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브이- 알고보면 쓸데있는 브랜드 이야기
When It Rains It Pours
바다는 염분을 포함하고 있는 해수로 이루어져 있다. 해수는 약 3.5%의 염분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는 평균적으로 35g의 소금이 1리터의 해수에 녹아있음을 의미한다. 이 염분은 수소이온(H+)과 염기이온(OH-)의 농도를 조절하고, 바다 생태계의 균형을 유지하는 등 여러 가지 생물학적, 화학적 역할을 수행한다.
대양과 바다의 전체 부피가 13억 7,000㎢이고 해수 내의 염분 농도가 평균 0.036㎏/ℓ임을 기준으로 해수 내의 전체 염분 함량을 추정하고, 이 결과 치를 추출해서 지표면에 깔아놓을 경우 지구 전체 지표면에 45m 두께의 소금 층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볼리비아와 페루, 칠레 접경 안데스 산맥 일대의 지각변동으로 솟아올랐던 바다가 빙하기를 거쳐 2만 년 전 녹기 시작하면서 만들어진 거대한 호수가 볼리비아 북쪽 습윤한 기후의 페루 접경 지역은 잉카제국의 신화가 시작되는 티티카카 호수(Lago Titicaca)로, 남쪽 칠레 접경 지역은 비가 적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물은 모두 증발하고 소금 결정만 남아 세계 최대의 소금 평원 우유니 소금호수(Salar de Uyuni)가 된다.
우유니 소금호수의 소금 총량은 최소 100억 톤으로 추산되며, 두께는 1m에서 최대 120m까지 다양한 소금 층을 이루며 우유니는 고립된 땅 볼리비아를 위한 신의 선물임을 증명하고 있다.
emptiness
소금 색과 같은 백(白)의 미를 중시하는 무인양품(無印良品 MUJI)의 아트디렉터인 디자이너 하라 켄야(Kenya Hara)는 완전한 지평선을 촬영하고자 사진작가 후지이 타모쓰(Tamotsu Fujii)와 함께 남미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호수를 찾았다. 고도 3,680m 안데스 산맥 중턱의 1만 2000㎢에 이르는 소금평원인 우유니는 360도 시야에 순백색 대지와 하늘 그리고 경계선인 지평선 밖에 보이지 않는 완전한 지평선(Perfect horizon)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런데 왜 그렇게 완전한 지평선이 필요했을까?
하라 켄야는 지평선과 함께 우유니 마을의 14살 소녀를 작디작은 인간을 상징하는 점(點) 같은 피사체로 삼아 단순하지만 지구와 인간의 궁극적인 구도, ‘아무것도 없지만 그곳에 모든 것이 담긴’ 장면으로 무인양품의 미래를 담아내는 그릇이자 비전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표현하고자 했다.
일본에는 '무지스타일'이라는 용어가 있다. 소비자들이 만들어 낸 이 용어는 무인양품 브랜드의 철학을 이해하고, 참여한다는 의미로 이미 하나의 문화이자 세계관이 되었다.
2001년 마쓰이 타다미쓰가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무인양품의 매장 매뉴얼 ‘무지그램’으로 매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구조화시켰다. 마쓰이 타다미쓰의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에 의하면 매뉴얼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상품을 고르고, 구매 후 나갈 때까지의 모든 상황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분량만 2,000쪽에 이르고 해외 매장은 각 지역의 소비자에 맞춰 별도의 매뉴얼이 제공될 정도로 치밀하다고 한다.
무인양품의 강점은 변화하는 무지그램과 변하지 않는 철학에 있다.
무인양품의 매장 매뉴얼 ‘무지그램’은 고객과 트렌드, 지역에 따라 주기적으로 변화하면서 성장한다. 반면에 철학은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인사하는 방법부터 제품을 진열하는 방식까지 그들의 매장에는 이미 ‘비움으로써 채워진다’는 공(空 emptiness)의 철학이 흐르고 있고 소비자는 매장에서 무의식적으로 무인양품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안데스 산맥의 ‘우유니 소금호수’와 몽골의 초원 ‘마루하’에서 얻은, 화면을 상하로 확실하게 둘로 가른 ‘완전한 지평선’에 배치한 ‘MUJI’ 로고(logotype_無印良品 MUJI)는 장대한 규모의 텅 빈 그릇에 ‘아무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emptiness의 브랜드 철학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Umbrella Girl
우유니 소금호수에 14살 우유니 소녀가 있다면 1910년 시작된 미국의 소금회사 모튼솔트(Morton Salt Company)에는 8살이 채 안 되는 모튼솔트 소녀(Morton Salt Umbrella Girl)가 있다.
1914년 데뷔한 모튼솔트 소녀는 이후 1921년 곱슬곱슬한 금발머리에서 갈색머리로, 1933년 다시 곱슬머리로, 1941년 아이코닉한 노란색 드레스로, 1956년 처음으로 노란색 손잡이가 달린 우산을 들고, 1968년 현재와 유사한 금발의 노란 드레스로 변신을 거쳐 2014년 데뷔 100년을 맞아 보다 모던한 모습으로 업데이트되어 역시 1914년 만들어진 브랜드 슬로건(Brand slogan) ‘When It Rains It Pours®’와 함께 현재의 모습으로 활약하고 있다.
비가 쏟아지는데(when it rains it pours) 소금이 줄줄 흘러내리는 소금 통을 끼고 우산을 들고 서 있는 미국 서민 가정 소녀의 모습으로 모튼솔트 걸은 지난 110년 동안 각 시대를 대표하는 7명의 소녀로 변신을 거듭하며 미국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습기에 눅눅해지지 않는 우수한 품질의 소금임을 강조하기 위해 폭우 속에서도 알갱이로 흘러내리는 장면을 강조하면서 소녀들은 세대를 달리해도 모튼의 소금은 여전히 최고야!라는 듯이 캐릭터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했고 적어도 지난 110년 동안 훌륭한 성과를 내고 있다.
소금 알갱이가 육면체 모양인 다른 소금과 달리 구(球) 모양의 알갱이라는 제품 특성을 소비자 관점에서 쉽게 풀어냈다는 점도 제품 속성과 이미지를 동시에 어필하는 좋은 전략이다.
지난 110년 간 세대를 달리해 변신한 7명의 우산 소녀들을 통해 트렌드를 잃지 않는 기업의 감각을 보여주었다는 점, 아무리 폭우가 쏟아져도 변치 않는 제품의 신뢰감을 110년을 유지한 슬로건(When It Rains It Pours®)에 담아냈다는 것이 모튼솔트 브랜드 경영의 핵심이다.
모튼솔트는 110년 전 작은 소녀가 어떻게 시대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작은 우산 소녀(Morton Salt Umbrella Girl)는 한 세기가 넘게 살았다.
소녀는 영화의 탄생과 비행의 기적, 최초의 달 착륙과 뮤직 비디오에 이르기까지 지나온 시대의 많은 것을 보았다. 패션의 유행이 왔다가 사라지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았으며 로큰롤에서 랩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들었다.
소녀는 심지어 SNS에 빠져 있다!
소녀는 또한 많은 일을 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음식의 맛을 내고, 물을 부드럽게 하고, 얼음과 눈을 녹이고, 산업 공정을 개선하고, 의약품을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등 많은 일을 했고 이 모든 것이 한 어린 소녀에게서 나온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소녀를 시대의 아이콘으로 자라게 한 것이다.
(mortonsalt.com/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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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오염수 방류 문제로 시끄럽다.
정부는 국제기구의 평가와 과학을 믿으라고 하고 사람들은 소금 사재기를 하고 있다.
에릭 시걸(Erich Segal)은 그의 메디컬 픽션 『닥터스(Doctors)』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의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작 본인이 환자가 되어 다른 의사에게 자기 몸을 맡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사가 인체를 너무 모른다는 것을 의사가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자는 절대적 기준에서 과학을 얼마나 알고 있을까?
When it rains it pours!
하루 종일. 밤을 새워.
비가 쏟아지고 있다.
이렇게 비가 쏟아져도 눅눅해지지 않으려면.
더 단단해지려면.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브랜드를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