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극에서 비극으로
그날을 잊지 못해. 우리 엄마 아빠는 두 분 다 양가 부모님 도움을 받지 못하고 결혼을 하셨어.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그런 것도 있고 경제적으로 어렵게 시작을 하셨다고 하더라. 꼭 내가 문어 아재랑 어렵게 이민생활 시작했던 것처럼 말이지.
그래서 그런지 내가 아주 어릴 적 우리 집은 항상 엄마는 어디선가 가져온 부업용품에 가득했고 내가 조금 커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할 무렵에 엄마는 동네 피아노 학원에 알바를 다니느라 바빴어. 아빠는 직업군인으로 소령을 달기 전까지는 이사도 많이 다니고 훈련이다 뭐다 집에 왔다가도 비상 걸려 다시 부대에 들어가기 수십 번. 엄마는 없는 살림에 그 안에서 그나마라도 저축하겠다며 아끼고 아꼈지.
그러던 어느 날 무슨 바람이 불었었는지 모르겠는데 동네 맛있는 갈빗집이 있다며 아빠가 회식하고 오더니 맛있었다며 한번 다 같이 가자는 거야. 온 집안 식구가 신이 나서 숯불갈비 먹을 생각에 들떠 있었어.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난 아빠가 사준 세일러문 캐릭터가 들어간 겨울용 부츠 운동화를 신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갔지.
갈빗집에 들어가서 앉아서 드디어 갈비를 먹는데 어찌나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는지. 엄마가 해주던 불고기도 맛있지만 숯불갈비는 정말 환상의 맛이었지. 밥을 맛있게 먹고 우리 식구 깜깜해진 길을 걸으며 집으로 가고 있었어. 난 신나서 깡충깡충 뛰면서 아빠를 따라가고 엄마랑 오빠도 기분이 좋아 보였지. 내가 제일 신났던 거 같긴 해. 촐랑대던 나는 그만 동네 공사장 근처를 지나갈 때 나무 위를 걸으며 발란스게임을 하고 신나게 걸어가고 있었는데…
아이고야. 깜깜해서 잘 안 보이던 상황에 그냥 신나서 막 공사장 자재 나무를 밟고 다니다가 일이 난거지. 내가 갑자기 너무 아파 소리를 질렀고 달려온 아빠는 내 발을 보더니 사색이 되어서 나를 엎고 뛰기 시작했어. 훈훈하게 마무리될 것 같던 우리의 첫 번째 외식은 그렇게 동네 조그만 병원의 응급실에서 마무리가 되었지. 내 신발을 뚫고 나의 조그만 발바닥까지 뚫어버려 피가 철철 나게 만든 그 공사장의 나무에 박혀있던 날카로운 못.
내 발에 피가 너무 많이 나서 우리 아빠는 거의 제정신이 아닌 듯했어. 의사 아저씨가 내 발을 소독해 주고 약발라주고 붕대 감아주고 난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했지. 난 진료가 끝나고 아빠등에 업힌 채로 집에 와야 했어. 그 뒤로도 한참 동안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네. 그 뒤로는 공사장 근처로는 절대 안 다닌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