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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아 Aug 15. 2023

고양이와 이사하기

고양이의 모든 행동은 사람을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든다


이사하는 날 고양이는 하루종일 이동장 케이지에 갇혀 있었다.

     

고양이는 영역동물이므로 자신의 원래 환경을 바꾸는 것은 주의를 요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아파트에서 살았던 고양이와 달리 길냥이였고 마당냥이로 언제든 집 주변을 제집 마당처럼 돌아다니던 녀석에게는 완전히 달라진 새집과 마당은 세상이 달라지는 충격이 될 것이었다. 여러 검색을 해 본 결과 이사를 하게 되면 길게는 일주일 정도 고양이를 집밖으로 내보내면 안 되고 집안에서 충분히 달라진 환경에 적응을 하여 집을 자신의 공간으로 완전히 인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다음 서서히 마당에 풀어주는데 그때도 약간 배고픈 상태로 보내야 멀리 가지 않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집을 못 찾을 수도 있으며 그것은 영영 만나지 못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 고양이는 바로 새 집 안에 감금되었다. 마치 세 살 아기가 집 밖을 나가 큰길을 건너고는 집을 잃어버리는 끔찍한 상상을 하며 애면글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사 간 집에서 동네의 길고양이들이 무심히 길을 지나가는 사람처럼 기척도 없이 집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을 때 서로 황당하고 놀란 그 느낌이란.. 원래 이 집에 사람이 있었던가? 하는 낯선 고양이의 눈과, 모르는 고양이가 마당으로 들어왔네? 하는 내 눈이 서로 다른 것을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고양이는 노란빛의 수컷이고 덩치가 커서, 싸움에서 매번 지고 피 흘리며 들어오는 우리 집 고양이는 바로 공격의 대상이 될 것이 뻔해 집 밖은 위험 그 자체였다.


그러나 책에 쓰인 대로 일주일을 채우지 못하고 5일쯤 지났을 때 고양이를 마당으로 풀어 주기로 결정했다. 마당에 풀어 준다는 것은 곧 어디로든 나갈 수 있다는 전제를 허락하는 것이었다. 5일 정도면 어느 정도 집에 익숙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정석대로 날짜를 다 채울 수 없었던 이유는 그 5일 동안 녀석은 하루종일 베란다 밖을 내다보며 "으응, 으응" 하며 애절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사오기 전날까지 하루종일 집 밖에서 마음대로 여기저기 다니다가 배고프면 들어오고 심심하면 나가서 놀고 하던 녀석을 24시간 집안에 가둬 놓으니 처음에는 ‘나한테 왜 이러세요’ 하며 벌 받는 표정으로 구석에만 쭈그리고 있다가 이튿날부터는 집안을 뱅뱅 맴돌고 안절부절못하니 감옥이 따로 없을 것이었다.  그전에는 거들떠보지도 않던 고양이용 실내 변기통에 어쩔 수 없이 볼일을 보고 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창밖을 내다보며 하염없이 소리를 내는데 그것이 울음 같아서 듣고 있는 내내 괴로웠지만 감옥 교도관이 된 심정으로 문을 걸어 잠가야 했다.  어떤 날은 도저히 그 애처로운 눈을 바로 볼 수가 없어서 일부러 외면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쌀쌀하게 말하기도 하고 그런 기나긴 5일을 지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녀석은 반쯤 자포자기가 되어 아예 창밖을 내다보지도 않게 되었는데 그것이 차라리 내보내달라고 애원하는 듯한 소리를 낼 때보다 더 비참해 보이고 슬퍼 보이는 것이었다. 내일은 꼭 문을 열어줄게 하던 내일이 되던 날 드디어 베란다 문을 열었다.      


철문같이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유리문이 철커덩 열리는 순간 생쥐처럼 튀어나갈 것 같던 고양이는 의외로 멍하게 밖을 내다만 보고 있었다. 아니 왜 그토록 나가고 싶던 밖을? 꿈에 그리던 일이 이루어져 꿈인지 생시인지 순간적으로 분간이 안 되는 상태였음이리라. 너무 좋아서. 이 모습에 덩달아 감격해서 오히려 고양이의 엉덩이를 밀며 이제는 나가라고 하는 상황이 되었다. 녀석은 한 발을 들고 그 발을 창틀 밖으로 내리지를 못해 한 발을 든 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다. 그리고는 마지못해 나가는 것처럼 어이없는 상황을 만들어 미적미적거리더니 갑자기 뛰쳐나갔다. 마치 진짜 나가도 되는지 망설이는 내내 인간의 오케이에 몇 번이나 속은 것처럼 믿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고양이의 모든 행동은 사람을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든다.    

 

집과 집사이는 특별한 경계가 없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다닐 수 없는 경계는 있지만 고양이로서는 인간이 경계라고 설정한 것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어느 날은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하늘 위를 보면 지붕 위에 올라가 있고 또 아무리 찾아도 없으면 마루 밑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집 밖을 완전히 나가는 것도 고양이에게는 일도 아닌 듯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겁쟁이 고양이에게는 마당이 충분했던 모양이다. 처음 몇 번 이웃집 밭에 가서 배회하기도 하고 집 주변의 경계선을 넘나들더니 멀리 가지 않기로 작정한 듯 마당 안에서만 머물렀다. 예전집보다 마당이 넓으니 그것이 고양이로서는 오히려 주인이 한눈에 보이는 편이 되어 심적으로 안정되었다고 해야 할까.   

   

진정한 마당냥이가 된 고양이는 개냥이가 되었다. 마당에서 집도 지키고 마당에서 맘대로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면서 이제 예전처럼 집밖으로 나간 고양이를 언제 들어오나 찾으러 다니고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눈에 항상 보이는 고양이가 되었다.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서 사람이 집안에 있으면 집안으로 들어오고 집 밖에 있으면 옆으로 온다. 금방이라도 왕왕 짖을 것만 같다. 개처럼 이름을 부르면 오지는 못하지만 일부러 안 오는 것이라고 그 고고함을 존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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