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자르기 _ 1
엄마는 수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딱 두 가지 때문인데, 하나는 차가운 음식 자체를 싫어해서다. 한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 엄마다. 고로 차갑게 먹어야 그 진가가 배가 되는 수박은 엄마가 좋아하지 않는 과일일 수밖에 없다. 다른 이유는 수박을 먹고 난 뒤 남은 두꺼운 수박껍질을 처리하기 귀찮기 때문이다. 한여름의 음식쓰레기는 다른 계절보다 벌레가 더 많이 꼬이기 마련이고 잘못 두면 냄새도 난다. 유독 냄새에 민감하고 청결을 중요시하는 엄마에게 수박껍질은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매번 음식쓰레기를 버리러 아파트 1층까지 내려가기에도 귀찮을 수밖에 없으니 수박은 기피할 수밖에 없는 과일인 것이다.
다행히 수박을 좋아하는 나의 어린 시절에는 여름날 수박이 냉장고에서 떨어진 적이 없었다. 때문에 나는 엄마가 수박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내가 어느 정도 나이가 먹고 철이 좀 들고 난 뒤에야 엄마는 내게 “사실 엄마는 수박 안 좋아해”라고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진심으로 깜짝 놀랐다. 수박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지? 하는 의아함과 그동안 나는 왜 엄마의 취향을 전혀 몰랐던 걸까 하는 미안함이 뒤섞였던 것 같다. 결국 그 뒤로는 엄마가 수박을 직접 사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수박을 먹게 되는 횟수는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숫자와 반비례하며 줄어들었다. 때문에 온 가족이 출동해서 마트에 가는 날에는 아빠와 나는 007 작전을 하듯 엄마 몰래 수박을 마트 카트에 넣고 (물론 몰래 넣는다고 엄마가 모를 수도 없지만), 그런 우리에게 엄마는 매번,
“난 몰라. 알아서 잘라먹고 깨끗하게 처리하는 거 알지?”
라며 경고 아닌 경고를 날린다.
이렇게 어렵게(?) 사온 수박은 집에 오자마자 먹기 좋게 잘라 냉장고에 넣어둔다. 흔한 말로 수박 ‘해체’ 작업을 하는 것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해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수박이 내 ‘담당’이 된 뒤로는 쭉 이렇게 해 왔다. 깍둑썰기를 해서 냉장고에 넣어두면 다음날 알맞게 시원해져서 바로바로 꺼내먹기에 좋다. 깔끔하게 포크로 찍어먹으면 되니 손을 씻어야 할 필요도 없고, 다 먹고 난 뒤의 수박껍질을 치워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다. 딱 처음, 해체 작업을 할 때만 수고로움이 있을 뿐이다. 사 오자마자 잘라서 통에 넣으며 남은 수박껍질은 잘게 토막 내어 봉지에 넣고 한 번에 버리면 되니 수고로움은 한 번이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수박을 사 온 날은 무조건 수박부터 잘라 놓고 본다. 한 번의 수고로움이 며칠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릴 때는 이런 방식으로 수박을 잘라먹지는 않았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박 썰기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는 방법 – 큰 수박 한 덩어리를 반으로 쪼개고, 그 반을 또 한 번 반으로 자른 뒤 큼직하게 껍질과 함께 조각내는 방법 – 으로 잘라먹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학교에서 돌아오면 내가 샤워를 하는 사이 엄마는 냉장고 안에 있던 수박을 꺼내 커다란 쟁반에 올려놓고 큼직하게 썰어주셨다. 주방이나 거실에 앉아 엄마가 썰어주는 수박을 먹으며 엄마에게 그날 있었던 일들을 조잘거리며 수박을 먹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를 닮아서 깔끔 떨기로 주변에서 유명했던 나였지만 수박만큼은 손과 입 가득 과육이 흘러내려도 아랑곳하지 않고 먹었다. 수박을 먹는 순간만큼은 손과 입은 다시 씻으면 그만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렇게 먹었던 수박의 맛이 진짜였던 것 같은 생각도 든다. 과육이 흘러 손이 끈적해지는 불편함은 있지만 차갑고 달콤한 과육이 열기를 품고 있는 한여름의 내 몸 안으로 들어와 열기를 식혀주는 것. 그래서 다 먹고 나면 또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끈적해진 손을 차가운 수돗물로 씻으며 열기를 온전히 식혀주는 엔딩.
수박 소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내가 주로 사용하는 깍둑썰기는 말이 깍둑썰기이지 사실상 편한 대로 손, 아니 칼이 가는 대로 대충 세모, 네모 등의 입에 한 번에 들어가는 모양으로 잘라 통에 넣는 것이다. 내 마음 가는 대로 대충 잘라 넣는 거라 예쁘지도 않고 깔끔하게 통에 딱 맞게 들어가지도 않는다. 여름 –이라 적고 수박의 계절이라 읽는다 – 만 되면 각종 SNS와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살림의 여왕들이 올려놓은 사진이나 영상 속 소분화된 수박은 정갈하게 잘려 딱 맞게 통에 들어가 있거나 예쁘게 모양내어 잘려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수박 자르기 10+N연차 내공과 달리 내 소분 수박은 항상 중구난방이다. 그래서 이왕이면 좀 예쁘게 잘라 넣어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지난여름 유튜브에서 수박을 자르는 방법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그중에서 개그우먼 김숙 씨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수박 소분 영상이 눈길을 끌었다. 이름하여 ‘김숙의 감성 소분’. 물론 시작한 지 몇 분 되지도 않아 ‘감성 소분’의 ‘감성’은 빼야 했지만 말이다. 각종 장비로 무장한 김숙 씨는 다양한 방법으로 수박을 소분하기 시작했다. 첫 소분법은 수박을 10등분으로 한 번에 나눠주는 수박칼이었다.
꽤 오래전에 같은 모양의 사과칼이 있었는데 사과칼의 큰 버전인 듯했다. 사실 나도 사과칼은 경험이 있다. 처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기숙사에 살 때였다. 대도시의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것이 아니라 도시생활이 너무나도 그리웠던 나는 주말마다 쇼핑몰에 갔었다. 그때 사과칼을 발견하자마자 ‘어머 이건 사야 해’라는 마음의 소리가 온 마음을 울렸다. 꼭 사야만 했다. 입맛에 맞지 않은 미국 음식 (엄밀히 말하자면 맛없는 학식에)과 여러 과일 중에서 사과는 구원투수 같은 존재였다. 다만, 서툰 칼솜씨로 사과를 잘라먹자니 여간 귀찮은 게 아니었고, 그런 사과를 단 한 번에 쪼개준다니 반드시 사야만 하는 것이었다. 물론 누구나 예상할 수 있듯, 두세 번 도전하다 서랍 구석에 처박혀 버렸지만 말이다. 단단한 사과를 힘을 주어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아 자르는 게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냥 깨끗이 씻어 껍질째 하나를 다 먹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김숙 씨의 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단단한 사과도 한 번에 자르기 힘든 마당에 커다란 수박을 위에서 아래로 자르기엔 엄청난 힘과 요령이 필요하고 작은 체구의 김숙 씨에게 꽤 버거워 보였다. 온몸으로 사투를 벌이듯 자른 수박의 큰 한 조각은 이후 그것으로 끝내지 않고 나무모양 (일명 수박바 모양)으로 또 자르기도 했고, 치실을 이용해 조각조각 자른 뒤 먹기 좋게 접시에 올리기도 했으며 쿠키틀을 이용해 모양을 낸 뒤 수박꼬치를 만들기도 했다. 꽤 정교함이 필요하였고 시간도 오래 걸렸다.
영상의 마지막은 나처럼 대충 자르는 깍둑썰기가 아닌 소분하기 위해 준비한 통에 딱 맞아떨어지게 넣기 위한 ‘진짜’ 깍둑썰기였는데 그것마저도 담으려고 한 통에 딱 맞게 잘라지지 않아 통에 넣은 뒤 칼로 한 번 더 통에 맞게 잘라내어 억지로 맞추며 웃음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렇게 잘려나간 수박 자투리를 맛있게 먹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날의 ‘김숙의 감성소분’에서의 교훈은 ‘수박은 아무렇게나 잘라도 맛있다’였다. 그 말이 맞다. 수박은 어떻게 잘라도 맛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