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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쏭쏭 Jul 21. 2024

운전. 1년. 강원도를 다녀오다.

정확히는 368일째, 강원도로 출발했습니다.


초보운전자의 로망 중의 하나는 7번 국도 드라이브라고 한다. ‘푸른 바다를 보면서 멋지게 운전하는 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건 꽤 즐거운 상상이지만, 내가 운전 1주년(?)을 기념해서 강원도를 다녀온 것은 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주말마다 운전해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내가 최근 갖게 된 새로운 취미는 지도 어플 보기이다.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운전을 해야 하는데, 타고난 집순이인 나로서는 나가야 할 곳을 정하는 것 자체가 큰일이기 때문이다. 내가 운전 베테랑이면 아무 곳이나 가도 되겠지만(그러나 아마 그랬다면 이토록 열심히 나가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그렇지 않으니 목적지는 항상 신중하게 고른다. 여기는 너무 도시라서 안 되고, 여기는 가서 할 게 없고, 여기는 너무 멀고….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검열(?)하던 중, 이 도로가 끝나는 곳은 어디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로가 끝나는 곳은 어떤 모습일까?     


흔히 길을 잘못 들어도 당황하지 말고 계속 가라고 한다. 내비게이터가 곧 새로운 길을 알려줄 테니까. 모든 길을 다 이어져 있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최북단, 그러니까 북한과 경계를 마주한 곳은 어떤 모습일까? 이 세상 대부분의 길이 로드뷰로 다 보이는 시대. 심지어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알 수 있는 시대. 그런 시대에도 지도 어플에서 보이지 않는 곳. 그곳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어쩌면 ‘더 이상 진입 금지’라고 적혀 있을까? 상상력이 무럭무럭 피어올랐다. 그렇게 검색을 이어가다 보니 그곳이 강원도 고성이고, 통일전망대가 있는 곳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사는 곳과의 거리는 6시간 정도였고….     


6시간이라니….     


너무나 아득한 거리였다. 하지만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사그라지지 않았다. 결국, 휴가를 내서 강원도행을 도전하기로 했다.   

   

주변에서는 혼자 강원도를 간다니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걱정을 많이 한 사람은 바로 나일 것이다. 하루에도 수만 번 마음이 왔다 갔다 했다. 굳이 그렇게 무리해서 갈 필요가 있을까? 사고라도 나면 어쩌지? 그 정도 장거리는 좀 더 익숙해지고 나서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너무 내가 서두르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준비가 되는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운전은 해야 늘지, 무서워서 안 가다 보니 연습할 기회가 없고…. 연습을 안 하니 실력이 안 늘고. 실력이 없으니 무서워서 안 가고. 안 가니 실력이 안 늘고…. 악순환의 굴레다.     


그렇게 가기로 했다.     


숙소는 아는 분을 통해서 동해에 잡았다. 동해에서 고성까지 두 시간…. 바닷길을 따라 쭉 올라가기만 하는 것뿐인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강원도의 땅덩어리의 대단함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동해까지는 집에서 4시간 정도가 걸렸다. 4시간도 상당한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상당히 현실적인 시간으로 느껴졌다. 차를 몰고 멀리 나갔을 때 편도 두 시간 정도를 운전한 적이 있으니, 왕복으로 치면 4시간. 그러니까 왕복 2시간 코스를 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게다가 평일에 운전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더 나았다. 아무래도 주말보다는 차가 적겠지. 시골에서 운전해서 인지 나는 차가 많아지면 극도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는다. 여전히 시내 주행이 제일 무섭다. 그래서 모든 동선을 최대한 사람들과 만나지 않는, 시내를 피한 코스로 잡았다.      


원래 계획은 3박 4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2박 3일의 여행이 되었다. 여행지가 하나 빠지게 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전체적으로 짧은 거리를 운전했지만, 덕분에 한 번에 운전한 거리는 기록을 경신했고.... 뜻하지 않게 야간 고속도로까지 경험했다.     


아래는 2박 3일 동안 느낀, 운전 관련 생각들.         

 

1. 속도가 느린 것이 꼭 안전하지는 않다.


이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는데, 이번에 제대로 체감을 했다.

나는 자동차 계기판 기준으로 정속, 혹은 그 이하로 달리는 편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나보다 다 빠르게 달리는데, 간혹(..) 나보다 느리게 운전하거나 나와 비슷하게 운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웬만하면 그 차를 따라서 속도를 늦추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차가 무서운 사람이라 안전거리를 많이 확보하는 편인데, 속도가 나보다 느리면 그 안전거리가 좁혀진다. 여행 중에 몇 번이나 이런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상황에 대처한다고 고생해야 했다. 무리해서 움직여야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내가 도로의 흐름에 맞지 않게 느리게 움직였을 때, 다른 사람들이 이런 느낌이었겠구나. 나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무리했었겠구나. 이래서 도로의 흐름에 맞게 운전해야 한다는 거구나.

내가 직접 교통사고의 가해자가 되는 것도 무서운 일이지만, 내 행동으로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간접적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시내 운전에서 속도를 내고, 다닥다닥 붙어서 운전하는 건 아주 무섭지만, 더욱더 용기를 내야겠다. 모두를 위해서!    

 

2. 사고는 완전 초보보다 나 운전 좀 하는데? 하는 순간 일어난다.

운전도 어느덧 1년 차. 여전히 차폭 감도 어렵고 시내 주행은 무섭지만 앞으로 가는 건 그럭저럭 해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운전 중에 긴장도 예전보다는 덜하다. 그러니까 전에는 꿈도 못 꾸던 에어컨 풍향 조절이나 라디오 채널 바꾸기도 가능하다는 말이다.

꼭 한번 가고 싶었던 두타산 가는 길, 주차장 근처에 편의점이 있다는 인터넷의 한 줄만 믿고 가기엔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니까 가는 길에 편의점이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다. 그 말인즉, 운전 중에 길거리 상가들을 힐끗힐끗 보았다는 말이다. 평소 같으면 차를 멈추고 편의점을 검색해서 목적지로 등록하고 움직였을 것이다. 중간에 찾아보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틀간의 집중(!) 운전으로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니 슬그머니 시도해 본 것이다. 사고는 없었지만 스스로 느끼기에 불안한 순간들이 있었다. 아직은 한눈을 팔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아닌 거로. 7번 국도 드라이브도 같은 느낌이었는데…. 운전을 하는데 바다를 볼 틈이 없다. 바다는 그냥 주차하고 보는 거로. 운전할 땐 운전에만 집중하자!     


3. 내리막길에 주차하다.

평지가 아닌 곳에 주차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삼척항으로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나올 것이 분명해서 마을 인근에 주차했다. 그런데 차를 주차한 곳은 아주 야트막하긴 했지만 내리막길이었다. 나는 평지도 예외 없이 주차하면 무조건 사이드 브레이크를 올리는데, 엄마는 사이드는 생명줄이라고 했다, 언덕인 만큼 몇 번이나 더 확인했다. 앞바퀴도 완전히 꺾어두었지만, 볼일을 보고 돌아올 때까지 마음이 안 좋았다. 다음에는 웬만하면 그냥 평지에 해야지. 아니면 바퀴에 괴는 디딤돌이라고 차에 싣고 다녀야겠다.

그나저나 요즘 유난히 주차가 잘 안 된다. 처음에는 이것보다는 더 잘 되었던 것 같은데…. 내 생각에는 내가 기준을 잡지 않고 그냥 주차하려고 하는 점과 사이드미러보다 후방카메라로 위치를 잡으려고 하는 게 문제인 것 같다. 후방카메라로 주차를 하면 조금만 각도가 달라도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크윽. 센서와 사이드미러만 이용해서 주차하는 법을 좀 연습해야겠다. 아, 이 차에도 후진하면 자동으로 사이드미러가 내려가는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4. 비가 올 땐 조심해.

동해로 올라가는데 갑자기 비가 진짜 엄청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양동이로 쏟아붓는 것 같았는데 앞도, 옆도, 뒤도, 하나도 안 보였다! 거의 기듯이 움직이고 있는데, 내 바로 앞에 가는 차가 너무 크고 게다가 엄청나게 느렸다. 점점 좁혀지는 거리에 이러다가 부딪힐까 두려워 추월을 마음먹었다.

그렇게 1차선으로 들어갔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나는 고속도로든 국도든 1차선은 조금만 오래 있어도 마음이 불편해지는 병(..)이 있어서, 어서 빨리 2차선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강박을 느낀다. 그래서 바로 2차선으로 내려왔는데, 문제는 그 큰 차 앞에 있던 차도 느렸다! 들어갈 때부터 좀 느리다는 느낌이 있긴 있었는데 1차선에 있기 싫다는 생각에 조금 무리해서 움직였다. 그런데 앞차는 생각보다 더 느렸고, 무엇보다 빗길 때문에 내 브레이크가 잘 듣지 않았다. 거의 박을 뻔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미친 짓이었다. 고속도로에서나 1차선이 추월차선이지……. 뭐 암묵적으로(?) 국도에서도 1차선을 그렇게 쓰는 것 같지만…. 그래도 눈치 좀 받고 욕 좀 먹는 게, 사고가 나는 것보단 훨씬 났다!

무엇보다 앞으로 비가 그 정도 오면, 그냥 어디든 차를 세우자. 하….     


5.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임을 항상 기억할 것.

관광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 신호등이 없는 건널목에 섰다. 대형 관광지 입구의 교차로는 편도 3차선, 왕복 6차선이나 되었다. 이런 길에 신호등이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내가 불평을 한다고 고쳐질 것도 아니고…. 나는 나중에 차를 뺄 때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건널목 앞에서 멈춰 섰다.

건널목 앞에는 나 외에 다른 가족들 한 팀이 함께 서 있었다. 드문드문 오던 차가 멈추지 않자, 결국 해당 가족 중 한 명이 달려오는 차를 향해 손짓해서 멈춰 세웠다. 그들과 두 세 걸음 떨어져 있던 나도 덕분에 건널목을 건널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마지막에 일어났다.

차 한 대가 건널목으로 멈추지 않고 그냥 달려오 것이다. 해당 차량은 나와 거의 50센티(심리적인 영향이 있을 수도 있으니 1미터?) 정도를 두고 멈춰 섰다. 어이가 없어서 차를 바라보니 선팅이 진해서 운전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뭐 이런 미친 사람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도 차에서 내리면 보행자일 텐데, 무슨 생각으로 저렇게 달리나 싶었다. 차에 타고 있을 때나 운전자지, 기본적으로 우리는 다 보행자다. 그걸 잊지 말고 운전해야겠다.     


2박 3일. 총 운전 약 1천 킬로, 운전 시간 약 18시간. 그것이 99에서 93점으로 떨어진 티맵 점수.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자, 무릎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엉덩이는 쪼개질 것 같고, 그냥 온몸이 찌뿌드드했다. 그렇지만 사고 없이 돌아왔다. 오늘도 운이 좋았다. 운전하면 할수록 사고의 위험은 커진다. 안 하면 언제나 사고 가능성은 0%. 운전대를 잡는 순간 언제나 50%. 그러니까 오늘의 안전운전도 결국 운이 좋았기에 가능한 것.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슬그머니, 이 정도면 운전실력이 좀 늘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시골에 도착해, 양쪽 골목에 빽빽이 주차된 차를 스쳐 지나가며 부딪칠까 두려워하며 온몸을 움츠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아, 언제쯤 골목길 불법주차를 보며 쫄지 않고 갈수있을까?


한동안은 장거리 운전은 안 할 것 같다. 뭐, 이러다가 마음 바뀌면 또 나가는 거긴 하지만……. 그나저나 이제는 정말 시내 운전 잘하고 싶. 시내는 너무 무섭다. 차가 무섭다. 사람은 더 무섭고….     


어느덧 1년이다. 벌써 1년. 내가 운전을 하는 일은 영원히 없을 것 같았는데, 어느덧 1년이 되었다. 1년 전, 차에 시동을 거는 것만으로도 두려웠던 내가 이제 익숙하게 차에 오르는 것처럼, 내년에는 시내 운전도 좀 더 편해질 거라 믿는다. 그렇겠….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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