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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가 Sep 11. 2023

우리는 어떻게 빠빤다얀 화산을 가게 되었을까?

 이번 여행의 전환점이 되었던 빠빤다얀 화산을 방문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반둥에 처음 도착했을 때 자카르타에서 보고르의 따만 사파리를 방문했을 때의 고생 때문이었는지 L이 조금 아팠다. 자카르타에 거의 열흘 동안 머무르며 지낼 만은 했지만 뭔가 아쉽고 잘 풀리지는 않는 느낌이었다. 몸은 불편했지만 전체 일정을 보면 더는 머무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이동한 곳은 반둥이었다.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의 5시간 이코노미 기차이동은 좋았다. 이코노미석은 2명씩 앉는 자리가 서로 마주 앉게 되어 있었는데 인니인들이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석 간 간격이 좁아 아주 가까이 서로 마주 보며 여행을 해야만 했다. 이후 족자카르타를 향하던 야간 기차를 탈 때에는 그 좁은 공간 때문에 서로의 다리에 닿지 않게 조심하느라 자는 것이 매우 불편했지만, 어떤 여행기에서는 밤새도록 테트리스를 한다라고 적혀 있었다. 저녁 5시간 정도 이동하기엔 꽤 깔끔하게 유지되고 있는 클래식한 기차의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밤 10시쯤 도착한 반둥은 자카르타보다 고도가 높아 지내기에 훨씬 쾌적했다.      


아마 빠빤다얀의 이름이 처음 튀어나온 것은 반둥의 캡슐 도미토리 ‘도쿄쿠보’에서였다.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던 일본풍의 캡슐 도미토리였고 커다란 전자식 락커도 잘 구비되어 있는 깔끔한 느낌의 숙소였다. 하지만 수일을 머무르며 맨발로 사용해야 했던 화장실이 관리되지 않아 그 냄새가 밖으로 나오는 느낌이 있었고, 수일 후 매트를 청소할 때에는 독한 향의 방향제로 대충 덮어 버리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공용공간은 조금 어둡고 모기가 상주해 홈메트와 함께해야 했다. 무엇보다 여행 중 앓는 시간이 좋은 기억으로 남을 리 만무했다. 몸이 나으면 반둥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보다 땅꾸반 쁘라후라는 화산을 많이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글 후기를 살펴보고 사진을 보았을 때 아주 좋을 것 같은 확신은 들지 않는 곳이었다. 하지만 인니의 유명한 지역이(특히 국립공원) 그러하듯 현지인들의 10배쯤 되는 외국인 입장료를 매겨두었다. 다만 따만 사파리는 가지 않는 선택도 있는 느낌이라면 이곳은 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긴 했다. 한국 방송도 여러 번 다룬 적이 있었고 여행후기도 많은 관광지였다. 노골적인 외국인 입장료에도 이곳을 가기로 결정한 것은 처음 보는 활화산이라 최소한의 만족은 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얘기를 하다 내 취향을 잘 아는 L이 땅쿠반 쁘라후의 구글맵 후기에서 다른 산의 이미지를 발견했고 그게 바로 빠빤다얀 화산이었다.      


빠빤다얀은 구글맵의 안내대로라면 반둥에서 대략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활화산이었다. 우선 이곳에 흥미가 갔던 것은 이대로 다른 사람들이 가던 루트대로만 간다면 별로 만족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벗어나 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었다. 지난번 말레이시아 여행이 뭔가 아쉬웠을 때 태국을 가지 않고 갑자기 미얀마를 향했던 것은 굉장히 좋은 선택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에 대해서는 L도 공감대가 있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여행지로서는 다소 낯선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오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땅꾸반이 비싸고 애매해질 가능성이 높다면 빠빤다얀을 간다면 무난한 풍경을 보여주더라도 적어도 배후도시인 가루트라는 소도시에서 출발할 가능성이 높았고 유명하지 않은 소도시 체험 정도는 가능할 것 같았다. 물론 소도시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 있었다. 그곳까지의 이동도 그렇고 소도시일수록 인니어로 소통해야 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여정 역시도 늘어질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 관광객의 자료는 찾기가 힘들었고 영어자료도 제한적이었다. 등반에 얼마만큼의 시간이 소요되는지 가루트에서 빠빤다얀까지는 어떻게 이동하는지 가루트까지는 어떻게 이동해야 하는지, 산에서의 이동 경로는 어떠한지 알아 두어야 할 것은 많았다. 다행히 가루트까지의 기차시간을 알게 되었고 어느 영어 자료에서 등반은 왕복 5시간 정도의 쉬운 코스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입장료가 평일 200000루피아 외국인 입장료를 받고 있는 것을 알아내었다. 외국인 입장료가 있는 부분에서 점수가 깎였고 구글맵의 후기 역시 등반은 쉬운 편이지만 호불호는 조금 갈리는 것 같았다. 우리의 판단은 대략 이 정도의 정보에서 멈춰 반둥과 렘방 땅꾸반을 오가며 크나큰 결정장애를 일으켰다.      


름방에서 반둥으로 돌아와 전망이 좋다는 구눙 뿌뜨리를 다녀온 것은 좋았다. 전망도 무척 훌륭했지만 오토바이를 타고 올라왔던 매표소-전망대 구간을 걸어 내려오는 길의 동네 분위기가 참 좋았다. 마침 전국을 커버하는 텔콤셀의 전파도 잡히지 않아 마치 쿠바에서처럼 천천히 동네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정상 근처의 길이었지만 어디에나 마을은 있고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적당히 포장되어 있는 내리막길은 편안했으며 어디에서 둘러보아도 차밭과 어우러진 풍경은 훌륭했다. 그렇게 조금씩 여행에서의 좋은 경험을 쌓아가며 마지막으로 빠빤다얀을 가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불확실성이 너무 많은 곳이고 전체 여정에서 시간도 꽤 많이 지났기 때문에 2-3일을 더 투자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되었다.      


그런데 L이 대안을 내어놓았다. 주말은 외국인 가격이 더 심각하니(인당 300000루삐아) 월요일 트래블 로까에서 차를 렌트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것도 기사님과 함께!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식이었지만 트래블로까에 그런 서비스가 있다는 것이었다. 반둥에서 빠빤다얀까지의 구글맵이 추산한 시간과 빠빤다얀에서의 산행 다시 족자로 향할 기차역에서 차를 반납하면 대략 12시간 안에 해결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만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낯선 서비스와 아직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빠빤다얀에서의 여러 변수에 로컬 서비스인 만큼 현지어를 쓰시는 기사님과의 동행이 원활할 지도 알 수 없는 점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단거리 투어들보다 훨씬 저렴했고(빠빤다얀으로 가는 투어는 현지인들 대상으로 그것도 주말에만 간간히 있을 뿐이었다.) 투어 후 바로 족자카르타로 야간 기차를 탈 수 있어 일정도 아주 효율적이었다. 늘 비효율적인 선택을 해 왔기 때문에 한 번씩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다만 우리는 빠빤다얀 외에는 달리 어떤 일정도 욕심내지 않기로 했다. 우리는 여러 이유로 불가능할 지도 몰랐지만 실패하더라도 한번 결행해 보기로 결정했다.     


 주말이고 전날 예약이었는데 예약 후 바로 왓츠앱을 통해 회사와 기사님이 번갈아가며 연락이 왔다. 종종 번역기를 돌려가며 보낸 문자에 한참을 답하지 않기도 했지만 조바심을 내지 않고 여유롭게 기다리니 답변이 와 있었다. 기사님이 한번 바뀌어서 드문 외국인임을 고려한 것인가 생각도 들었다. 소통이 완전히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우선 출발지와 도착지만을 명확히 하고 다음 날을 기다렸다. 떠나기로 결심한 후 반둥에서 족자로 향하는 기차를 예매했고 그날 밤은 한국에 여행을 오고 싶어 하는 스탭분과 한국 여행에 대해 이런저런 정보를 전해주기도 했다. ‘한국 여행의 팁’이라고 하니 너무 포괄적이었지만 내 첫 번째 대답은 능숙한 영어로 질문을 하면 될 것 같다는 것이었다. 히잡을 착용하신 동남아 여성분에게 한국사회가 과연 우호적일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나름대로의 냉정한 답변이었던 것 같다.     


 다음날 오전 7시 정도에 차량에 탑승했다. 기사님이 소형과 중형 중간의 차를 몰고 오셨고 우리는 배낭을 차 안에 집어넣었다. 기사님을 고용한 경우는 처음이었기에 꽤 묘한 기분이었다. 아직은 어스름한 기운이 남아있던 출근시간이었고 도로 위에는 꽤 많은 차량이 있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는지 L은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별 말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불편한 침묵은 아니었다. 영어로 소통 가능한 분은 아니었지만 영어를 하셨다 하더라도 말을 많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눈에 띄었던 점은 도로에서 유독 팁을 자주 준다는 점이었다. 인도네시아에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이 교차로나 유턴 구간에서 교통정리를 한다. 사실 자원봉사자라는 느낌보다는 그들의 직업으로 보였다. 누구도 고용하지 않았지만 교통신호가 많지 않았던 인니에서 그들이 나서야 할만한 곳들은 많았다. 때로는 장사가 잘 되는 가게로 차량이 차선을 가로질러 들어가거나 다시 후진해 도로로 나설 때도 수많은 오토바이와 차량을 통제하며 차들이 나갈 수 있게 하고 팁을 받는다. 규모가 있는 인도마렛이나 알파마트에서도 오토바이나 차량을 정리하며 공식 비공식으로 주차료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인니에서 교통편을 이용하다 보면 창문을 열어 팁을 주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 기사님은 거의 매번 창문을 열어 팁을 주는 것 같았다. 반둥을 빠져나와 가루트까지의 길은 꽤 거칠었다. 확실히 외곽으로 나올수록 정비가 잘 되지 않은 노후한 차량들이 많았고 그들은 꽤 거칠게 운전했다. 화룡점정으로 시커먼 연기를 미친 듯이 내어 뿜는 노후 트럭 하나가 우리 앞에서 꽤 오랫동안 시야를 방해하기도 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반둥에서의 약간의 정체와 도로사정 때문이었는지 2시간을 달렸는데 2/3 지점 정도까지 밖에 오지 못했던 것이다. 주유를 할 필요가 있어서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기사님은 주유소에 도착하자마자 급하게 화장실을 뛰어가시고 난 후 주유를 했는데 말이 잘 통하지 않자 소통을 하신 후 우리 스스로 돈을 내게 했다. 거의 쉬지 않고 달려왔고 화장실까지 뛰어가시는 모습을 보고 아침은 드셨는지 염려되기도 해서 물어보았다.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는 그러면 잠시 쉬어가자고 했다. 그래서 바로 건너편에 있었던 편의점에서 빵과 이런저런 군것질 거리를 사서 가게 앞의 테이블에 앉았다. 옆자리에 앉았지만 혼자 식사하시는 것 같았고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영어는 하지 않으셨지만 번역기를 이용해 오늘의 여정을 꼼꼼하게 물어보았고 우리는 번역기로 답했다. 소통이란 역시 소통하려는 의지와 끈기만 있다면 지금 시대에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도 한 시간 반 정도를 더 달려야 했다. 도착하기 직전에는 시골길을 꽤 달렸고 마지막은 산인만큼 오르막길도 있었는데, 기사님은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아마 출력이 달려서 그런 것 같다고 차를 좋아하는 L이 이야기했다. 반둥과 같은 주요 대도시에서 거친 도시 간 간선도로 지방 소도시와 산길까지 다양한 도로를 거쳐 빠빤다얀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우리는 400000루삐아를 내고 주차장까지 올라갔다. 대기하시는 기사님에 대해서는 요금을 받지 않으시는 모양이었다. 나중에 므라피 화산을 현지인과 같이 오토바이를 타고 갔을 때도 따로 돈을 받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하여간 부드럽게 불확실성 하나는 지워졌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평일 애매한 시간이었는지 몇몇 관계자 외에는 사람이 없었다. 가이드를 하시겠다는 분이나 오토바이를 호객하시는 분들에게는 늘 하듯 ‘bisa jalan-jalan’ 직역하면 ‘산책할 수 있다’라고 하며 걷는 모습을 흉내 내니 금방 물러나셨다. 기사님은 얼마나 걸릴 것 같냐고 물어서 대략 5시간 걸린다고 했고, 기사님은 시간 안에 돌아가려면 4시간 안에는 오는 것이 좋다고 번역기로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기사님에게는 계약사항에 써 있었듯 5만 루삐아의 점심 식사비를 드리고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빠빤다얀 화산은 정말 어메이징 했다. 주차장을 벗어나 작은 언덕을 10여분 오르고 난 뒤 보이는 풍경부터가 압도적이었다. 물론 땅꾸반에서도 볼 수 있는 지형들이었지만 멀리서 분화구만을 보거나 산 중턱으로 내려가 작은 온천 근처에서 바라본 화산지형은 특이하기는 했지만 아름답다는 느낌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빠빤다얀은 사방을 둘러싼 활화산이 만들어 놓은 광활한 지형은 황량하면서도 조화롭고 아름다웠다. 마치 아르헨티나 엘 찰튼에 들어선 듯한 구도였지만 용암이 쓸고 간 괴이한 암석과 온통 풍기는 유황냄새는 이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 잠시의 풍경 만으로도 여기에 고생을 하면서 이 돈을 내고(알고 보면 아주 큰돈은 아니었지만 장기여행을 하다 보면 누적치가 있는 법이다.) 올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땅꾸반보다는 10배는 더 아름다웠고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한두 달 정도를 여행한다면 한번 정도만 있어도 만족할 만한 풍경이었다. 그리고 가파르지 않은 길을 오르면서 계속해서 조금씩 변하는 풍경의 아름다움은 아름다운 산들이 주는 큰 장점이었다. 그리고 빠빤다얀은 예상과는 달리 등반시간이 아주 짧은 산이었고 구글맵과 영어 후기에도 나와 있듯 오토바이로도 운행가능했다. 주차장 위 언덕을 오른 후 숲길을 향하기 직전 우리는 화장실을 다녀온 후 옆에 있는 작은 가게에서 라면을 하나 먹었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고 시간도 미지수였지만 아름답고 한적한 산에서 컵라면은 참을 수 없었다. 가게에는 주인장과 현지인 한두 명 말고는 다른 사람이 없었는데 라면을 먹고 산을 오르기 직전에 등반을 마친 현지 대학생 또래의 친구들이 있었는데,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는데 한국 사람이냐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더니. 한 친구가(대부분 여성들이다) 파이팅이라고 했다. 순간 한국말을 참 잘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파이팅’은 그야말로 순 한국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나 있는 소로를 통해 숲으로 들어갔다. 여기서부터는 화산지형을 볼 수 없었다. 대충 알아본 정보에 따르면 캠핑장과 후탄마티(죽은 숲)를 가는 길이라고 한다. 그냥 무난한 인도네시아의 숲길이었고 아주 험하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비도 잠깐 내려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들 때쯤 가게들이 좀 있는 정상직전의 평지 같은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근처에서 일하시는 한 분이 계셨는데, 저 멀리서 크게 ‘끼리’라고 크게 외쳤다. 왼쪽이라는 뜻이었다. 후딴마띠로 가는 길 초입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오른쪽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그걸 보시던 현지인이 크게 외쳐 주셔서 나는 크게 ‘아리가또’ 아니 ‘뜨리마까시’를 외쳐 주었다. 아주 고마웠다. 아무도 없었는데 곤란할 뻔한 상황이었다. 좋은 기분으로 길을 나섰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우리랑 같이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 운동을 좀 하는 편인 나는 힘든 코스는 아니었는데 L은 조금 힘들어하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이 고양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2-30여 분간 후딴마띠 직전의 캠핑장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우리를 가이드해 주었던 것이다. 사라졌나 싶으면 다시 앞으로 나와 우리의 길 안내를 해 주었던 것이다. 길동무가 있으니 길을 걷기가 훨씬 즐거워 녀석의 사진도 동영상도 많이 찍었다.      



캠핑장에 도착하자 녀석은 제갈길을 갔고 우리는 후딴마티로 향했다. 가는 길에 에델바이스가 피어 있었다. 주차장 근처에 에델바이스가 많이 피어 있는 곳이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도 피어 있어 내려간 후에는 가 보지 않았다. 조금만 더 움직이자 후딴 마티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 뜻을 몰랐는데 죽은 숲이라는 뜻이었다. 화산 활동으로 인해 숲이 타버린 곳을 그렇게 불렀고 이곳 외에도 화산지형에는 그런 곳들이 종종 있었다. 이후 이젠 화산의 분화구에서도 이전 디엥고원에서 논밭에서 갑자기 분화한 곳에서도 시커멓게 타버린 숲과 집이 특이한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빠빤다얀의 후딴 마띠는 정말 아름다웠다. 약간의 고저가 있었던 평지에서 넓게 펼쳐진 사람 키만큼만 남은 시커먼 나무들의 숲은 도저히 지구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연신 ‘도대체 이게 뭐야’를 외쳤고 걸어 숲으로 들어갈 때는 환상적인 기분이었다. 특히 걷다 보면 정상으로 향하는 급경사가 있는데 그곳까지 이어진 숲은 고저차로 인해 더욱 아름다웠다. 이것 만으로도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웠는데 숲의 가장자리에 이르자 급격하게 절벽이 나타났고 그 건너편으로 처음에 보았던 황량한 지형과 작은 호수등이 멀리 넓게 펼쳐져 있었다. 뒤를 돌아보면 죽은 숲이 앞을 보니 황량한 암석, 호수의 화산지대가 보여 정말 끝내주는 풍경을 보여주었다. 그러고도 시간은 2시간도 지나 있지 않았다. 시간에 대한 걱정도 이렇게 보니 기우였다. 게다가 바로 아래쪽 주차장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처음 라면을 먹었던 곳에서 오른쪽이 아닌 정면의 급경사로 계단을 따라 올라오면 바로 이곳으로 올 수도 있었다는 말이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산을 둘러 후딴마티 입구에서 숲을 통과하고 이곳으로 오는 코스가 더 아름답지만 급하다면 왕복 2시간 안에 등산을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시간 여유도 있었기에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만끽할 수 있었다. 우유니 주변의 국립공원 외에는 내가 본 풍경 중에는 이것보다 특별히 낫다고 말할 만한 풍경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뭔가 아쉬운 속에서 애썼던 보상을 넘치게 받고 있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특별한 풍경이 있지 않더라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러고도 인도네시아는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고 5분쯤 내려오는 길에 현지인 한 커플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오래 걸리지 않아 주차장으로 내려왔고,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우리에게 기사님은 ‘배고프지 않냐?’ 고 물었다. 우리는 오가며 먹은 것도 있고 바로 이동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에 움직이려 했고 그전에 기사님은 드신 게 있냐고 했더니 본인은 먹었다고 했다. 그동안 봐 온 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꽤 감동이었다. 말도 통하지 않았고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지만 차 안에서 편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았다. 인도네시아의 많은 여행지는, 이후에 큰 감동을 주었던 많은 여행지가 마치 코미디처럼 어이없는 것들로 불편, 불쾌한 엔딩을 주기도 했는데 이날은 기사님 덕분에 마무리도 완벽했던 것 같다. 낯선 곳에 낯선 시스템으로 불확실성을 가지고 움직인 일정에서 엄청난 풍경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우리를 염려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기분이 참 좋았고 완벽한 하루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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