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권, 너무나 당연한.
지하철 문이 열리고 소란스런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책을 보다 깜빡 잠들어 감았던 눈을 뜨고 에세이를 보고있던 아이패드를 슬며시 덮는다.
'철커덕 철커덕'
금속이 부딪치는 둔탁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났고 뒤이어 누군가의 외마디 비명이 들린다.
꾸벅꾸벅 졸고있던 지하철 안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다. 제복을 단단히 차려입은 경찰들 사이로 휠체어 바퀴가 보인다. 바깥 움직임이 급해지고 여러가지 소리가 찢어질듯 들려올때마다 지하철 안 사람들도 함께 놀란다. 그때 “어..어! 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요란한 기계소리가 승강장을 메운다. 역무원과 경찰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기계가 부딪치는 소리의 근원은 지하철 문과 승강장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전동 휠체어였다.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이 경찰과 역무원에 제재를 받으며 넘어지려 하자 주변사람이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지른 것.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이동에 제한을 받은 사람들. 촘촘한 계단을 눈 앞에두고 아득해지는 순간을 무수히 많이 겪은 사람들. 이들이 생존을 위해 이른 아침부터 힘든 몸을 이끌고 투쟁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다. 밖의 시끄러운 소리를 들으면서 그녀는 이런 장애인 이동권 시위에 ‘반대’하는 여론을 떠올린다.
‘혹시라도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그렇게 갈 필요도 없어. 조금이라도 무거운 짐을 지고 이동할 때 까마득한 계단을 마주한 적이 있는가.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일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를 마주하는 좌절감을 그들은 매일 느끼고 있다고!’
그녀는 이들은 오랜 시간동안 (비장애인들은 전혀 생각도 해본적이 없었을)'이동권'에 대해 소리쳐 왔다는 것을 알고있다. 하지만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탓인지, 혹은 사람들이 귀를 닫고 있었던 탓인지 장애인의 기본권에 대한 정책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 저상버스 확대도, 장애인 기본권 예산 증액도 모두 무산됐다. 되레 불안하고 안전에 취약한 장애인용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사망하는 사고가 몇번 벌어졌다.
그들은 더이상 참을 수 없었고 목소리를 더 크게, 사람들의 귀를 일부러 열게 했다. 직장인의 출근시간이라 일컬어지는 오전 8시에 이동하고자 하는 것. 보통의 직장인에겐 너무나 당연한 이동이겠지만 그들에겐 당연하지 않았기에 목소리 터져라 말하는 것. 그렇기에 그녀는 그들의 움직임과 투쟁이 필수불가결이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그래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이 있겠어... 그들의 움직임을 응원하는 수밖에.' 매번 그렇듯이 마음속으로 조용히 생각을 되짚는다. 지하철 창문 틈으로 살짝 보니 피켓을 든 남성이 전동 휠체어를 빠르게 앞뒤로 운전한다. 누군가 넘어졌나, 하는 건조한 걱정을 하며 눈알을 굴릴 때, 지하철 승하차문이 닫혔다. 바깥의 소음도 닫혔다.
지하철이 고요해졌다. 고개를 쏙 빼고 있던 사람들은 다시 눈을 감고 쪽잠을 청한다. 지하철은 명동역을 떠나 회현역을 향한다. 구석에 서서 쪽잠자던 양복남자는 피곤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고 맞은편 여자는 서둘러 화장을 마무리한다. 그녀는 다시 아이패드를 열어 마저 읽던 책을 읽는다. 책의 제목은 ‘불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