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을 위한 마음
라디오는 딴짓하며 듣기에 참 좋습니다. DJ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재미있는 사연이 소개되면 함께 웃다가도 잠깐잠깐 딴생각을 하죠. 아는 노래가 나오면 따라 부르기도 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음률을 타고 추억을 연료 삼아 과거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초등학생 시절 살던 집 거실로 돌아가 턴테이블 위에서 돌아가는 LP판을 바라봅니다. 사춘기 시절로 돌아가 방 안에서 혼자 음악을 듣기도 하지요. 대학시절 아지트였던 당골 술집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우연하게 받는 선물이지요.
언제부턴가 TV예능을 잘 보질 않아요. 서로의 단점을 들추는 웃음코드가 유쾌하진 않아서요. 자극적인 멘트에서 자막으로 삽입되어 다시 한번 시청자에게 웃음을 강요하기도 합니다. 재미와 웃음도 강요당하는 세상이네요. 반면 라디오는 선택할 수 있는 수용성이 여전해서 아직은 편안해요.
가요톱10을 아시나요?
친가 외가에 형제들이 워낙 많다 보니 나이 차가 큰 형 누나들이 꽤 많았어요. 부모님의 형제들의 가족모임 또한 많았기 때문에 꼬마였던 저는 늘 사촌들의 보호대상이었습니다. 부모님 두 분 다 막내시거든요. 연배가 있는 형 누나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80년대의 음악을 참 많이 들었어요. 박남정과 변진섭, 조하문과 조정현, 이정석 가수들이 부른 곡들이었습니다. 꼬마가 듣기에도 멜로디가 참 좋았나 봐요. 사랑의 대상이라고는 고작 부모님과 아끼던 장난감이 전부였던 꼬맹이였는데요.
그 시절 노래들의 가사를 들여다보기 시작한 건 어른이 되고 나서지요. 김광석 님을 만나면서 어쿠스틱 기타를 배웠고, 자연스럽게 그 시절 노래와 악보를 접했습니다. 어릴 때 각인됐던 음률의 기억이 봉인을 풀었어요. 노래가 담고 있는 많은 감정들을 공유했습니다. 꼬마시절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감정들이었죠.
OTT와 숏츠 등 참 많은 영상 플랫폼이 있습니다. 굳이 본방 사수를 하지 않아도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시청이 가능해요. 스마트폰과 정기구독만 있다면 말이죠. 음악 또한 풍부해졌습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K-pop과 다양해진 음악장르는 듣는 귀와 보는 눈을 즐겁게 합니다.
보통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합니다. 여러 플리를 만들어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음악을 골라 듣지요. 그나마도 요즘은 음악을 들을 시간이 많지 않아요. 달리기와 출퇴근시간에 오디오북을 듣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가끔 굳이 라디오를 찾습니다.
조금 생각을 멈추고,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아요. 해가 진 밤에 듣는 라디오의 고요한 분위기와 그 안에 울리는 DJ의 음성은 참 편안합니다. 늦은 시간 운전을 할 때는 허윤희 님의 꿈과 음악사이를 들어요. 그녀의 목소리가 전해주는 위로와 격려가 좋아요. 고요함을 더해주는 분위기도 좋고요.
며칠 전 우연히 이승환 님의 노래를 듣었습니다. 가사를 음미하면서 듣는데 뭉클하더군요. 초등학생 때는 알지 못했던 감정이죠. 존재감에 대한 불안감, 기대를 향한 실망과 결핍, 갈망.
뜻밖의 노래선물에 참 행복한 밤과 하루였습니다. 아직은 기적을 믿고 싶어요. 우연한 기대에 기대고 싶은 하루입니다.
너의 안부를 묻는 사람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너를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언제 오더라도 너만을 기다리고 싶어
다시 처음으로 모든 걸 되돌리고 싶어
이제는 어디로 나는 어디로
아직 너의 그 고백들은 선한데
너를 닮아 주었던 장미꽃도 한 사람을 위한 마음도
모두 잊겠다는 거짓말을 두고 돌아오긴 했지만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오태호 작사 작곡, 이승환 부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