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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이륙 Sep 17. 2023

<쓰라는 대본은 안 쓰고>

(4) 상처는 과거다. 혼자 있던 공포도 과거다.

- 으아아악!! 내가 아니라고!!!


모두가 잠든 새벽 2시경, 갑작스러운 소란에

두 눈을 번쩍 떴다.


-월월월


배 뒤집고 자던 강아지도 혼비백산해서는

연신 짖어댄다.


“쉬이. 괜찮아. 괜찮아. 아빠야.”


짖어대는 강아지를 달래며 방에서 나와,

아빠의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아니라고 했잖아... 흑흑.”


침대에 누워 제법 정확한 발음으로

잠꼬대를 하고 있는 아빠가 보인다.

도대체 뭣이 그렇게 억울한지,

일흔이 다 되어가는 아빠가 자면서 엉엉 운다.

 

“아빠. 꿈이야. 울지 마. 괜찮아.”


“으응? 응.. 응... “


천천히 아빠의 등을 쓸어내리며 깨우니,

잠시 눈을 떴다 금세 다시 조용히 잠들었다.

우리 아빠의 꿈자리가 편안해지려면,

도대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려나.




아빠에게는 아주 오래된 상처가 있다.

억울함, 배신감, 슬픔, 미움, 분노 등 온갖 감정이

섞여있는...‘사람’에게 입은 상처다.


벌써 30년도 더 된 옛날 일이고,

심지어 아빠에게 상처를 줬던 사람은 세상을 떠났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빠는 여전히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도 상처는 있다.

아니, 오히려 상처 투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그중에는 이제는 해프닝으로 취급할 만큼

농도가 옅어진 것도 있고,

들춰보기도 싫을 만큼 핵폐기물급 농도의 그것도

존재한다.


아마 상처의 성격은 각각 다르지만,

상처받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을 거다.

하지만 문제는 상처에 대한 후유증이다.


이를 유연하게 대처하며 넘어가는 이도,

사사건건 들춰내며 굳이 또 아물어가는 상처를

헤집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그 후자다.


내가 겪는 대표적인 후유증은 새로운 사랑을 하기 두려워하고, 깊은 관계를 맺기 두려워한다는 것.

그러다 보니 사람과의 관계에서 방어적이 됐다.


한번은 상처로 인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던 날이 있었는데.

그러다 이 문장을 읽게 됐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상처가 있다 해도
상처에는 공통된 약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세상 모든 상처는
과거에 갇혀있다는 점이다.
상처는 과거다. 혼자 있던 공포도 과거다.
다 지나갔다.

- 사랑 수업 / 윤홍균


누군가 머리를 한 대 때린 기분이었다.

과거의 상처는 과거일 뿐이다.

상처 입은 것도 과거의 나지, 지금의 나는 아니다.

내가 현재 두려워할 대상은 될 수 없다.


나와 나의 아버지를 비롯, 상처 입은 사람들

모두가 오늘밤만큼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편안하게 잠들 수 있길 바라본다.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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