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Apr 21. 2024

나를 성장시키는 사람

"아, 제 눈은 괜찮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기댈 수 있는 작은 공간만 있으면 순식간에 잠에 들 수 있는지 그의 수면 스타일은 늘 신기하다. 그에 반해 빨리 잠드는 일은 내게 성과없는 숙원 사업이 된지 오래다. 누운지 5초만에 잠드는 그 옆에서 내 머리 속은 여전히 분주하다. “그게 과연 좋은 분석이었나?” “내일은 악기 연습을 더 해야겠다” 그렇게 주제없이 생각 속을 한참 떠다니고 나서야 나는 잠이 든다.



그의 스위치를 켜고 끄는 듯한 수면 스타일은 그의 사고 방식과 유사하게 닮아있다. ”그 사람은 나에게 왜 그런 말을 했지?“ 때로 걱정을 만들어내는 나를 보면, 그는 ”그냥 질문일걸?, 필요하면 다음에 다시 말하지 않을까“ 표현 그대로 해석한 의견을 제시한다. 굳이 문제 삼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그의 간단한 해석을 듣고 있자면 마음이 가벼지곤 한다. 덕분에 타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자연스럽게 배울 수 있었다.



“단순하게 살자”의 사람 형태가 있다면 아마 이런 모습일까 싶은 그의 장점은 그 자체로 단점이 되어 우리는 자주 싸웠다. 그와 첫 데이트때 있었던 일이다. 야외가 아닌 커피숍 실내에 앉고 싶었던 나는 에둘러 그에게 표현했다. “햇볕 때문에 눈이 아프진 않으세요?” 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아, 제 눈은 괜찮습니다” 이 사람을 센스가 없다고 해야하나 정보 전달이 정확하다고 해야하나 황당했다. 그러나 나는 미국 유학중이었고 그는 미국인이기 때문에 '아마도 언어장벽으로 표현이 잘 전달이 안됐겠지' 선한 추정이 우리의 두번째 만남을 성사시켰다.



그 뒤로도 그런 류의 대화는 반복됐고 언어 때문은 아니라는 것이 확실해지자 갈등이 잦아졌다. 그와 나는 커피숍에 앉아 커플 상담 워크북을 놓고 한 시간씩 대화 연습을 했다. ‘의도를 명확히 표현하는 방법’,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는 방법’을 함께 배웠다. 그 과정을 거치며 우리의 대화가 그리고 관계가 급격하게 성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와의 관계를 통해 알게된 점은, 배울 점이 많은 사람도 나를 성장시키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도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다보니 그 두 사람을 합쳐놓은 대상이 그이고, 아마 그에게는 내가 그런 사람일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함께 성숙해지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그의 순식간의 잠드는 기술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미국에서 심리상담가로 취업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