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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AZINE JEBI May 08. 2024

나에게서 울리는 소리의 저장고, “삶”

사카모토 류이치의 마지막 정규앨범 『12』의 소리들

초록초록한 작은 새싹들이 조금씩 성장하여 아름다운 꽃으로 우리에게 인사를 건네는 달, 사월. 이별 혹은 만남, 어느 것이든 어설프더라도 차근차근 적응하여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지만, 때때론 지금보다 더 성장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불안하고 혼란스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필자 또한 새로운 도전을 하며 부지런히 달리고 있지만, 이 일상이 숨가쁘게 문제를 풀 듯 지나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이 순간 큰 일이 닥쳐오면 어떡하지, 하며 괜한 걱정을 하기도 한다. 이럴 때, 조급하더라도 잠시 멈추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어떤 중요한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의 삶이, 혹은 정체성이 뒤바뀌는 경험을 마주할 수도 있다. 필자와 같이 바쁜 일상을 정신없이 보내고 있는 시기에는 그것이 더더욱 고통스러울 것이다. 피아노가 자신의 정체성이자 인생이었던 일본의 음악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는 어느 한 계기를 통해 피아노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한발 더 나아가 나만의 새로운 정의를 내리며 살아갈 수 있는지, 그 방법 중 하나를 그의 마지막 정규앨범 『12』와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이 앨범을 통해 조금이라도 여유를 가지고 앞으로의 삶에 닥칠 수많은 사건들에 맞서기 위해 미리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사카모토 류이치 (坂本龍一). 그는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 영화 음악 프로듀서, 사회운동가,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궤적을 남겼다. 암의 잦은 재발로 인해 2014년부터 10년 넘게 병마와 싸우면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고 병실과 작업실을 오가며 끊임없이 창작 활동을 해왔던 그는 2023년 3월 28일,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여전한 울림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그가 살아생전 남긴 앨범들을 차례대로 들어보면, 음악 인생 말기에 가까워질수록 결과물의 성격이 바뀌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그의 암 투병과 코로나 19의 영향이 그가 바라보는 피아노, 즉 음악에 대한 시각에 크나큰 변화를 주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투병을 하며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 음악에 대한 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한다. 40년 넘게 한 몸이 되어 해 온 일인데 음악을 들을 의욕도 만들 의욕도 없어졌다고 얘기한다. 그에게 있어 피아노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라왔던 짝꿍이자 전부였을 터, 그에게 음악을 잠시 멈춘다는 것은 누구에게보다 뜻밖의 전환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지나오며 발매한 앨범이 이번 글에서 소개하고자 한 『12』라는 앨범이다.


앨범 『12』는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여 조금 몸이 회복된 2021년, 온전히 자신을 위해 일기처럼 꾸준히 써 내려온 스케치를 기반으로 어떤 수정이나 조작없이 일상의 소리를 순수하게 담아낸 작품이다. 그래서 곡 제목 또한 스케치한 날짜를 그대로 제목으로 지었다고 한다. 곡들을 들어보면 이 곡이 만들어진 공간에서 들려오는 소리와 “20210310”부터 “20220304”까지 약 일 년 동안의 시간의 흐름이 한 곡 한 곡에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게 담겨있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쌕쌕 숨을 쉬는 소리,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 도자기가 불규칙적으로 부딪치는 소리, 그 시공간에 멈춰 있는 듯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소리, 보통이라면 피하거나 편집해야 할 소리들을 그대로 남겼다. 


그는 투병 중에 나눈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찬란한 세상이 아닌, 평범한 세상 (그는 인터뷰에서 ‘시들은 세상’이라고 표현하였다) 에 비로소 더욱 끌리게 되었습니다.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창문을 꼭 열며 빗소리를 차분하게 조용히 듣거나, 대나무 숲에 가며 그 안을 바람이 지나가는, 대나무가 흔들리는 소리 같은 것들을 듣는 걸 무척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것만으로도 음악으로써 충분하다고 느끼지만, 거기서 내가 뭐를 더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그 자연의 소리와 합을 이룰 수 있을까, 같은 것들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그는 노이즈가 들어간 ‘소리’ 또한 음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 소리가 ‘나의 소리’와 진정으로 함께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고민들, 즉 사카모토 류이치의 새로운 음악의 정의가 이 앨범에 듬뿍 담겨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리는 처음에 울렸던 두근거림과 같은 마음의 소리를 잊으며 바쁜 일상에만 몰두해버리는 순간이 많다. 마음 속에서 울렸던 소리를 따라가며 시작해온 일조차도 나중에는 지치고 왜 이것을 해야만 하는지에 문득 회의감을 느낀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에서 냈었던 소리는 멀어지기 시작하고, 내 안이 아닌 주변의 소리에 맞추어 살아가게 된다.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혹은 왜 이 일을 계속 하고 있는지, 그 답을 아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밖에 없는데도 우리는 때때로, 혹은 끊임없이 밖의 소리에만 귀를 쫑긋 세운 채 답을 찾아 다니며 헤매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때, 숨을 고르고 잠시 멈추어야 한다. 사카모토 류이치가 한 때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투병을 계기로 이전에는 들으려고 하지 않았거나 듣지 못했던 ’소리‘, 여기에서는 일상 속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 등을 들으며 이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자신에 대해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처럼. 이러한 시간이 있었기에 그의 음악이 더 자연스러워지고 사카모토 류이치만이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사카모토 류이치를 경애하며 앨범의 커버를 맡은 미술가이자 평론가인 이우환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닿을 수 있는 것은 역시 ‘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물리학에서 소리의 파장 문제라든지, 또 음율이나 음감이 인간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만, 모쪼록 그 ‘소리’라는 것은 모든 생물이 상호작용할 수 있는, 공통적인 엘리먼트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에는 ‘소리 (일본어로 おと ’오토‘)라고 표현할 수 있는 한자가 다양하게 존재하며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音 (음) 의외에 목소리라는 뜻인 声 (성) 또한 ‘おと’라고 발음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소리’라는 것은 단순히 청각적으로 들리는 것들 뿐만 아니라 나에 비롯되어 마음 안의 깊은 곳에서 울리는 목소리 또한 소리가 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소리와 함께 하루하루를 맞이 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일상은 늘 그래왔던 것처럼 바쁘고 촉박하게 지나간다. 그러다 보면 무엇이 흘러갔는지도 모른 채 저 앞으로 정신없이 내달릴 때가 많다. 하지만 진정으로 지나치면 안되는 것이 있는 법. 우리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여 나의 ‘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밤, 자기 전 침대에 누워 사카모토 류이치의 앨범 『12』를 들어 보길 바란다. 그가 삶과 세상의 마지막 끝자락에 곧이 서서 잡아 담은 아름다운 선율의 조각들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글 l 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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