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결혼은 신중하게 이혼은 신속하게" 라는 책 제목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난 생각에 빠졌다. 책 제목과는 반대로 결혼은 비록 신속하게 하였어도 이혼만큼은 신중하게 하고 싶다고 말이다. 돌다리가 부서질 만큼 두들기고 두들기면서 최선을 다해 신중의 신중을 가하며 이혼을 하려고 한다. 후회와 한 톨의 미련도 남기지 않고 씩씩하게 뒤돌아서 훨훨 날아갈 수 있게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다. 물 속에 들어가기 전 준비운동을 하는 것처럼, 난 이혼의 준비운동을 신중하게 하고 있다. 그럼 난 왜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주변의 이혼한 사람들이 내게 건넨 말중에 나의 머릿속에 아직까지 남아있는 말이 있다. 그 분은 나에게 이혼이란, 결심하고나서 '이혼을 해야지' 라는 마음을 먹고 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이혼의 길에 들어서서 나도 모르게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어 하게 되는 게 이혼이라고.. 사람의 얼굴이 각기 다르듯 이혼의 방법도 각기 다르다는 걸 이해하고 나서는 각자 다르게 이혼을 했고, 하고 있고, 하고 있는 중일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다이소에서 천원짜리 물건을 구매할 때도 지나치게 신중하고 꼼꼼하게 따지고 물건을 집는 편인데 결혼만큼은 다이소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더 빠르게 결정하고 말았다. 천원짜리 물건보다 더 쉽게 결혼을 구매한 것이다. 맞선을 보고 3개월만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연애를 했고, 결혼 후, 2개월만에 임신을 하여 임신상태에서 신혼을 보내며 출산을 했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정신없는 양육과 시가사람들과의 나혼자만 조화롭지 못한 결합의 시간들 그리고 부부싸움. 정신없는 일련의 사건들이 일어났었고, 7년만에 반기를 들어 시댁과의 왕래가 멈추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부부싸움의 향연. 불행은 언제나 겹쳐서 일어난다. 그 사이 아이는 발달문제로 지적장애니, 자폐스펙트럼이니 라벨링이 되어질랑말랑 하면서 무수히 많은 검사와 치료센터를 전전긍긍하면서 아이의 정상발달을 위해 발품을 팔며 정신없이 노력하면서 쉼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어느 날, 불행은 공황장애라는 이름으로 나를 엉겹 찾아왔다.
휘몰아치는 시간들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이어지며 정점을 찍고 가라 앉았다. 물 위에 둥둥 고귀하게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들처럼 평온하게 보이게 되기까지 한 지금. 실상 난 물 밑 오리의 다리처럼 쉼없이 발길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한바탕 길고 긴 전쟁을 치루고 남겨진 잔해들로 허우적거리며 아직도 재건되지 못한 채, 마음은 황폐하게 페허가 된 상태이다. 복구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 다시 새 삶을 살아가려는 희망을 품으며 이혼을 준비하려고 한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다는 느낌보단 죽어있다는 느낌으로, 다시 아무렇지 않은 채, 고귀한 척 오리의 상반신만 내세우며 '척'하면서 인생을 끝까지 살아갈 자신이 없다. 큰 뜻을 품고 무언가의 소망을 잔뜩 안은 채, 허황된 생각으로 준비하기엔 난 너무 성장했고, 불혹을 지나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인생의 끝쯤엔 나답게 살고 싶어졌다. 온연한 나를 느끼면서 '나'스럽게 살다 웃으며 하루하루를 감사히 맞이하며 평안과 평온으로 가득 찬 하루로 켜켜히 채워나가고 싶다. 그래서 이혼을 준비하고 있다. 결혼은 천원짜리 물건을 구매할 때 보다 쉽게 결정하였지만 이혼만큼은 고가의 물건을 구매할 때보다 더 신중하고 꼼꼼하게 살피면서 하려고 한다. 나만을 위한 이혼이면 안되기에, 이기적인 생각만 가지고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이혼이란 짧막한 단어안에는 무수히 많은 역동이 들어가 있기에 천천히 그 누가 다친다 한들 최소한의 피해로 많이는 다치지 않게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