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아름다운 것
한국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취직을 해 돈을 벌기 시작하고 차도 사고 꾸미고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저축도 해보고 주식도 해보고 말아먹어보고 신용카드 리볼빙이라는 것도 써보고 된통 당해 열심히 갚고는 다시는 쓰지 말아야겠다 결심하고 나름 그 당시 유행하던 자기 계발서들 읽고 경제 공부도 하고 나름 이제 병원에서 경력이 쌓이면서 방구꽤나끼는 숙련된 간호사가 되어 일도 척척 인정도 받으면서 나름 독립적인 인간으로 거듭나고 있었어.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난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내 큰 착각이었지. 공항에 갓난아기였던 우리 딸을 안고 그 큰 짐들을 다 가지고 오던 그 길에 말도 안 통하는 낯선 이 땅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말에 그저 배시시 웃기만 하는 동양 여자를 환영해주지 않는다는 걸 느꼈어. 그때 내 심정이 그래서 지금의 기억이 그런 거일 수도 있겠지만. 왠지 그들의 말투도 태도도 참 차갑다 느꼈어. 난 그게 인종차별일 거라고 굳게 믿었었어. 그런데 나중에 영어를 배우고 나니 알겠더라. 이 나라에 살 거라면서 이 나라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못한다니 스몰토크 참 좋아하는 키위들이 그런 사람과 대화가 통할리도 없고 참으로 답답했을 거야.
영어 하나 못하는 것뿐이었는데 난 도착과 동시에 감옥에 갇혔지. 그것도 정말 싸구려 방하나 셋방살이. 우리가 가져온 돈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고는 일 년도 버티기가 힘들다는 결론에 남편이 그나마 화장실도 따로 있고 부엌도 있다며 그것도 학생에게 렌트를 잘 주지 않는 뉴질랜드 부동산에서 겨우겨우 구한 거라고 하더라고. 갓난쟁이 우리 딸은 오자마자 뉴질랜드 한여름에 누렁코 나오는 감기가 걸려 훌쩍거리고 열나고 며칠 뒤 나도 크게 앓아누웠지. 세상에 태어나서 바깥세상은 해가 쨍쨍 더운 여름인데 집안에선 뼛속이 시린 한기가 느껴지는 집은 처음이었어.
멘탈의 붕괴가 급속도로 시작되고 나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힘들었어. 무엇보다 이제 난 독립적인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 훗날 우리 딸이 커서 날 어떻게 생각할까. 남편은 나를 짐이라고 느끼는 걸까 싶은 마음에 말은 안 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격지심이 커지고 마음속에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뭔가 달라져야 한다. 큰 결심을 한 거지. 그 이후로 맹렬히 정말 한국티비 전혀 안 보고 영어만 바라보고 몇 년을 살고 나니 내 인생이 정말 몇백 배는 달라지더라. 살고 싶은 나라의 언어는 꼭 배워야 그 사람들의 시선 그 사람들의 문화 그 사람들의 말속에 어떤 제스처가 있는지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비꼬는 건지 알아듣잖아.
내가 오늘 좋아하는 가드닝 실컷 하고 아이들과 데크에 앉아 치킨 먹고 웃고 떠들고 즐거운 시간 보내고 또 내가 좋아하는 미싱도 하고 그리고 또 저녁 먹고 선선한 바람 불 때 다시 가든에 나가서 물을 주고 다시 가든 산책을 하는데 복숭아나무들 사이로 저 멀리 서쪽 하늘이 핑크빛 연보라색으로 물들어 있는 거야. 볼이 빠알간 수줍은 얼굴을 한 복숭아 열매들은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귤나무 무화과나무 모두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고 예쁜 꽃들은 온천지에 자태를 뽐내는 나와 남편이 만든 우리만의 천국.
이렇게 세상이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
처음 이민 와 남편을 원망하며 내 비행기표 내놓으라며 속상해했는데 그래도 그때 참길 잘했다 싶은 게…
참 오늘이 고마웠다.
내일도 눈부시게 아름다울 거라 믿어.
믿으면 이루어지더라.
<나의 천국 푸드포레스트 내 가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