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죽음> (에밀 졸라 지음, 이선주 옮김, 정은문고, 2019)
<결혼, 죽음>은 에밀 졸라가 1875년에 집필한 단편집으로, 귀족, 부르주아, 상인, 서민 등 프랑스 각 사회계층의 결혼과 죽음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에밀 졸라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전형적인 형식에 세밀한 묘사를 더해 풍자 효과를 극대화한 풍속도를 감상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시대를 불문하고 결혼, 사랑 그리고 죽음은 베일에 싸여 있을 때 아름답다. 향처럼 피어오르는 낭만, 회한 등을 걷어내고 현실 속 또렷한 형태의 결혼과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씁쓸해진다. 그리고 그 씁쓸함은 은은한 회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우리의 통각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러한 자극이 주는 쾌락을 맛볼 수 있다.
19세기말이라는 배경에 맞게 책에서 귀족은 기울어가는 위세를 의식하지 않는 척하는, 타고난 여유로움을 과시하는 태도를 드러낸다. 부르주아는 부와 인맥을 전시하는 것에 목숨을 걸지만, 결코 향락에 빠져들 듯 과시욕에 잠식되진 않으며, 끊임없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습을 보인다.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상인 계층에 대한 묘사였다. 상인 계층에 속하는 부부들은 검소하고 성실한 동시에 지독히 이해타산적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계산적 면모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을 가장 인간적으로 보이게 한다. 이들의 관계는 평생의 ‘동업자’에게 느낄법한 (차갑고도 따뜻한) 감정으로 엮여있는데, 이런 관계는 오늘날 ‘결혼’이 불러일으키는 것과 굉장히 유사한 이미지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19세기말에는 풍자의 대상이었던 계산적인 삶의 방식이 오늘날 얼마나 일상적이고 ‘인간적’인 것이 되어버렸는지 느낄 수 있다.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오늘날 얼마나 유효한지는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일단 중요한 점은 이 책이 재미있다는 것이다. 다음과 같이 시작되는 서문을 펼치는 순간, 책 읽기를 멈추는 것이 힘들어질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사랑은 휘황찬란한 복장에다 현란한 머리 깃털까지 장식한 채 장중한 음악이 흐르는 살롱을 유유히 걸어가는 영주였다…(중략)… 게다가 적절한 부드러움과 과장되지 않은 명쾌함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우아했다. 18세기 사랑은 천방지축 청년이었다. 자연스레 미소 짓듯 점심은 금발 여인, 만찬은 갈색 머리 여인과 소탈하게 사랑을 했다…(중략)…19세기 사랑은 단정한 청년이다. 나라 세금을 꼬박꼬박 매기는 법조인처럼 정확하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일에 쫓긴다. 그러다 밤 시간은 보다 실용적인 데 쓴다. 사랑을 나누기 위해 돈을 지불한 여인과 함께. 아니면 자신에게 돈을 지불한 법적 아내와 함께.”
(pp.8~9)
에밀 졸라는 과연 21세기의 사랑을 어떻게 정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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