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탈.출.
1. 00:00 AM
눈을 질끈 감는다. 깜깜하다. 이내 적막함이 찾아온다. 허전하다 못해 불안함이 몰려온다. 한숨을 크게 쉬어보지만 별 소용이 없다. 결국 참지 못하고 일을 저지른다.
'두둥-'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빨간 글자가 떠오른다.
NETFLIX
결국 50분짜리 에피소드 두 개를 보고 유튜브 쇼츠까지 알차게 훑는다. 그것도 모자라 트위터, 인스타그램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손목이 아프고 손가락이 저릿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 가 없다. 너무 뻑뻑해 깜빡거리기 어려울 정도로 눈이 건조하다. 어느덧 새벽 2시.
‘아, 그냥 바로 잘 걸'
후회가 몰려오고 핸드폰을 그제야 끈다. 협탁 스탠드 불빛때문에 네모난 핸드폰 화면에 두 눈이 살짝 비쳐보인다. 흐리멍텅하다.
2. 06:00 AM
알람이 울린다. 밭은 호흡과 함께 밍기적밍기적 몸을 일으킨다. 늦게 잔 탓에 몸이 찌뿌둥하다. 일어나자마자 아이패드를 들고 화장실로 향한다. 어제 보다 만 넷플릭스의 에피소드를 마저 재생하고 샤워를 시작한다. 몸을 다 씻고 옷방으로 간다. 물론 재생 중인 아이패드와 함께. 스킨로션을 바르고 머리를 정리하고 밥을 먹는 그 순간까지 아이패드는 바쁘다. 출근을 위해 대문을 나선다. 이제 아이패드는 핸드폰에게 바톤을 넘긴다. 에어팟을 귀에 꽂고 노래를 재생한다. 출근길 플레이리스트를 쭉 재생하고 나니 어느새 회사다.
3. 06:30 PM
직장동료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에어팟 장착. 유튜브를 뒤적거린다. 이 영상 저 영상 재생하다가 금세 지루해져 트위터를 연다. 음악은 계속 흘러나오고 내 눈은 흥밋거리를 찾느라 핸드폰에 고정돼 있다.
유튜브-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유튜브뮤직-트위터-인스타그램-유튜브-트위터….
어느새 집 도착.
4. 08:00 PM
엄마와 저녁을 먹을 땐 항상 우리의 루틴이 있다. 유튜브의 영화 요약 콘텐츠를 시청하는 것.
‘스릴러 영화 결말 포함’
언제나처럼 익숙한 검색어를 유튜브 검색창에 넣고 마음에 드는 썸네일을 클릭한다. 영화를 보면서 밥을 먹고 간간이 대화도 나눈다. 시선은 여전히 유튜브에 고정이다. 엄마가 오랜만에 불고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맛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5. 07:00 AM
어김없이 새벽에 잠들었고 여전히 피곤한 아침이다. 여느때 처럼 에어팟을 끼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깊게 꽂지 않았던 탓인지 갑자기 왼쪽 에어팟을 떨어뜨린다. 옷 소매로 먼지를 닦고 입으로 호호 분다. 그때 반가운 소리가 들린다. 언제 들었는지 모를 참새소리. 에어팟을 끼우려던 것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참새소리, 사람들의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귀를 여니 눈도 뜨인 느낌이다. 하늘이 무척 파랗고 나무에 초록잎이 무성하다. 벌써 이렇게 여름이 왔나 싶을 정도로 싱그럼움이 가득한 아침풍경이다. 에어팟을 집어넣고 핸드폰도 주머니에 넣는다. 버스안 사람들 말소리, 라디오 소리가 이렇게 반가운 적이 있었나. 볼 영상이, 들을 음악이 없으니 자연스레 오늘 할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사람구경도 한다. 잠시 멍을 때리기도 한다. 머리를 비우는 느낌인데 그 기분이 꽤 괜찮다. 눈도 뻑뻑하지 않아서 상쾌하다.
6. ESCAPED
거미줄에 걸린 벌레처럼 웹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버둥거리던 순간들이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네모난 화면에 갇혀있던 귀와 눈의 감각이 탈출한 느낌이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그 까만 화면에 있었던 걸까. 1초에 몇프레임씩 바뀌는 자극적인 화면 전환과 각종 소리들이 조합된 어지러운 효과음만이 즐거움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것들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과 걱정들을 잊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효과 좋은 수단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이 주는 강력한 ‘도파민'을 끊을 수 없었던 것. 하지만 그러는 동안 귀와 눈은 거기에 갇혀버렸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와 하늘과 나무의 풍경을 놓치고 말았다. 이제 너무 단순하고 강력한 ‘도파민 충전제'는 좀 자제하자.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좀더 가져보자. 그것에 비단 걱정일지라도. 피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건 아니니까. 화면에 나의 감각들을 꽁꽁 가둘수록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대신, 놓치고 있는 좋은 풍경은 없는지, 재미있는 주변소리는 없는지 눈을 활짝 귀를 크게 열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