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 준 호 Apr 21. 2024

책 익는 내 숲길

골목이 콘텐츠다

은평구 불광천에서 신사2동 한쪽으로 들어서면 ‘내를 건너 숲길’(내 숲길)이란 이름의 한 작은 골목길이 나온다. 윤동주 시인의 ‘새로운 길’에 나오는 시어 ‘내를 건너서 숲으로’에서 유래한 내 숲도서관이 있는 이 골목은 실제로 불광천을 건너서 비단산을 따라 올라가 봉산으로 이어진 길이다.      


이 내 숲길과의 인연은 기고문과 보도자료를 썼던 은평구청 홍보담당관(홍보과) 임기제공무원직을 그만두면서 시작되었다. 공무원을 그만두니 나의 신분은 이른바 경력단절남이 돼버렸다. 예전에 하던 출판기획일을 다시 하기에는 이전에 거래하던 출판사와 상당수 저자와도 많이 끊어진 상태라 이를 복원하기가 녹록지 않았다.      

또한 2년여의 공무원 생활은 나랑 잘 맞지 않아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했다. 2022년 1월, 보통 사람들이 새롭게 시작하는 새해에 난 일단 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무엇인가는 시작해야 한다는 양가감정이 들어 좀 혼돈스러운 시간이었다.            


그런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내 숲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던 형과 용사장이었다. 카페 사장이었던 부부는 평소 단골손님이었던 아내와 내게 새롭게 시작하는 카페의 2층 사무실을 공유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우린 이를 덥석 물었다.       


내 숲길 한가운데 1인 1 책 이란 이름의 1인출판사를 시작하였다. 집과 불과 3분 거리의 사무실에 오가기 위해서는 내 숲 골목길을 오고 갔다. 경력이 단절된 50대의 한 남자. 정신은 피폐하고 앞길은 막연한 이 사람은 내 숲길 골목길을 오가며 조금씩 재충전되었다.      


내 숲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 바리스타도 있고, 철학가도 있고, 애견샵 사장과 변호사가 있었다. 또 시인이 있고, 동네통장, 주민자치위원들, 가게 주인이 살았다. 그들을 만나면서 난 삶의 동력을 얻었고, 일의 가능성도 발견하게 되었다.        


작은 골목에서 힘을 얻으면서 난 골목 콘텐츠를 구상하게 되었다. 출판과 골목을 연결해 보았다. 골목이라는 물리적인 길에 출판이라는 콘텐츠를 입히니, 골목출판이란 새로운 프로젝트가 탄생하게 됐다.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다 보니 내 숲길에서 힘을 얻어가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 골목에서 생존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해 보았고, 거기에서 가치를 발견했다. 골목은 자치의 기본 단위이다. 사람이 만나고 활동하는 골목에는 고유의 가치가 있고 문화가 살아 숨 쉰다. 다양한 다른 삶의 가치들이 왕래하며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 바로 골목이다.      


골목은 콘텐츠이다. 골목길이 제공하는 문화자원은 역사가 만드는 추억과 기억, 주민들과 함께하는 공동체 문화, 개성을 지닌 골목가게들이 만들어가는 콘텐츠가 가득하다. 골목에서 콘텐츠를 발굴하였다.      

골목은 안전한 도시의 척도이다. 도시의 고도화는 개인주의를 낳았고, 개인의 고립화가 될수록 우리들의 안전은 더욱 위협받고 있다. 골목에서 사람들의 교류가 일고, 드러날수록 골목과 도시의 안전화는 가능하다.       

골목은 가게와 문화가 공존하면서 살아가는 지역경제와 지역 문화가 꽃피는 장이다. 집수리 잘하는 동네 목수,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데 필요한 엔지니어, 아기 잘 키우기로 소문난 동네 아주머니와 어르신을 돌보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상생을 도모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가 자리하고 있는 이 골목에서 살아남고, 가치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이어지니 일이 재미를 더했다. 골목에서 시작한 하나의 프로젝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플러스 일로 퍼졌다.     

골목에는 가게가 있고, 인맥이 있고, 주민센터와 같은 관이 존재한다. 이를 연결하고 기획하다 보면 일이 생기고 수익도 내고, 삶의 가치가 더해진다. 3년 여가 흐른 지금, 골목의 가치에서 행복을 느꼈고 이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이 책은 골목에서 행복을 느끼고 가치를 발견한 50대 경력단절남의 골목길 분투기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