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3일 연휴가 생겼다. 예전 같으면 어디를 가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켰겠지만 이번엔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즘 내게 여행은 뻔한 것이다. 어디를 가도 잠깐 관광지 구경하고, 인터넷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지는 모를 밥을 먹고, 인터넷으로 검색해서 찾은 유명한 카페 가는 일정이다.
... 그런 게 여행이라면 굳이 그 먼 곳을 갈 필요가 있나? 이 지역에서도 충분한데?
그런 생각은 나의 방구석지수를 더욱 드높였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후배는 내게 이번 연휴를 이용해서 울릉도를 갈 거라고 했다.
울릉도라고?
내게 울릉도는 엄청나게 먼, 특별한 곳이라는 느낌이 있다. 그런 곳을 이번 연휴에 간다고? 새삼스럽게 빨간 날 세 개가 나란하게 붙어 있는 이 연휴가 엄청나게 특별하게 느껴졌다. 나는 최근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진 상태다. 귀납법이나 통계를 들먹이지 않아도, 앞으로 연휴 동안의 내 모습은 뻔했다.
하루종일 휴대폰을 보고 또 보고 지겨워지면 잤다가 다시 눈뜨면 휴대폰을 보고 저녁때가 되면 나는 왜 이렇게 한심할까 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일부터는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휴대폰을 만지겠지. 그리고 다음날은? 어제의 복사 붙여 넣기.
“1박 2일 어디라도 다녀와.”
엄마도 내 등을 떠밀었다. 완전히 집순이 모드가 되어버린 나를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새삼스럽게 내가 너무 집에만 있었음을 깨닫는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예전에 검색해 두었던 숙소들을 살펴보았다. 역시, 남아 있는 방은 없었다. 당연했다. 3일 연휴. 게다가 그 3일 중 첫날만 맑다는 예보. 누가 집에 있을까?
결국, 나는 여행을 포기해 버렸다. 그나저나 결국 숙소를 구한다는 핑계로 퇴근 후 저녁 시간을 온통 휴대전화를 보면서 보냈다. 아, 어쩐지 연휴 3일 내내 이러고 보낼 것 같은데…. 불안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렇게 연휴 첫날이 되었다. 차를 내가 쓰려면 내가 엄마를 회사까지 모셔다 드려야 했다. 그 말은 아침에 강제로 집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 소리였다. 강제 외출이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엄마를 출근시켜 주고 나는 근처로 산책하러 나갔다. 날씨가 정말 좋았다. 녹음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나오길 잘했다고 다섯 번 정도 생각을 했다. 동네에 이렇게 좋은 곳이 있는데, 왜 나는 집 밖으로 안 나오는지, 자신의 한심함을 열 번 정도 생각했다. 이번 연휴에는 꼭 매일 산책을 해야지. 그렇게 다짐을 하다가 문득 생각난 친구가 있었다.
고등학교 동창인 Y는 현재 내가 사는 곳과 멀리 떨어진 지역에 위치한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둘 다 미혼인 이유로 다른 친구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자주 연락을 하긴 했지만, 자주 보는 편은 아니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그녀와 나의 고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Y는 고향을 와도 나를 보기 위해서는 꽤 많은 시간을 들여 타 지역(=내가 사는 곳)으로 움직여야 했다. 보기가 어려운 것은 당연했다.
“어, 쏭쏭아.”
전화기 너머 들리는 Y의 목소리에 피곤함과 나른함이 가득했다. 간단한 안부 이야기는 이번 연휴에 관한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래서 어제 급히 숙소 예약하려고 찾아봤거든? 역시 숙소가 없더라고. 원래는 너희 집에 갈까 해서 연락을 해볼까도 생각했는데-”
“와도 돼.”
“..... 어?”
“우리 집에 와도 된다고.”
생각지 못한 말에 순간 당황했다.
내게 ‘지인의 집에서 묶는다’라는 개념을 내게 알려준 것은 Y였다. 내 돈 주고 가는 숙소에서도 불편함을 느끼는 내게 다른 사람의 집에 머무는 이야기는 딴 세상 이야기와 같았다. 그런 내게 Y는 친인척/지인의 집에 머무는 장점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그런 Y의 가스라이팅(?) 덕분에 나도 다른 사람의 집에 자보기도 했었다. 바로, Y의 집이었다.
몇 년 전 버스를 타고 Y의 집을 방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서, 편도로 6시간인가 7시간인가 걸렸던, 다시는 버스 타고는 못 올 것 같다고 생각했던 그날. 그래, 버스 타고는 못 가지. 하지만 이제 차가 있잖아?
“.... 갈까?”
“응. 와도 돼. 괜찮아.”
“... 네비 어디 찍어야 해?”
“잠시만, 내가 카톡으로 보내줄게.”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나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정말, 이렇게 간다고? MBTI가 유행하기 전부터 해당 검사를 몇 번이나 해보았지만 단 한 번도 J가 아닌 적이 없었던 나에게 이런 충동적인 결정은 낯설고 또 불안했다. 정말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간다고? 물론, 같은 한국이니까 준비할 게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간다고?
잠시 후, Y의 카톡이 도착했다.
낯선 지명을 천천히 지도 어플에 적어보았다. 내가 사는 곳과 217킬로 떨어진 그곳을 가기 위해서는 당시 기준 3시간 29분이라는 운전 시간이 소요되었다.... 멀긴 머네. 내 대답에 Y는 멀지, 하고 짧은 대답을 보내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나는 내 한미한 운전 경험을 되짚어 보았다. 이 정도 거리를 운전해 본 적이 있던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있지만, 그때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초록색인(=원활한) 도로 상황은 은밀히 내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초록색 도로 상황(물론 중간에 조금 붉긴 했지만)이라면 내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Y가 사는 곳은 내가 사는 곳보다 훨씬 더 시골이었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도심운전과 거리가 멀었다.
그리니까…. 갈 수 있을 것 같, 지?
“도전!”
겨우 끌어모은 용기로 Y에게 카톡을 보냈다. 대답을 보내고 나니 마음이 바빠졌다. 저질 체력의 대명사인 내가 아침부터 산책했으니 피곤할 게 뻔했다. 졸음운전을 막기 위해서는 집에서 10분이라도 눈을 붙이고 나가야 했다. 그러니까 집에 가서 씻고, 밥도 먹고, 좀 쉬고 출발하려면…. 아휴 바쁘다 바빠.
그런 나를 더 바쁘게 한 것은 갑자기 회사에서 온 연락이었다. 전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일은 결국 Y의 집으로 향하던 차를 돌려 다시 출근하게끔 했다. 회사에 도착하자 나와 몇 번이나 통화했던 직원이 물었다.
“전화 소리가 이상하던데. 어디 가는 길이었어?”
내 대답에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늘 같은 날, 거기까지 간다고?”
“좀 그렇죠?”
“난 잘못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도 먼 곳인데, 오늘은 차 막힐 게 뻔하잖아. 엄청 힘들 텐데.”
그의 말을 들으니 정말 그런 것처럼 느껴졌다. 아까 보았던 네비의 빨간색 도로 상황이 다시금 떠올랐다. 엄청 막힌다는 뜻인데…. 과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오늘같이 차가 많을 것이 분명한 날, 초행길을 그것도 3시간 이상 운전해야 한다는 것이 무리처럼 느껴졌다. 더욱이 일하면서 차려입었던 옷이 먼지 구덩이가 되면서 그런 생각은 더 강해졌다. 이런 모습으로 가긴 좀 그렇잖아?
게다가 운전으로 이 지역을 벗어날 때면 나는 늘 새벽 일찍 출발했었다. 왜냐하면, 어디를 가든 아침에는 사람도 차도 적기 때문이다. 더욱이 내가 차를 쓰는 날이면 나는 아침마다 엄마를 회사에 출근시켜야 했는데, 엄마가 다니는 회사는 IC 근처에 있었다. 엄마를 데려다주고 바로 고속도로를 타는 것이 동선상 매끄러웠다. 게다가 나는 기본적으로 아침형 인간…. 그런 나에게 정오가 넘은 시간은 어디론 가로 출발하기엔 너무 늦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냥 못 간다고 할까?
그냥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고, 오랜만에 운전 연습 삼아 근처를 도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내가 굳이 차로 나가는 이유는 운전 연습도 포함되는데, 사실 내가 운전 측면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시내였다. 그런 내게 필요한 것은 장거리보다 가까운 도시 운전 경험이 아닐까?
그래. 그냥 못 간다고 하-
“너 가도 되겠다. 지금 막히는 곳 별로 없네. 여기 막히는 곳은 항상 막히는 곳이니까 어쩔 수 없고. 가도 되겠어.”
일을 마무리하고 온 나에게 직원이 휴대폰 내비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네비는 어느덧 3시간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제 속도로 가면 4시간 더 걸릴 것 같은데요?”
“그렇겠지? 하지만 뭐 어때. 너 자고 온다며? 오늘 안에만, 아니 내일 아침 전까지만 도착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가? 듣고 보니 맞는 말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게 정말 맞는 건가? 아리송해하는 나와 달리 직원은 더욱 적극적으로 나를 등 떠밀었다.
“갈 수 있을 것 같아. 가봐!”
다시 차에 올라 시동을 거는 그 순간까지 나는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정말 안 갈 것 같았다.
그래. 가자!
나는 항상 후회하는 편이다.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고, 그때의 상황을 곱씹고. 그렇게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고치고 싶어도 참 고치기 어려운 내 단점. 그런 단점이 바로 고쳐지는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고속도로다. 고속도로를 타는 순간, 나는 더 이상 후회를 하지 않는다. 힘들 때마다 가까운 IC에서 내릴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건 계획을 바꾸는 것이지 후회와는 다르다. 고속도로를 탄 순간, 나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음을 안다. 그러기에 나는 그저 처음 결정을 실행할 뿐이다. 어쩌면 내가 그나마 장거리를 잘 타는 이유는 이런 체념(?)에서 벗어난 마음가짐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부족한 점이 이런 태도임을 알기에 고속도로를 타려고 하는 걸지도.
고속도로 중간에 정체 구간을 만나 기력을 쏙 빼고, 휴게소에서 잠시 눈도 붙이고, 그렇게 4시간을 달린 결과, 친구가 말한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를 세우고, Y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동을 끄고 운전석에서 내리는 순간, 나는 엉덩이가 쪼개질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고고, 앓는 소리를 내며 나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운전해서 이곳을 왔구나.
나는 Y의 집에서 1박을 했다. Y가 차가 없어서, 그 낯선 곳을 내(가 운전하는) 차로 누비고 다녔다. 친구가 좋아하는 카페를 가고, 그녀의 일터를 가고, 산책하러 나가고, 심지어 예배시간에 늦을 Y를 교회에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친구가 잠들었을 새벽, 나 혼자 나가서 가까운 곳으로 등산(이라고 하기엔 민망한)도 다녀왔다.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차가 없었으면 꿈도 못 꿨을 그런 일들을 해냈다.
물론 내 운전은 훌륭하지 않았다. 몇 가지 사건을 이야기하면, 첫 번째, 가장 큰 실수는, Y를 데리러 가다가 길을 착각해서 엉뚱한 길로 들어갔던 일이다. 그녀는 학교 위치를 설명하며 ‘간판 보고 좌회전’을 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간판이 보이면 좌회전’으로 알아들었고…. 결국 학교 바로 옆에 있는 포장된 도로로 진입하고 만 것이다.
들어가기 직전부터, 아니 앞바퀴가 들어가면서부터 길이 좁다고 느꼈다. 게다가 양쪽의 수로…. 진짜 까딱 잘못하면 개울에 빠질 모양새였다. 순간 후진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 농로에서 후진하는 비법과 관련된 유튜브를 본 기억도 났다. (한쪽 사이드만 잘 보고 나오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유튜브를 고작 대충 한번 본 것뿐이었다. 실제로 해 본 적은 없었기에 나는 애써 생각했다.
저기 안 보이는 저곳에 분명 길이 이어져 있을 거야! 전진하자! 라고....
그래서 끝까지 들어왔는데... 길은 없었다. 내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모르는 사람의 집뿐이었다. 하. 결국, 그 집의 앞에서 차를 돌리고, 다시 그 농로를 따라 차를 움직이는데, 금방이라도 수로에 바퀴가 빠질 것 같아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백미는 그 농로의 꺾인 길에 도착했을 때였다. 들어올 때는 내리막길이라 몰랐는데(그때는 그게 내리막이라는 인지조차 못 했다) 나가려고 하니 언덕, 그것도 꼭대기에서 90도로 꺾어야 하는 언덕이었다.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 어쩌지?
정말 잘 꺾어야 했다. 잘못했다가는 진창으로 빠지기 충분했다. 오싹오싹 온몸이 떨렸다. 나는 잔뜩 긴장해서 차를 움직였다. 차폭감이 없는 나는 항상 차와 물체와의 거리를 실제보다 더 가깝게 생각했다. 길이 좁은 만큼 공간을 활용해야 했고, 그러니까 부딪칠 것 같다고 느끼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테니, 부딪친다고 느껴질 정도로 차를 앞으로 빼서 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앞으로 나가는 순간,
콰콰콰왕!!!
깜짝 놀라 차를 멈추고 후진을 했다. 그러고 나서 파킹. 내려서 보니 도로 가장자리에 있는 턱 같은 것에 부딪힌 거였다. 지금껏 차를 긁어먹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여기서 그 기록이 깨질 줄이야! 그러나 비가 와서 그런지 차에 긁힌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 다행스러운 점은 턱(?)도 무너지거나 한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공공시설(혹은 사유재산)에 피해를 주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 순간을 지금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때의 두려움이 되살아난다. 초보운전 유튜브를 보다 보면 농로에 관련된 콘텐츠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건 나에게는 딴 나라 이야기였다. 왜냐하면, 나는 그런 곳은 근처도 안 가니까! 하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왜 그러는지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진짜 너무 무섭다!
사실 그 뒤로 차를 어떻게 뺏는지 모르겠다. 차에 타면 도로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말 그대로 감으로,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운이 좋아서 차를 뺄 수 있었다. 그렇게 가까스로 90도 부분을 벗어나니, 도로 입구에서 이쪽으로 들어오려던 차 한 대가 내 꼴을 보고 차를 빼고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 너무 고맙고 민망하고…. 그런데 저 차는 내 차보다 훨씬 커 보이는데, 이런 도로를 다니는구나. 나는 거의 기듯 하며 그 농로를 빠져나오며 다시는 이런 좁은 길, 농로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휴게소에서 주차할 때다. 나는 보통 휴게소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주차하기 널찍한 곳에 한다. 그러나 꽉 막힌 도로에서 겨우 벗어나 정신없이 휴게소에 들어갔기 때문인지 별생각 없이 안쪽으로 들어가 버렸다. 게다가 다들 나와 비슷한 심정이었는지, 그 휴게소에는 유난히 차가 많았다. 이러다가 주차할 곳이 없는 것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데 눈앞에서 주차되어 있던 차 한 대가 빠져나갔다.
앗, 저기 주차해야겠다!
비상등을 켜고 후진까지 했던 건 좋은데…. 각도가 안 맞았다! 양쪽에 주차가 다 되어 있는 상태에서 사선 주차를 하는 건 처음이었다. 게다가 내 뒤에 기다리고 서 있는 차들이 어찌나 많던지. 후방 센서의 삐삐삐! 를 넘어 삐-!!!!!! 알람을 몇 번이나 듣고 나서야 가까스로 주차할 수 있었다. 그것도 엄청 삐뚜름하게……. 따흑흑. 물론 긁어먹지 않는 그것만 해도 엄청 다행인데. 아무튼, 주차 연습, 다시 해야겠다. 흑흑.
마지막으로,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있었던 안전거리 미확보. 이는 뒤차 눈치를 보는 버릇에서 비롯한 일이다. 이건 초보운전자들이 잘하는 짓이라는데, 문제는 나는 원래 타인의 눈치를 엄청 보는 편이라는 점이다. 원래도 보던 눈치를 운전하면서까지 보는 거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 내 앞에 엄청나게 느린 차가 서 있었다. 나도 빠른 편은 아닌데, 정말 엄청나게 느렸다. 평소 같으면 추월을 했겠지만, Y가 사는 동네는 정말 길이 꼬불꼬불했다. 추월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 결국, 그 차를 따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운전 중 자주 사이드와 룸미러를 보는 편인데, 어느 순간 내 뒤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차가 줄지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뻥을 좀 더하면 10대는 더 넘는 것 같았다.
앞차, 뭐 하는 거야?! 좀 빨리 가라고!
앞차의 속도는 그대 론데 내가 초조해졌다. 나였다면 눈치가 보여서라도 양보를 했을 텐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저렇게 길을 막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평소 안전거리를 넉넉하게 두고 가는 편인데, 그랬다가는 뒤차들이 엄청나게 나를 욕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를 바짝 붙여서 운전하게 되었는데 그 모습을 본 Y가 말했다.
“너무 붙은 거 아냐?”
“아니, 나도 아는데….”
나는 주절주절 핑계를 늘어놓았다. 안전거리 너무 두면 뒤에 차가 더 답답하잖아. 도로의 원활한 흐름이라는 것도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다 붙는데 나만 떨어져 있으면 좀 그렇고…. 사람들이 욕할 것 같고…. 내 핑계를 들은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안전거리 미확보로 사고 나면 다 네 잘못이다?”
“응. 그건 아는데….”
“추월할 사람이면 벌써 추월했어. 이 도로 위에서 우리가 젤 운전 못 하는 사람이야. 급하면 추월할 거고 따라올 만하니까 따라오겠지. 괜히 눈치 보지 말고. 그런 생각도 하지 마.”
나도 그걸 아는데…. 나는 뭐라고 더 말하고 싶었지만 친구 말이 맞는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사람들 눈치를 볼까? 눈치보다 사고 나면 다 내 책임인데…. 나는 친구의 말에 힘입어 슬며시 안전거리를 벌렸다. 다음부터는 제발 눈치 좀 그만 보고 소신껏 운전해야지.
그렇게 반성을 하며 목적지에 도착을 하고, 점심을 먹는데.... 초보운전인 나는 돌아올 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친구는 밥 먹고 갈 카페를 검색하고 있었는데, 내 마음은 도로 위에 가 있었다. 아, 차 막히면 어쩌지? 시내 운전 괜찮을까?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데, 친구가 갑자기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는데, 갑자기 친구가 묻는다.
“쏭쏭아 혹시 괜찮으면….”
“?”
“나, 우리 고향 집에 데려다줄 수 있어?”
“??? 물론이지??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다시 말하지만, 나는 J다. 내가 봤을 때 Y도 J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는 이렇게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타입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런 우리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결정을 하다니! 스스로가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온 덕분에 나는 졸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고향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아마 혼자 내려왔다면 휴게소에서 또 한 번 눈을 붙였을 텐데 말이다. 친구를 내려주고 나서야 나는 내 집으로 향할 수 있었다. 네비에 저장된 ‘우리 집’을 누르는 기분이 괜히 이상했다. 매번 누르는 버튼인데, 이상할 정도로 ‘우리 집’에 가는 기분. 마치 긴 여행을 마친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주룩주룩 쏟아지는 빗길 사이를 운전하면서 나는 1박 2일을 되돌아보았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은 완벽하지 않았다. 한 거라곤 내가 지겹다고 생각하는 밥 먹고 차 마시는 것 밖에 한 것 없는 일정. 그것도 친구가 사준 파스타는 밍밍하기 그지없었고, 점심을 먹기 위해 데려간 곳은 음식이 다 팔렸고, 대안으로 들어간 식당은 음식들이 너무 짜서 거의 먹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 모든 과정이 지겹지도 싫지도 않았다. 도리어....
사람들은 흔히 운전이 삶을 얼마나 자유롭게 하는지 이야기한다. 나는 운전을 했지만, 그 느낌을 거의 받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처음으로 사람들이 말하는 그 자유로움을 조금 느꼈다.
아마 버스를 타야 했다면 회사에서 연락이 온 순간, 나는 Y에게 가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운전할 수 있었기에 계획에 약간의 변동이 생겨도 대응할 수 있었다. 버스 출발시각, 환승 시간을 이유로 떠남을 망설이지 않아도 된 것이다.
Y의 집 근처에는 좋은 산이 있다. 하지만 Y는 등산을 싫어한다. 내 차가 있었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그 산으로 갈 수 있었다. 그런데 날씨도 좋지 않고, 무릎 상태도 좋지 않아서, 나는 산 중턱에서 몸을 돌려야 했다. 정말로 아쉬웠다. 하지만 차가 있으니 이제 마음만 먹으면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쉬움이 아주 조금은 가셨다.
나는 운전 중 노래를 듣지 않는다. 하지만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도로 위를 운전하면서 듣는 잔나비의 노래는 정말 좋았다. 아마 운전을 하지 않았다면 이걸 놀라겠지.
이제 곧 있으면 운전 300일. 일 년이 머지않았다. 운전대에 올랐을 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은 이제 들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운전은 두렵고, 어렵다. Y랑 간 식당에 음식이 다 떨어졌을 때, 시내 운전과 주차가 자신 없어서 결국 그 근처 식당을 가야 했다. 크윽. 그러나 두렵고 어렵지 ‘만’은 않다. 앞으로도 열심히, 안전히 운전할 수 있기를. 그래서 언젠가 운전이 내 선택에 고려 요소조차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추신. 운전한 당일은 몰랐는데. 후 폭풍이.... 너무.. 피곤하다... 장거리 할 만하다는 거..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