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라로이드 작동법 (2004)
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은 2004년 제작된 단편 독립영화로, 배우 정유미의 데뷔작으로도 알려져 있다. 단 6분 짜리 짧은 러닝 타임을 지님에도 ‘폴라로이드 카메라’라는 매개체를 통해 짝사랑이라는 감정을 생생하게 담아내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인상을 주었다.
영화는 대부분 남자의 일방적인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음에도 남자의 얼굴은 한 번도 등장 하지 않는다. 정유미의 얼굴만 클로즈샷으로 등장할 뿐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리며 카메라 작동법을 배우고 있다. 남자가 아무리 차분하게 설명해도 여자에게는 남자의 말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화면 속 남자의 모습은 오직 체크 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상체 뿐이다. 짝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그녀의 시선을 화면에 투영함으로써 소녀의 설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한 감독의 연출이 돋보인다. 남자에게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빌리러 온 여자는 카메라보다 필름 값이 더 비싸서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남자의 말에 떨리는 웃음을 지어 보인다. 비싼 필름 값은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6분 동안 소녀의 60일, 어쩌면 600일 동안도 참아왔을 떨림을 느낄 수 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 멋져 보이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그 사람 앞에선 서툴어지는 것이 우리 인생의 클리셰 같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가장 강한 힘을 내도 힘이 없다.
필름을 넣은 후에 필름 통을 열면 빛에 노출되어 그 비싼 필름이 소용없어진다는 이야기를 남자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도 여자는 버튼을 아무렇게나 누르다가 결국 사진 찍는 버튼과 필름 통 여는 버튼을 눌러버린다. 결국 필름 통은 열린다. 그녀의 떨리는 마음은 한 순간의 실수로 인해 한 장의 사진으로 포착된다. 마치 사랑의 증거처럼. 사진에서조차 남자는 얼굴이 아닌 체크 셔츠만 등장한다. 툭하고 나와버린 필름 사진 한 장은 여자의 두근거리고 설레는 마음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소재가 된다. 배경 음악이 없다는 점도 순수함을 더욱 강조한다. 아무런 음악이 없기에 여자의 떨림을 바로 옆에서 보는 듯이 느낄 수 있고 그 순수함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다.
필자는 사진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하게 한다는 점’에 매력을 느낀다.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는 사진 속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어떤 상황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사진 속 인물과 장소, 사물 등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해볼 수 있다.
우리에겐 모두 한 번쯤 누군가를 마음 속에 두고 그 사람을 생각하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던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좋아해’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던 밤도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은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는 것 같아 원망스러웠던 날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짝사랑은 짝사랑에서만 느낄 수 있는 씁쓸한 맛이 있다. 사랑이란 감정은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쌍방이든, 일방이든 우리를 당황하게 만든다. 툭, 열려버린 필름 통처럼. 여자의 사랑은 그 비싼 필름으로 그 사람만 20장을 찍어도 아깝지 않은 사랑이었을 것이다.
글 l 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