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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gifilm 박경목 Sep 24. 2023

미식가

단편소설

달수는 미식가다. 그가 비싼 곳이나 맛 집 만을 찾아가는 사람이란 말은 아니다. 그는 자취를 하면서 어쩔 수 없이 종갓집 김치를 사먹지만 겨울철에는 한 봉지에 이천 원 하는 생굴을 사서 김치에 넣어 먹는다. 처음에는 생굴과 김치를 함께 먹는 맛이 있고, 굴이 녹기 시작해서 김치에 배이게 되면 사서 먹는 다른 김치와는 구별되는 깊은 맛이 생기고 김치를 거의 다 먹을 즈음에는 굴이 녹아서 형체만 겨우 남아 있는 데 이때는 굴 소스와 함께 김치 남은 것으로 굴김치 볶음밥을 만들어 먹는다. 달수는 큰돈과 노력을 들이지 않으며 일상에서 자그마한 행복을 찾는 것을 즐겼다.


그가 그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의 어머니가 요리를 너무나 못하기 때문이다. 달수의 어머니는 마흔이 넘어서 달수를 낳다보니 둘 사이에 나이 차이만큼 입맛의 차이가 컸다. 보릿고개 시절을 거쳤던 어머니는 소고기면 최고의 반찬이었고 된장 하나면 식사가 해결 되었다. 달수의 어머니는 고향이 대구다. 대구 사람 중에 요리를 잘하는 사람은 달수가 만나본 사람 중에 한 명도 없었다. 달수는 어릴 적부터 전라도 출신의 어머니를 둔 친구 집에서 다양한 식재료의 깊은 맛을 구별할 줄 알았다. 결핍이 발전을 낳는다고 하였던가. 집에서 소태와 같은 음식을 먹던 달수는 또래 중에 어느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미묘한 맛을 구분하는 혀를 가지게 되었다. 서울로 대학을 오자 어머니는 반찬을 해다 날랐지만, 번번이 달수는 어머니의 반찬을 안 먹고 남겨두었다가 쉬고 급기야 반찬을 쓰레기통에 버린 것이 어머니에 들켰고 어머니는 반찬을 더 이상 가져 오지 않았다. 달수는 오히려 홀가분했다. 졸업 후 취업이 되지 못해 팍팍해진 살림살이지만, 달수는 싸게 산 반찬을 자기 식으로 가공해서 식도락을 즐겼다.


달수의 백수 생활도 다행히 한 해만을 넘기고 끝났다. 회사의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가 달수의 마음에 들었다. 달수가 속한 팀원은 10명 남짓하였고,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팀장의 소개로 소개팅을 해서 새침하지만 귀여운 은아와 몇 번의 데이트와 한 번의 키스를 하였다. 회사에서도 그의 능력에 대해 대체로 만족하는 분위기였다. 아무 문제가 생길 것 같지 않은 날이었다.


달수의 첫 월급날을 앞두고 팀원들 끼리 단체로 야유회를 갔었다. 야유회는 남이섬으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달수가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짜고 같이 입사한 동기 민석이 도시락을 주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달수는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제출하고는 근처의 맛 집을 찾았다. 스마트폰 맛 집 어플을 살펴보고 인터넷에서 맛 집을 검색하고 티비에 소개된 맛 집을 찾아서 크로스 체크 하였다. 블로그를 찾아보며 블로거가 알바인지 아닌지 여러 개의 글을 검색하며 정보의 신뢰성을 체크하였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하였던가. 유명한 유원지 근처에는 맛으로 승부하기 보다는 대부분 티비 출연으로만 승부를 걸어서 겨우 고르고 골라서 세 집 정도만 리스트에 올렸다. 그리고 서둘러 집에 갈 사람들 때문에 맛 집을 가는 데 혼선이 생길까봐 차량 배치도 음식을 찾는 성향과 달수씨의 친소관계에 따라 배치를 하였다. 모든 일을 끝내놓고 달수는 도시락을 담당하는 민석에게 도시락을 어떤 것을 할 것인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한솥 도시락이나 맥도날드 햄버거는 아니길 바랬다. 다행히 팀의 회식비가 남아서 프라자 호텔의 도시락을 사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달수는 어서 야유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야유회의 아침 날씨는 상쾌했다. 그 사이 달수는 은아와 한 번의 키스를 더 하고, 가슴까지 손이 갈 수 있었고, 서로 사귀기로 하였다. 달수는 카풀로 야유회 장소에 도착했다. 달수가 짜온 프로그램으로 레크레이션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고 모두들 즐겁게 오전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달수가 기다리던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그런데 한솥도시락과 맥도날드 햄버거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였다. 민석은 프라자 호텔에서 여당의 수련회 도시락을 맡게 되어서 우리 팀의 도시락이 취소되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다른 데를 섭외해야지 라며 팀장이 민석 에게 쫑크를 주었지만, 민석은 이내 남은 회비로 끝나고 돌아갈 때 근처 맛 집을 가자고 하였다. 팀원들은 툴툴되면서 오히려 그것이 더 좋겠다며 이내 삼삼오오 모여서 도시락을 먹었다. 달수는 한솥도시락을 보고 있으니 울렁증이 심해져서 그늘에 가서 쉬겠다며 삼다수 하나만 들고 점심시간을 보냈다.


야유회의 오후 프로그램은 사진 찍는 것으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즐겁게 삼삼오오 모여서 사진을 찍었지만 달수씨는 흥이 나지 않았다. 배도 고프고 먹지 못한 도시락에 대한 미련 때문에 빨리 야유회가 끝나서 자신이 골라 놓은 맛 집에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달수씨는 같이 사진을 찍자는 사람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사진을 찍겠다고 자원을 하고 민석의 사진을 찍을 때는 눈을 감는 순간에만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묘하게 사진 찍는 위치를 움직여서 민석이 마치 여직원들을 음흉하게 보는 시선처럼 보이게 되는 사진을 찍는 소심한 복수를 하였다.


야유회가 끝나자 팀장은 민석에게 식당을 안내하라고 지시를 하였고, 민석은 그제서야 스마트 폰으로 맛 집을 검색하고 있었다. 달수는 분통이 터져 팀장에게 자신이 조사해온 맛 집을 알려주었다. 팀장과 팀원들은 반색을 하며 달수를 칭찬하고 달수가 조사해온 맛 집으로 차를 타고 이동했다. 그러나 맛 집으로 알려진 삼대 째 지리산 약초 먹인 돼지를 팔고 있다던 그 집은 휴가중 이라는 간판만이 입구에 걸려있었다. 다시 다른 맛 집으로 가는 길은 네비게이션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는 곳이어서 길을 찾다가 차들이 뿔뿔히 흩어졌고 결국 모두 모여서 간 그곳은 이미 다른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팀원들의 얼굴에 조금씩 짜증이 보였고 달수는 서둘러 그 근처에 유황오리를 맛있게 하는 집으로 팀원을 안내했다.


삼대 째 유황오리를 하고 있다는 그 집의 주차장은 넓었고 식당의 분위기는 티비에 나오는 맛 집과는 다른 깊은 내공을 가진 요리사가 있을 법한 분위기였다. 문턱을 넘을 때 느낌이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가족들의 얼굴은 식사에 만족한 것이 분명한 얼굴이었고 다시 오고 싶다는 말까지 하며 달수를 지나갔다. 팀원들도 모두들 지난했던 여정을 모두 잊은 듯 기대에 부풀어 자리에 앉았다. 오리가 요리 되는 데 걸리는 삼십여 분의 시간도 그들에게는 즐거운 기다림이었다. 원래 유황오리는 준비하는 데 하루가 걸리는 요리인데 다른 손님들이 예약을 취소해서 먹게 되었다며 자신들에게 찾아온 행운을 즐기고 있었다.


팀장에게 연락이 왔다. 팀장의 와이프가 장을 보러 가야 되는 데 차가 필요하다며 빨리 집으로 들어 가봐야 한다고 했다. 팀장은 먼저 가겠다고 하자, 팀원들은 그냥 간단하게 먹고 가자고 하였고 팀장은 된장찌개를 시켰다. 그러자 다른 팀원들은 김치찌개와 순두부 등등을 시켰다. 달수씨는 무엇을 시킬까 고민을 하다가 옆 테이블에서 남긴 간장게장을 보았다. 메뉴판에서 된장찌개와 순두부 김치찌개는 모두 6,000원 인데 간장게장은 8,000원 이었다. 민석이 주문을 받자 달수는 간장게장을 주문하였다. 민석은 모두들 6,000원 짜리로 통일을 하자고 하였고 달수는 자기가 2,000원을 내겠다고 하였다. 반찬으로 나온 간장게장은 너무나 맛있었고, 달수는 이런 싼 값에 이렇게 맛있는 간장게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해서 옆에 사람들에게 같이 먹어보라며 권했지만 모두들 웃으며 사양했다. 그러고는 “달수 씨는 정말 미식가 인가 봐요?” 라고 말했다.


야유회에 돌아온 주 일요일에 달수는 여자 친구 은아를 만났다. 사흘 만에 만난 은아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달수는 여자 친구에게 자신이 찾아둔 된장비빔밥 집에 데리고 가고 같이 영화를 보고 핸드드립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셨다. 대한민국에서 삼대장인이라고 소문난 커피명인의 집이었다. 은아가 일요일 하루 동안 했던 모든 말은 “그래요.” 밖에 없었다. 달수는 은아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은아가 집 앞에서 돌아가는 달수에게 그만 만나자고 하였다. 자신은 달수를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없다며. 달수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달수가 갑자기 왜 그러냐며 이유를 물어보자 은아는 회식에서 달수가 시킨 간장게장의 이야기를 하였다. 달수는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은 것이 무슨 문제냐고 말했다. 은아는 그런 것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싫다며 더 이상 만나지 말자는 말을 하고는 집에 들어갔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해서 달수는 은아를 소개시켜 준 팀장에게 상담을 하러 찾아갔다. 팀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달수 씨의 이야기를 듣는 둥 마는 둥 했고 점심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야기를 하자고 하였다. 점심시간이 되었고 가족 같은 팀원들은 모두 함께 식사를 하러 나가고 있었다. 팀장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달수에게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를 끄고 와달라고 하였고 달수가 팀장의 모니터를 끄고 엘리베이터에 오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달수는 팀원들이 주로 가는 식당에 찾아갔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민석 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기다릴 것 같은 미안한 마음에 달수는 회사 근처의 식당을 다 들어 가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땀을 식히다가 다른 팀의 직원을 만났고 그 직원은 달수에게 팀원들이 회사 길 건너편 식당에 모여 있다고 알려 주었다. 달수가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자 팀원들 모두가 식사를 하다가 식사를 멈추고 달수를 쳐다보았다.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달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민석은 달수에게 다른 곳으로 가서 혼자 식사를 하라고 하였다. 팀원들 누구도 달수와 함께 식사를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달수가 자신이 왜 왕따를 당해야 하냐며 항의를 하자, 민석은 달수가 시킨 간장게장 이야기를 꺼냈다. 모두들 육천 원짜리 먹는데 달수 혼자 팔천 원짜리를 시킨 것이 다른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했다. 누군들 팔천 원짜리 먹고 싶지 않겠느냐며. 달수는 자신이 이천 원을 더 내었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가 먹고 싶은 거 먹으면 되지 않겠느냐 그게 무슨 문제냐 라고 하였다. 민석은 그 정도 눈치가 없으면 사회생활 하기 힘들다 라며 달수를 버려두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달수의 핸드폰에 메시지가 들어왔다. 자신의 월급통장에 월급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였다. 달수는 첫 월급을 타면 먹고 싶은 것도, 여자 친구와 가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단지 배가 고프다는 것 밖에. 달수는 회사 앞에 있는 한솥도시락에서 돈까스 도시락을 샀다. 퍽퍽한 한솥 돈까스 도시락. 그 쏘스는 아스팔트의 냄새처럼 역해서 보는 것 만으로도 토가 나올 정도였는데 이제는 달수에게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편의점 앞 벤치에서 도시락을 입에 넣었다. 제대로 씹지 않은 돈까스 덩어리가 식도를 지나 출렁 거리며 위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위안에 돈까스가 꽉 차게 되자 허기는 가셨다. 달수에게 침이 고이게 만들었던 상상은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이라도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게 되면 맛있게 될 거라는 상상이 떠오르지 않았다. 


달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의 반찬이 먹고 싶다며. 어머니는 기뻐하며 지금 당장 반찬을 해가지고 올라가겠다고 하였다. 달수의 위가 출렁거리며 억지로 삼켰던 돈까스 덩어리가 물컹하게 혀에 닿았다. 까끌까끌하며 걸레의 퀴퀴한 냄새와 위산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달수는 숨을 참으며 음식을 다시 삼켰다. 꿀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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