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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GAZINE JEBI May 15. 2024

장기하가 외로움을 전하는 방법

장기하와 얼굴들 - [장기하와 얼굴들] (2011)

장기하와 얼굴들의 정규 2집 <장기하와 얼굴들>은 2011년 6월 9일에 발매된 셀프 타이틀 앨범이다. 솔직한 가사와 풍성한 밴드 사운드로 많은 리스너들과 평론계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에 2012년 제9회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록 음반', '최우수 록 노래' 총 4관왕을 차지하였다. 나아가 평론가들에게 2세대 한국 인디 록의 최고 명반으로 평가받았다.



앨범 커버가 인상적이다. 여러 색깔의 물이 한 번에 확 튀어 오르는 듯한 앨범 커버는 붕가붕가 레코즈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의 작품으로, 여러 감정들이 약동하고 분출하는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한다. 장기하가 김기조에게 주문한 앨범의 키워드는 ‘외로움’이었다. 김기조는 이러한 외로움을 단순히 쓸쓸하고 가라앉는 감정이 아니라 여러 감정이 치열하게 부딪히고 소용돌이치며 분출되는 수많은 감정의 집합체로 변환하였다. 원래는 실제 물감이 퍼트려지거나 튀어 오르는 이미지를 포착하고 싶었지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점토를 빚어 모형을 만들고 사진을 촬영한 뒤 후처리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앨범 커버의 의미를 이해하면 수록곡들의 의미도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예전에 네가 알던 내가 아니야” 라며 당당하게 시작하다가 “니가 그랬잖아!“ 라며 화를 잔뜩 내더니 “눈이 시뻘개질 때까지 TV를 봤네” 라며 침울하게 끝나는 이 앨범의 전개는 한 사람의 감정 곡선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감정의 롤러코스터가 담긴 솔직하고 구체적인 가사들은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 숨어 있는 외로움을 콕 집어 올린다.


앨범에서 필자가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트랙은 10번 ‘날 보고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다. 장기하 특유의 타령 같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잘못한 것도 없고 비난 받은 적도 없지만 나보다 잘나가고 멋진 사람 때문에 느껴지는 초라한 자격지심을 담았다. 오랫동안 짝사랑하는 그녀 옆에 잘생긴 과탑 선배가 앉아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타령하듯 이어지던 곡은 3분 정도에 갑자기 확 빠른 템포로 전환된다. 그리고 가사엔 비속어가 섞이기 시작한다. “이 새끼가 얼마나 잘났던지 나랑 상관 없는데 왜…!” 그리고 2분 간 빠르고 뜨거운 밴드 합주가 이어진다.


얼핏 학창 시절에 배웠던 신경림의 시 ‘농무’ 생각이 난다. ‘농무’는 산업화 시대에 황폐화되어가는 농촌 사람들의 한과 설움을 신명 나게 춤추는 사람들을 통해 승화시킨 시이다. 많은 사람들이 떠나 쇠퇴화고 있는 시골 마을 속에서 사람들이 꽹과리 치고 춤을 추면서 현실 상황을 반어적으로 자조한다. 이 노래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멋지고 잘난 사람들 때문에 초라해진 나를 진솔한 가사와 격렬한 밴드 사운드에 담아 자조한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마음 속에 쌓아둔 자격지심을 풀어내면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슬프고 쓸쓸한 환경에 있어야만 느껴지는 것이 외로움이 아니었다.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면서, 심지어 사랑을 하면서도 문득 외로움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쉽게 찾아온 외로움은 나갈 생각을 안하고 마음 속에 꼭 눌러앉아 괴롭힌다. 필자 또한 어느 순간에 확 외로워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것 같다. 군대 주말 개인정비 시간에 에반게리온 극장판을 다 보고 PX를 갈 때, 자취방 청소를 막 끝내고 뿌듯하게 침대에 누웠을 때처럼 일상 속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외로움이 찾아왔다. 그 때 느꼈던 외로움 속에서 수많은 감정들이 오락가락한다. 심지어는 외로움에 빠진 자신에 대한 왠지 모를 자아도취까지도 말이다.


앨범 속 노래들도 외로움처럼 일상적이지만 깊은 매력이 있다. 어떤 감정을 스포트라이트로 가리킨 노래들과 다르게 흔한 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가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을 콕 떠오르게 한다. 그래서 더욱 공감받고 사랑받았던 장기하와 얼굴들이었다. 비록 ‘장기하와 얼굴들’로서의 활동은 완전히 끝이 났지만, 그들이 만들었던 노래들은 여전히 세상의 수많은 일상 속에 울려퍼지고 있다.


글 l 곽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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