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PURPOSE
저번 일요일에 감히 뭐라고 소개해 드려야 할지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는 분을 만나고 왔습니다. 이 분은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셨고,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출판사의 대표이셨으며, 제 첫 직장의 사목 (회사의 목사)이셨고, 제가 서울에서 다니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이셨고, 제 딸이 다니고 제 아내가 교사로 있었던 대안학교의 대표이셨고, 전국 단위의 노인복지센터를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의 이사장이셨던 분입니다. 지금은 은퇴하셨으나 다시 부산의 외곽에 있는 작은 교회에 청빙을 받아 담임목사로 계십니다.
제가 부산에 자리를 잡은 지 3년 조금 더 되었는데 이 분이 부산에 계신다는 것은 비교적 최근에 알았습니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드리고 만나 뵙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그분을 반갑게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으로 갔는데,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예상치 못한 더 값진 것을 얻었습니다.
지금부터 그날 10시 30분부터 13시까지 그분과 함께하며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며칠 전 아내가 그분이 시무하고 계신 교회로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의 목적은 이번 주 일요일에 방문을 하면 목사님을 만날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전화를 걸자 한 분이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아내가 "여보세요?"라고 말하자마자 즉시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000 맞지? (아내 이름)"
아내는 깜짝 놀랐습니다. 15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 처음 드리는 전화인데 '여보세요' 한마디만 듣고 누구인지 바로 알아차리셨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드디어 일요일 일본 대마도까지 선명하게 보이는 깨끗한 가을 아침이었습니다. 바다 위로 연결된 부산의 새로운 상징인 3개의 다리 남항대교-부산항대교-광안대교를 건너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쭈볏쭈볏 교회 안을 들여다보니 멀리 사모님이 보입니다. 계속 기다리기라도 하신 것처럼 우리 쪽을 쳐다보시더니 쏜살같이 달려 나오십니다. 덥석 손을 잡고 감격에 겨운 인사를 나눴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보니 목사님도 오셨습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저는 벌떡 일어나 목사님을 왈칵 끌어안으려고 했는데 눈치를 못 채신 건지 그다지 반갑지 않은 것인지 목사님은 오히려 자리에 앉아버리십니다. 제가 그렸던 눈물겨운 재회의 장면은 아니었으나, 금세 제정신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 목사님이 좀 건조하신 분이셨지.'
하지만 그 건조함이 그분의 가치였고, 차별점이었고, 핵심 경쟁력이라는 것을 저는 잘 압니다. 너무 이성적이셔서 어쩔 때는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분의 속마음은 누구보다 따뜻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눈물을 흘려야 할 때는 숨김없이 펑펑 우시고, 뭔가 멈춰야 할 순간이라는 판단이 들면 잠시 감정은 감추시고 매정하게 칼로 끊어버리십니다.
길지 않은 2시간 정도의 만남이지만 그나마 그중 1시간 이상은 예배였으므로 저는 청중의 한 명으로 그분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래서,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오랜만에 인사드리는 것으로 만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인 대화보다는 청중 모두를 향한 그분의 설교를 통해 오히려 저 개인에게 말씀하시는 듯한 강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일주일간 혼신의 힘을 다해 준비하신 그 설교가 결국 나를 위해 준비된 설교였다는 생각을 하니 그분의 혜안과 깊이감에 또다시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설교의 제목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었습니다. 최근 계속 제가 쓰고 있는 "삶의 목적" 글들과 주제가 맞닿아 있었습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은 우리의 삶을 단순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평온케 해 줍니다. 그리고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공연한 일에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목적에 맞춰서 살게 되면 삶이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목적에 연결되지 않은 일은 포기할 수 있기에 가능합니다.
이 말씀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제가 손주가 5명 있습니다. 걔들이 집에 오면 각자 5천 원씩 주고 다이소에 가서 살 것을 사라고 합니다. 그러면 녀석들이 5천 원을 다 채워서 물건을 사 오는데 사 온 것들을 보면 대부분 필요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5천 원을 채우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바꿔보았습니다. '5천 원을 줄 테니 사고 싶은 것을 사지 말고, 필요한 것을 사라. 그리고 돈이 남으면 적립을 해서 다음에도 쓸 수 있게 해 주겠다.' 그랬더니 녀석들이 정말 필요한 것 하나씩만 사서 돌아왔습니다. 목적이 바뀌니 행동이 바뀐 것입니다.
5천 원을 다 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사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그들의 행동이 변화된 것입니다. 복잡한 가지들을 다 쳐내고 목적에 연결된 것만 남겨야 삶이 정리가 됩니다. 목적이 분명한 사람은 공연히 헛된 일에 시간을 쓰지 않습니다. ('텅 빈 배', '돼지와의 진흙탕 싸움', '가치 없는 싸움' 등의 개념과 연결됩니다.)
⌜퓨처 셀프 Future Self⌟의 작가 벤저민 하디 Benjamin Hardy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래의 나를 명확하게 보고 그 모습에 전념하면 모든 생각과 행동은 목표라는 필터를 거치게 된다.
-기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심 있는 것만 볼 수 있다.
-집중하는 대상이 확장된다.
우리는 자신이 기대하는 것을 본다. 나아가 어떤 모습을 간절하게 이루고 싶고 그렇게 하겠다고 결심하면 그런 생각과 일치한 행동을 하게 된다.
여기에서 '미래의 나'는 '삶의 목적'입니다. 즉, '되고 싶은 나'입니다.
벤저민 하디는 '미래의 나'라고 표현했고, 리처드 J. 라이더는 '삶의 목적'이라고 표현했으며, 마셜 골드스미스는 '되고 싶은 나'라고 표현했습니다. 다 같은 의미입니다.
목사님은 이어서 그날 저에게 가장 필요했던 부분을 말씀하셨습니다. 청중을 향해 하신 말씀이지만 저를 향해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던 부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려주셨습니다.
마치 제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계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명확했습니다. 제가 놀란 부분은 저의 고민을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답을 말씀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점쟁이는 내가 묻는 질문에 답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묻기도 전에 나의 질문을 알고 대답해 주지는 못합니다.
제가 최근 명확히 정의해 내지 못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삶의 목적, 소명, 비전과 미션
이들의 관계와 차이는 무엇인가?"
설교에서 목사님은 이 개념들의 차이와 연관성에 대해서 명확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최근까지 제가 블로그에 올렸던 삶의 목적 관련 글들에서 모호하게 얼버무렸던 저의 무책임한 표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동시에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이 개념 저 개념을 혼용하여 사용함으로 오히려 읽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젠 이것을 명확히 정의해야 할 순간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목사님은 위대한 사도 바울을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바울은 "서로 사랑하라"라는 하나님의 명령 Commandment 즉, 삶의 목적 The Life Purpose을 명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에 맞게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라는 소명 Calling을 찾았습니다. 이 소명은 우리가 목적을 위해 내 삶을 헌신 Commit 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소명은 비전 Vision과 미션 Mission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울의 비전은 "제자 삼는 것"이었고, 미션은 "세상 모든 사람, 즉 당시로는 터키와 그리스와 로마까지 가서 말씀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 사도바울의 스테이트먼트 Statement
삶의 목적 why : 서로 사랑하라
소명 : 가서 세상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아라
비전 what : 제자 삼아라
미션 how :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씀을 전파해라
목사님이 정의해 주신 사도바울의 스테이트먼트를 통해 역으로 각 용어의 정의를 내려보겠습니다.
■ 각 스테이트먼트의 정의
삶의 목적 why : 살아가는 의미, 대의
소명 : 삶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쓰임 받을 영역
비전 what : 이루어지게 될 미래의 구체적 모습
미션 how : 그 비전을 이루기 위한 구체적 행동
역시 삶의 목적이 우선적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큰 맥락인 삶의 목적이 정해지면 그 목적에 맞는 나의 소명 즉, 내가 이 땅에 사는 이유와 의미를 정의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이 소명은 나의 비전과 미션으로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관계와 정의를 "미라클워커 스테이트먼트 Miracle Worker Statement"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개념에 맞춰 저의 미라클워커 스테이트먼트를 정의해 보았습니다.
■ OCIC의 스테이트먼트 Statement
삶의 목적 why : 돕는 사람이 되어라
소명 : 세상을 본래의 아름다움으로 회복시켜라
비전 what : 브랜딩 지식을 통해 삶의 목적을 회복하도록 도와라
미션 how : 퍼스널 브랜딩 책과 강연을 통해 삶을 회복시켜라
아직 완성본은 아닙니다. 또 많은 고민의 날들을 통해 수정되고 보완되겠지요? 오늘 목사님으로부터 받은 정의 때문에 이전에 썼던 저의 글 중 많은 부분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숙제가 많아지겠네요.
적절한 타이밍에 적절한 분을 통해 적절한 인사이트를 얻게 됨을 감사합니다. 또 한 번 깨닫습니다.
준비된 자에게는 "뜻밖의" 일들이 생긴다.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모든 노력과 과정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뜻밖"으로 여겨진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