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인사이트 에디터 | Opinion | 여행
매번 같은 하루로 지루한 시기가 찾아왔다면 그건 여행을 떠나라는 신호일 수 있다.
비슷하게 흐르는 일상에 여행은 '웃음'을 준다. 같은 일상을 보내다 문득 곧 다가올 여행을 생각하면 설렘에 찬 웃음이 나오곤 한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정하고 맛있는 식당을 찾으며 여행 일정을 세우는 순간도 여행에 대한 기대감으로 웃음 짓게 만든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은 그 웃음이 가장 고조되는 때이다.
노트북을 하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대부분의 시간을 전자기기 사용에 투자하는 무료한 나의 하루에 몸을 움직이는 여행이 필요했다. 걷고 또 걸으며 이곳저곳 구경하는 생기 넘치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토록 가고 싶던 '대만 여행'을 갔다.
짧은 2박 3일 동안 많은 걸 하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며 여행을 즐겼다.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며 그 과정에서 여러 생각과 감정을 느꼈다.
새벽같이 일어나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언제나 공항으로 가는 길을 설렌다. 여행의 시작이니까. 공항은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만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지. 나는 긴 줄을 뚫고 출국 심사를 마친 후 다행히 연착 없이 비행기를 탔다. 기내식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만에 도착했다. 다른 나라로 간다는 게 이리 쉽고 빠르다니, 새삼 놀라웠다.
여행은 타이난을 시작으로 타이베이에서 끝나는 여행 일정이었다.
타오위안 공항에 도착한 나는 재빨리 타이난으로 가는 고속 열차를 타러 갔다. 그전에 짐을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촉박한 상태였다. 한국에서 미리 신청한 여행 지원금 결과도 확인하지 못했다.
원래 계획은 MRT를 타고 타오위안 HSR역으로 가는 거였지만 택시를 탈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역까지 도착했지만 시간은 10분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 예약한 티켓을 발권하고 탑승구까지 찾아가야 한다. 결국 초행길에 길을 헤매다 열차 시간을 바꾸게 되었다. 가뜩이나 빠듯했던 여행 일정이 뒤로 미뤄진 셈이다.
해외에서 열차를 타고 멀리 떠나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나라 열차와 거의 흡사했지만 해외라는 사실이 새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신없이 탄 열차였기에 여유롭게 창밖을 구경하려 했던 계획은 이루지 못한 채 타이난에 도착했다.
타이난은 비는 오지 않았지만 계속 하늘이 흐렸다. 늦게 도착한 탓에 가고 싶던 식당은 다음날로 미뤘다. 가장 기대한 카페 2곳은 모두 손님이 많아 가지 못했다. 그리고 맛있기로 소문난 망고 빙수는 입맛에 맞지 않았다. 첫날 유일한 관광지였던 션농지에는 아기자기하니 예뻤지만 수많은 인파로 복잡하고 정신없었다. 심혈을 기울여 정한 여행 일정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이동하는 데 쓴 하루였다.
그래도 택시를 많이 탄 만큼 걸어서 구경하기 어려웠던 타이난 밤거리를 실컷 구경했고, 친절하고 유쾌한 택시 기사님도 만났다. 감사합니다를 연신 외치시며 한국말 번역으로 자세한 관광지 설명도 해 주셨다. 함께 웃음꽃을 피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우연히 간 일식당에서 맛있는 대만식 돈가스를 먹었고, 타이난 400주년 기념 선물까지 받았다. 덕분에 올해가 타이난 400주년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굉장히 뜻깊은 해에 여행을 왔다는 사실이 기뻤다. 대만 분들의 친절함을 계속 느꼈던 하루였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틀어진 계획 속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
여행에서 완벽한 계획은 없으니 유연하게 바뀌는 여행을 즐겨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이다.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는 데 해외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 나는 해외여행을 갈 때 그 나라의 생활 속 특징을 찾고, 풍기는 분위기를 느끼는 걸 좋아한다. 대만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도 특유의 빈티지한 길거리 감성이 좋아서다. 어딘가 우리나라와 비슷하듯 다른 대만 길거리를 걸을 때면 홍콩 영화 노래지만 중경삼림 OST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대만 여행 동안 가장 눈길이 갔던 건 텀블러 백(뻬이따이)였다. 음료를 가방처럼 편하게 들고 다니는 용도이다. 더운 날씨로 음료 문화가 발달한 대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으로, 대만 소품숍에 가면 빠지지 않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저마다 한 손에 들고 다니는 각기 다른 디자인의 텀블러 백을 보면 각자의 스타일과 개성을 엿볼 수 있다. 하나의 패션 아이템 같았다.
대만의 따뜻한 차 문화로 나타난 특징도 있다. 얼음이 가득한 음료가 흔한 우리나라와 달리 대만은 그렇지 않다. ice로 음료를 주문해도 얼음이 거의 없거나 녹은 상태에 적당히 차가운 음료를 준다. 얼음이 듬뿍 담긴 걸 좋아하는 나에겐 조금 어색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얼음 때문에 음료가 적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면, 대만은 얼음이 적은 대신 음료 양이 많아서 좋았다.
대만은 아침에 외식을 하는 문화이다. 이번 여행은 호텔 조식이 아닌 식당에서 대만식 아침 식사를 맛보고 싶었다.
아침 식사로 정한 음식은 대만식 오믈렛 '딴삥'이다. 이른 아침부터 숙소 근처 아침 식사 전문점에 갔다. 이미 손님들로 꽉 찬 식당은 합석이 필수였다. 대만은 합석 문화가 발달한 나라이기에 합석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리에 앉아 딴삥과 토스트,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처음 맛본 딴삥은 달고 짭조름한 맛일 거란 나의 예상을 완전히 빗겨 나갔다. 간이 거의 되지 않은 담백하고 슴슴한 맛이었다. 대신 달짝지근한 간장 같은 소스를 찍어 먹으면 간이 딱 맞는다. 쫄깃한 식감의 전병 같은 딴삥은 아침에 부담없이 먹기 좋은 최적의 음식이었고, 지금도 생각나는 음식이다.
타이난에서 타이베이로 넘어오는 열차에서 여행의 의미를 생각했다. 조용한 열차 안, 창밖으로 보이는 푸릇한 자연과 뉘엿뉘엿 지는 노을까지,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감정을 느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을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오르고 두근거린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이 좋았다. 열차를 탄 지금 이 순간,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지금 이 순간, 여행을 하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했다. 하루를 허투루 쓰고 싶지 않았다. 일분일초가 아쉬웠고 좋은 기억과 추억을 꽉꽉 채우고 싶었다. 여행을 떠났을 뿐인데 일상이 다채로워지는 기분이었고, 의욕과 열정이 끓어오르는 듯 했다.
결국 여행은 '행복하고 싶어서 하는구나' 싶었다. 여행이 주는 행복은 지대해서 그 행복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어쩌면 일상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행복을 여행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우린 여행을 떠나야 한다. 어디든 상관없다. 그저 마음이 이끌리는 곳으로 떠나, 평상시라면 스쳐 지나갔을 작은 것도 깊고 찬찬히 구경해 보자. 숨어있던 행복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 것이다.
※ 본 글은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서 직접 작성한 글입니다.
[ 아트인사이트 원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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