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편이었다. 강북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특목고에 입학했을 때, 학교 교문에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특목고에서 우수한 학생들 틈바구니 속에서 치열하게 공부한 끝에 수시 전형으로 SKY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많은 이들이 선망하는 직장에 취업했다. 남들 부럽지 않은 연봉도 받고 있다.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온 배우자도 만났다. 좋은 직장, 좋은 동네에서 사는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아이들을 우리처럼 키우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엄친아, 엄친딸로 살아온 삶이 안정적이라는 건 맞다. 직업적으로 큰 위기를 맞을 가능성도 적고, 주변에 항상 비슷한 사람들이 있어 비교적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리도 나름의 애환이 있다.
남편은 B형 간염을 앓았다. 다행히 몇 년 전 임상 시험에 참여해 치료를 받았고,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재수 시절 겪은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한 B형 간염을 20년 넘게 앓았고, 그로 인해 간 손상이 생겨 지금도 꾸준히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나는 얼마 전 간질성 방광염 진단을 받았다. 특목고에 입학하고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않아 힘들던 시기에, 내 한계를 극복해 보려 하루에 세 번만 화장실에 가는 생활을 했다. 우리 학교의 수업 시간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 40분까지였고, 화장실을 가고 싶어도 시간을 빼앗길까 봐 참으며 공부했다. 결국 성적은 올랐지만, 그때 내 방광이 망가졌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할까? 정답은 없다. 나는 개인적으로 현재의 행복감보다는 미래를 대비하며 사는 것이 낫다고 여겨왔다. 만약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하지 않고 놀았다면, 지금의 삶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만큼은 우리와 달리, 최소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사치를 누리며 살았으면 한다. 예를 들어,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 화장실에 가고, 배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잠을 자는 그런 사치 아닌 사치 말이다.
한국의 입시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입시 경쟁은 왜 더욱 치열해지는지, 초등학생 때부터 고등학교 수학 선행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현실이 나는 이해되지 않는다. 그렇게 힘겹게 공부한 아이들이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한국은 좁은 땅에서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진 사람들이 몇 안 되는 자리를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며 살아간다. 반면, 캐나다에서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아이들의 꿈이 각기 다르다는 점이었다. 캐나다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을 듣고 신기했는데, 직접 가보니 그 말이 이해되었다. 캐나다는 우리나라보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존중하는 사회다. 사람은 제각기 다른 재능과 관심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재능을 입시라는 명목으로 억누르고, 모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반면 캐나다는 사람들의 다양한 재능과 관심을 존중하며, 이를 펼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곳에도 사회적으로 선호되는 직업은 있다. 우리나라처럼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선호하고, 그 직업들이 돈도 많이 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공부에만 매달리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체력을 길러주기 위해 하루의 절반 이상을 아웃도어 활동으로 구성한다. 방과 후 활동도 다양하다.
나는 우리 아이가 다른 아이들을 따라 하는 삶을 살지 않기를 바란다.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는 알지만, 우리 아이에게 맞는 것을, 우리 아이에게 맞는 방식으로 하게 하고 싶다.
우리가 경쟁 중심의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그로 인해 안정적인 삶을 얻었다고 해서 그 길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조급해하지 않고, 자기만의 속도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공부든, 취미든, 일상에서의 작은 결정이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며 성장하는 과정을 존중하고 싶다.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내가 바라보는 성공은 단순히 좋은 학교,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아이가 선택하는 길이 무엇이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더 이상 남들과 똑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것이 유일한 성공의 길은 아니다. 나는 우리 아이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