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사랑
이사를 하였다.
사람은 사소한 주변의 변화에 쉽게 영향을 받는 가벼운 깃털 같은 존재이기에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다소 과장한다면 인격을 바꾸는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한다.
모두 같은 기능을 하는 눈코입을 가지고 사지육신을 가졌다고 해도 백인백색 사람은 천차만별 하늘의 별의 개수만큼 같지 않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깨닫게 된다. 아마도 사람은 다 같다고 말한 사람은 지금쯤 그 말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집이라는 공간 또한 모두 분리된 몇 개의 방과 주방과 화장실을 필수로 가지고 있지만 역시 똑같은 집은 세상에 없다. 똑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듯이.
나의 부모님은 한 곳에서 한평생을 사셨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는 것을 시대와 세상 탓으로 돌렸지만 돌이켜보니 떠도는 삶을 선택한 것은 한 곳에서 오래 살고 싶었던 나의 반동심리였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라면 나의 부모님은 떠도는 생활을 한번쯤 원하셔야 하는데 부모님은 그러지 않으신 걸 보면 내게 한 곳에서 오래 사는 것은 단순한 부러움만은 아닌 듯싶다.
어쨌든 또다시 새로운 집은 언제나 그랬듯 이전의 집과 전혀 다르다. 좀 더 마당다운 공간이 있고 무엇보다 그곳에는 빨래가 잘 마르는 햇볕이 한가득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차가 없으면 집에 갇혀 버려야 할 만큼 주변에 가까운 편의시설이 없는 것이 단점이지만 대신에 새와 나무를 더 가까이 둘 수 있다는 장점이 되기도 한다.
떠남이 정해진 모든 집은 모두 펜션이 된다. 만남에 유효기간이 있는 줄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자유롭고 편해지리라. 모든 집은 완벽하지 않았고 또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집들처럼 이곳 또한 이전의 모든 집과 같아질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것에 익숙해지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훌륭한 배경도 아름다운 경치도 시간이 지나면 평범해지기 마련이다. 시간이 주는 익숙함에 우리는 자신이 가진 대단함을 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것들을 대신할 다른 것들이 끊임없이 우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기쁨이든, 즐거움이든, 심지어 고통까지도 모두 원래 나의 것이었던 것처럼 특별해지지 않게 하는 마약 같은 진통제였다. 모든 특별함은 시간과 함께 일반화되고 평준화된다. 그래도 끝까지 특별하게 남아있는 것, 시간을 통과한 그것, 익숙함이 통과하지 못하는 그것,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리고 내게 남아있는 그 사랑 때문에 그 모든 익숙함속에서 특별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모두의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그 사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