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직접 확인한 것만 믿어. 다른 건 믿지 않아."
언뜻 들으면 굉장히 냉철하고 균형 잡힌 말로 들린다.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 말이 맞지 않는다.
약속을 잘 지키는 친구에게 '나는 네가 믿음이 가' 라고 할 때 내가 믿는 것은 '다음에도 약속을 지킬 친구'이지, '지금껏 약속을 지켜온 친구'가 아니다. 이미 지나간 사실과 현재에 대해선 우리가 보통 [알게 되었다 / 확인하다 / 받아들이다 / 인지했다] 라고 하지, 믿는다고 하지 않는다.
상상 속의 동물 해태를 누군가 내 눈앞에 갖다 놓아 그 존재를 단단히 확인시켜준들, 해태가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지 '믿는다'고 하지는 않는다. 만약 믿는다고 한다면 내가 보지 못한 해태가 여러 개체가 더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겠다.
이처럼 믿음과 신뢰의 시점은 언제나 미래를 향해 있기에, 믿음은 그 자체로 구별되는 가치를 가진다.(과거 역사에 대한 믿음을 논하는 경우 '믿음'보다 '추측'이라 하는 게 알맞다.) 하지만 일부 꽉 막힌 과학주의자나 팩트주의자들은 자기가 두 눈으로 확인한 것만 믿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몇몇 알고 있다. 생각해보면 단지 미래에 대한 소망과 열망과 갈망 같은 것들이 결핍된 사람이 아닐까?
현실적인 사실을 탐구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한 [신념,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그것이 맹목적인 것이 아닌 이상) 더 행복감을 누리며 살지 않을까 생각한다. 둘 중 더 중요시하는 가치를 정하는 건 개인의 선택이겠으나, 어느 한 쪽을 무시하고 깎아내린다면 오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