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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진 아줌마 May 07. 2024

드라마 "눈물의 여왕" 속 2024년


요즘 같은 때에 드라마 시청률이 30%를 찍었다고?


이런 드라마는 문화사 측면에서도 볼 가치가 있는지라, 며칠간 만사를 제치고 전 편을 정주행 했다.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드라마라고는 보지 않으실 것 같은 어떤 분이 본방 사수를 위해 일찍 퇴근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더 동했다.


대체 어떤 드라마기에 요즘 같은 각자 매체의 시대에 전 연령층을 TV 앞에 불러 앉힌 걸까? 사실 스토리보다 이 지점, 이 드라마가 2024년 사람들의 마음에 안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더 궁금했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배우와 스토리가 아니라, 그들 너머에 앉아 그들을 지켜보고 있을 2024년 우리들의 마음이었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드라마를 보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스토리 클리셰'의 파괴였다.


대개 흥행하는 드라마는 사람들의 잠재 욕구를 기분 좋게 충족시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판타지지만 절대 판타지라는 느낌이어서는 안 되고, 그렇다고 현실의 잔주름이 드러날 만큼 현실로 내려와서도 안 된다.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에서 사람들이 경험하고 싶던 것을 딱 원하는 만큼 경험하게 해주는 것, 그것이 대중 드라마의 초시대적 흥행 공식이라면 흥행 공식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지난 몇십 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애용되던 스토리 골조는 '백마 탄 왕자님과 신데렐라' 구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재벌가 남자 주인공과 캔디 같은 여자 주인공의 사랑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비판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그런 이야기들이 계속 생산되고 흥행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경제적 계층 상승'이라는 자본주의적 소망이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스며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눈물의 여왕'은 똑같이 재벌가가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스토리 구도를 완전히 뒤엎어 놓는다. 이런 드라마가 공전의 흥행을 기록했다는 것은 우리의 선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판타지는 역설적으로 '실현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이루어질 가능성이 0%인 사건은 판타지조차 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주인공의 신분 상승'이 아니라 '부유하지만 인간미 제로였던 재벌가의 인간미 상승'을 그리고 있는 이 드라마의 스토리 구도는 사람들의 판타지에 큰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 준다.


사랑을 통한 신분 상승이라는 스토리가 사라진 것을 보며 먼저 드는 생각은, 이미 그것이 판타지도 될 수 없을 만큼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다. 현실에서 목격한 숱한 판타지의 배신으로, 이제 그러한 판타지는 상상의 세계에서도 추방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역발상의 드라마가 흥행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오히려,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절망의 두께가 느껴지는 듯해서 마음이 아팠다. 너무 비현실적이어서 드라마가 될 가치조차 잃어가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 그것이 내게는 우리가 통과해 온 지난 몇십 년의 도취와 고통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둘째, '눈물의 여왕'은 사람을 아끼는 공동체적 가치를 지켜온 사람들에게 보내는 응원이자 찬가이기도 하다. 이제 사람들은 자본주의적 욕구를 쫓는 일에 피로를 느끼고 있다. 물질적 부를 못 이루어서 절망하고 분노하기도 하지만, 그 분노에 대한 반작용이 '더 열심히 살겠다는 오기'가 아니라 '물질적 가치만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혐오'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늘다 보니 시대도 변한다. 사람들의 눈길이 점점 더 물질이 아니라 '화목하고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삶'으로 향하고 있다. 춤추며 즐겁게 사는 가족의 일상, 노래하며 행복한 부부의 영상이 유튜브에서 몇백만 조회수를 기록하는 현상이 이러한 '선망의 변화'를 보여주는 방증이 아닐까.


선망은 언제나 희소한 쪽을 향한다. 지난 몇십 년간 한국이 '물질'만을 선망할 수 있었던 것은 '공동체적 가치와 정신적 가치'가 단단하게 받쳐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지반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깨달아 가고 있다. 그 전통적 가치가 '물질'만큼이나 중요한 삶의 지반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새벽이 오기 전에 밤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 지금은 모두가 투기에 마음을 쏟고 있지만, 드라마 속 갑작스러운 몰락을 경험한 홍해인의 가족처럼 어느 날, 우리는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달라진 세상을 보기 시작할 것이다.


미래에는 정해진 방향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사람들의 마음이 향하는 곳이 곧 미래가 향하는 곳이라 믿는다. 그래서 내게는 이 드라마의 흥행이 희망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늘 우리가 선망하는 것이 내일 우리의 미래가 된다. 그래서 나는 굳이 우리의 선망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리고 싶었다. 인식하면 그만큼 변화에도 가속이 붙기에, 우리가 한 시대의 아픔을 발판으로 또다른 성숙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굳이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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