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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일 Aug 01. 2023

엔지니어링도 국제 경쟁에 맡겨야

지금은 머리보다 손발만 잔뜩 커진 기형구조... 균형을 바로 잡아야

싱가포르의 상징이 된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우리나라 쌍용건설이 만들었다. 얼마 전에 큰 손주 데리고 패키지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때 관광 가이드도 건물 근처를 지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게 쌍용건설을 칭찬하곤 했다. 우리나라 건설회사의 역량을 세계적으로 떨친 쾌거였다고.


수년 전에 갔을 때도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싱가포르 지하철 건설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국내에서는 여기저기서 사고를 치고 있던 악명높은 건설사가 그 나라에서는 최고의 시공회사로 상도 받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괴리... 


국내와 해외에서 이렇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


마리나베이샌즈 호텔은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만들었다는 표현보다는 '시공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다. 건물이나 지하철, 교량 등의 인프라는 계획, 설계, 시공, 감리 등 일련의 절차를 거치면서 여러 관계자들의 참여하여 만들어지는데,  국내 건설사는 단지 시공에만 간여했기 때문이다. 


시공을 잘 하는 것도 물론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머리가 시키는대로 하는 손발의 역할에 불과하다. 자동차나 스마트폰을 따지면 설계나 디자인은 못하고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단지 조립만 했다고 해야 할까. 그것도 주문자의 엄격한 감독을 받아가면서 부품만 끼워 맞추는... 어떻든 그렇다.  


싱가포르의 랜드마크 건물이나 인프라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brain에 속하는 계획, 설계와 감리는 우리 몫이 아니었고 우리의 역량도 아니었다. 그래서 '만들었다'는 표현은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의 설계는 이스라엘 출신의 모세 샤프디(Moshe Safdie)가 했고, 감리(engineering)는 영국의 Arup사가 미국의 Parsons Brinckerhoff(현 WSP)사와 같이 담당했다. 물론 계획은 건물주인 미국의 Las Vegas Sands의 몫이었고.


지금 우리의 설계, 감리와 관련된 시스템과 역량은 도대체 어느 정도 수준일까? 6~70년대에 해외 건설시장에서 힘을 키운 국내 시공사의 입김이 워낙 세서, 엄격하고 까다로운 감리시스템을 핵심으로 하는 외국의 선진 엔지니어링 시스템이 국내에는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이들이 법과 행정을 뒤에서 주무르면서 제도적으로 막은 탓이다. (오늘 아침 기사에서도 현장을 까다롭게 원칙대로 감독하면, 공사지연이니 어쩌니 해서 감독을 교체 요구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 발생하곤 한다.)


대형사고가 발생하면 그때마다 입찰제도와 감리제도를 선진국형으로 바꾼다고 법령을 바꾸고는 하는데, 사실 속살은 부실한 채 그대로 두고 껍데기(제도의 이름)만 외국 것으로 포장해서 눈가림하곤 했다. 여론의 관심이 떨어지면 그나마 도로아미타불이다. 법령과 제도는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과는 격하게 간극이 벌어져 현장 돌아가는 것은 전혀 딴 세상이다. 


그게 우리의 현실이고 지금 모습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라에 가서는 그들의 엄격한 감독 아래 잘 조립해서 만들기도 하지만, '엄정한 시스템'이 껍데기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서는 부실과 대형사고가 반복되고 있는 게다. 그래서 시공 잘 한다고 그 역량을 자랑할 것도 아니다. 주인의 감독 수준에 따라 성과를 내기도 하고 망가뜨리기도 하는 '노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공공분야도 똑같다. 여전히 지자체장 등 행정의 최고책임자들은 자기 임기 중에 랜드마크적 시설물이나 건물을 완공하기 위해 '빨리빨리'만 깃발들어 외칠 뿐이고,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국민들의 열망은 그들의 '입'에서만 실속없이 겉돌 뿐이다. 도면 자체가 잘못되어 돌아가는데, 동영상으로 모두 촬영한다는 식의 임기응변과 땜방식 처방만으로 헛심을 쓰고 있는 게 그들의 지금 모습이기도 하다.


영화, 음악, 전자, 자동차, 스포츠...


모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가 계획하고 우리가 설계하였을 뿐 아니라 우리 시스템과 감독 아래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조립한 스마트기기들이 자랑스럽게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다. 이게 지금 우리의 brain 역량이기도 하다. 손발이 아니라 '머리'를 쓰는 분야에서도 세계와 겨뤄 최고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건설도 완전히 오픈 체계로 바꿔야 한다.


국내 업체들이 국내의 정치, 행정의 지원을 받으면서 국내 시장을 독점하는 시스템을 타파해야 한다. 우선 엔지니어링 분야를 과감하게 열어야 한다.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이들을 불러 들여야 할 지 모른다.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들이 이들과 경쟁해서 고사하지 않을 정도의 소극적 지원만 병행하면서 이들을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요체는 해외의 유수업체들이 국내 엔지니어링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시스템과 대가를 국제 수준으로 현실화하는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영세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국내 엔지니어링 업체에게도 크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현장 근로자들이 대부분 중국, 동남아시아 등 외국인이 점유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선진국들이 이들을 어떻게 관리해왔는지 그 경험과 시스템을 빠르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나라 건설은 오히려 5~60년대로 후행할 지도 모른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무량판 구조의 건물이 붕괴한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고 이미 1995년에 삼풍에서 똑같이 겪었던 일이고, 아파트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는 것은 1970년도에 와우아파트에서 벌써 겪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목숨들이 무너지는 콘크리트 더미 속에 깔려 스러졌던 그 시대로 역진하고 있는 게다.


국내의 숙련공이 고령화하고 젊은이들이 현장 일을 기피하면서 외국인들을 불러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그들의 품질과 안전 인식은 그 나라의 현재 수준에 머물러 있기 쉽다. 아니, 그들이 우리나라의 건물과 인프라에 얼마나 애정을 갖고 일할까를 생각해 보면 관리감독을 체계화하고 엄정하게 바꿔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늦었지만 이번 일을 발판삼아 크게 도약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이제 손발만이 아니라 '머리'도 일하는 시스템으로 말이다. 


마지막으로  어떻든 한 번의 사고를 계기로 스스로 전 현장을 조사하여 잘못된 부분을 찾아 모두 공개한 이번 결정을 크게 환영하고 격려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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