회로 내보내 그 아이들이 자신과 그 후손들이 경영하는 조직에서 건실한 톱니바퀴가 되길 원한다.   

   

좋은 나라. 

 너무 막연한 표현이다. GDP가 높은 나라, 국방이 튼튼한 나라, 위인을 많이 배출한 나라, 문화가 화려한 나라. 음식이 맛있는 나라, 치안이 좋은 나라.. 이 모든 요소에 전부 해당되는 나라가 있을까? 있다. 대한민국이다. 돈도 많고 무기도 많다. 유명인도 많이 나왔다. 실체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한류의 규모도 상당하다. 음식 다양하고 맛있다. 치안 좋다. 그런데 이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사상적 애국자 아니면 최근에 좋은 일이 생긴 사람들, 그리고 이 나라가 살기 좋은 사람들이다. 나머지는 사실상 ‘버티면서’ 산다. 

그래서 좋은 나라라는 개념을 진실에 가깝게 정리하기 위해 삶의 질이니 삶의 만족도라는 기준이 등장했다. 이걸 단순한 설문으로 측정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소득보다야 실제에 가깝겠지. 선진국으로 진입했다는 대한민국은 삶의 질에서 분명 하위권이다. ‘이 나라를 뜨면 어디가 좋을까’가 청년층에서 흔히 하는 잡담이다. 그 이유를 분석하기 시작하면 과도한 경쟁, 만연한 갈등과 혐오 등등 끝도 없이 의견들이 나오겠지만 그 의견들의 원인을 조금 떨어져서 바라보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역시 <북적거림>이다.  

    

 정확하게 인류의 시작과 함께 갈등이 시작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이래저래 모여 살면서 시간이 흘렀고 어느덧 먹을 것이 모자라거나 보금자리가 비좁아지는 날이 왔다. 북적거림의 시작이다. 그럴 때마다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질서와 규율 속에 합리적인 공생 방안을 모색하는 건 초기인류부터 21세기 문명인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후순위였다. 기본적으로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의 것을 힘으로 빼앗아왔다. 빼앗긴 자들은 감내와 저항 두 가지 선택이 있었으나 둘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류의 갈등을 설명할 항목은 넘쳐나겠지만 나는 지금 단 하나의 이유를 든다. <한정된 자원 / 과도한 인구>     

 세계 각국의 문제해결 방식을 보면 대동소이하다. 분쟁 조정의 제 1 원칙이 힘의 논리인데 그걸 감추고 약자 보호와 인류 공생을 전면에 내세우다보니 모순에 빠진다. 이런 부조리를 극복하는 방법은 약자들이 단결하는 수밖에 없는데 보통은 약자들이 서로를 혐오한다. 숫자의 열세를 극복하는 기득권층의 훌륭한 전략이다. 인류 문명의 폭주와 환경파괴로 지구가 멸망한다 어쩐다 하지만 종 자체가 절멸하는 일은 없을 것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인류는 아마도 북적거림으로부터 안전한 부류가 될 것이다. 현재 세계는 그 길을 따라 착실하게 나아가고 있고 변수나 드라마틱한 반전은 보일 기미가 없는데도 양보와 절제의 미덕으로 전인류가 공생하자는 슬로건이 여전히 이론으로서 활개 치는 아이러니가 가슴 아프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다. 소위 선진국의 말석에 끼어서 한편으로 뿌듯하지만 그 부작용을 감당하느라 국민 모두가 피곤한 나라. 지난 몇십 년의 역사를 보면 입으로나마 공생을 추구했던 정권과 대체로 사익을 추구했던 정권이 교차적으로 이 나라를 지배해왔다. 사익추구 정권 하에서는 할 일이 그리 다양하지 않다. 나와 내 가족을 지켜내는 일에 에너지를 올인하면 그만이다. 와중에 같은 약자끼리 투쟁하더라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다. 정말 쓴소리를 하고 싶은 건 그나마 선의를 표방했던 지배자들이다. 공동체의 미래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다면 당장 학교가 문 닫는 것을 걱정하기 전에 이 나라에 학교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야 할 것이며, 노인이 득시글거리고 아이가 없는 세상을 걱정할 때 그 노인들이 어린이였을 때 애가 많아서 걱정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려야 할 것이다. 

 이 나라는 국토 및 자원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다. 인구가 2,3천만이었던 소위 적정인구의 시절은 전쟁 및 신들린 개발붐으로 뭔가를 차분하게 통계낼 여유가 없었다. 모든 게 어느 정도 안정된 지금 옛날의 산업역군은 노인이 됐고 아이는 옛날보다 적어졌다. 적정인구로 가기 위한 과정에 정확히 위치해 있다. 이 흐름이 뭐가 문제인가? 아니 당장 표면상의 문제는 있다. 옛날같지 않다는 것이다. 인구가 폭발하고 아이들이 넘쳐날 때 거품을 한아름 이고 꽃피우던 사업들이 사양길에 접어들어 사람들이 손해를 보고 있고 그것 역시 과정이다. 그 손해가 치명적인 부류와 단지 기분 나쁜 부류를 정확히 구분해내는 게 선의의 지배층이 할 일이다. 전자일 경우 국가의 복지가 투입되어야 한다.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은 예산이란 항목 자체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다. 이런 곳에 쓸 돈이 없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다.      


 가임기의 남녀가 애를 안 낳는 게 그렇게 걱정이면 혜택을 주기 전에 왜 안 낳을까를 생각해 보는 것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조금만 성의있는 시선으로 살펴보면 가진 자들은 애를 많이 낳고 그렇지 않은 자는 포기하는 현실이 보일 것이다. 애를 낳아봐야 자신이 겪은 현실을 그대로 답습할 확률이 높다는 걸 서민들이 알아버린 것이다. 뇌리에서 아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리고 ‘사람’들이 기회에 있어 평등한 세상을 만든다면 가진 게 없는 사람도 애를 낳고 싶어질 것이다. 뜬구름 잡는 소리 말고 구체적 예를 들어보라고? 초,중,고 무상급식에 학비 면제를 실시하면 애를 가진 학부모들이 좋아한다. 그러나 애를 안 가진 사람들이 애를 낳고 싶어지는 동기가 되진 못한다. 비슷한 시기에 서민과 고위공직자가 같은 종류의 죄를 짓고 같은 형량의 벌을 받는다고 치자. 남의 집에서 1억을 훔친 절도범과 1억을 횡령한 국회의원이 똑같이 2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수감되는 장면이 뉴스에 나왔다고 치자.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그리고 가슴 속에 뭔가가 꿈틀할 것이다. 기득권층의 범죄를 눈감아준 판,검사가 적발되어 서민의 절도나 폭행보다 더 큰 벌을 받는 일이 벌어졌다. 또다시 놀란 사람들은 이제 가슴속 꿈틀거림의 실체를 이해할 것이며, 이런 세상에 애를 낳고 키워볼 야망이 생길 것이다. 지금은 출산장려금보다 이런 것에 더 투자를 할 때다.   

   

 하지만 그런 날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쉽게 안 온단 말은 어렵게 온다는 뜻이고 (물론 그 전에 지구라는 행성이 모종의 결단을 할 수도 있다) 그 어려움은 아마도 시기와 관련이 될 것이다. 2차 베이비붐 세대가 노인이 되어 이 나라를 노인만 북적거리는 나라로 만들고 사라진 후, 위에서 언급한 적정인구가 되었을 때 사람들이 하나 둘 자각을 할 것이다. 북적거리지 않은 공간에서 서로를 혐오하지 않고 다같이 잘 먹고 잘 살자는 주장이 비로소 먹힐 것이고 그들은 방법을 고민할 것이다. 그 세상을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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