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겁니다
귀찮습니다.
다 귀찮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적 없나요?
다 귀찮아서 숨도 좀 덜 쉬는 날.
저는 가끔, 아니 좀 자주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주고받곤 하죠.
“어윽, 다 귀찮아. 요만큼도 움직이기 싫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
라고 하면
“넌 그렇게 다 귀찮으면 사는 건 안 귀찮냐? 숨은 어떻게 쉬어?”
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그럼 저는
“맞아. 숨 쉬는 것도 귀찮아. 그래서 좀 덜 쉬어. 그냥 안 쉬고 있다가 몰아서 쉬고 그러는데.“
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친구가 절 짐승마냥 보고는 미친 사람이구나 하고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습니다. 하핫.
그렇게 저는 숨 쉬는 것도 귀찮아서
안 쉬고 있다가 몰아 쉬곤 하죠.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저, 좀 이상한 사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거나 다 귀찮아하는 증상이 있다면
우울증일 수 있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우울증 증상 중 하나가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밝아서, 밝은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밝아서
그건 아닌 것 같네요.
그냥 단순히 모든 게 귀찮고 귀찮습니다.
원래가 게으른 사람인 이유도 크죠.
그런데 이 게으른 사람에게 세상이 너무 일을 많이 맡깁니다.
괜히 게으른데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서는,
뭔가 공존할 수 없는 말 같은데
그냥 저 자체가 좀 모순인 사람 같습니다.
게으른데 열심히 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정도?
갑자기 그 짤이 생각나네요.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서 말씀하신
미루고 벼락치기하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
사실 개인적으로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너무 핑계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개인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겠지만
저는 게으른 건 게으른 거고, 잘하고 싶은 건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게을러서 미루고 안 하면 해낸 게 없잖아요?
그저 저 말을 듣고 위안을 얻으며
“역시, 난 게으른 게 아니라 그냥 잘하고 싶은 거였어.”
라고 해버리면 스스로의 발전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게으른 자신을 탓하며 채찍질하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며 잘하고 싶은 거라고 응원해 주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상황과는 좀 다른 사람들마저 너무 동요해 버리는 건 성장을 깎는 일인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저를 더 채찍질하면서 사는 중입니다.
나름 스릴 있거든요.
아까도 말했죠. 좀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오히려 더 잘 알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아, 하기 싫어. 하기 싫다고!”
하고 작은 투정을 부리면
어차피 할 거니까 투정 부리는 겁니다. 큰 투정도 아니고 그냥 귀엽게 소리 지르는 정도예요.
“아냐. 넌 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고맙긴 합니다. 당연해요.
그런데 해야 하는 상황인 거 제가 제일 잘 알고
어차피 할 거긴 한데 그냥 하기 싫어서 소리 지른 거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왜 오히려 동문서답처럼 느껴질까요?
제가 방금도 들은 말인데 도움은 안 되고 짜증이 살짝 나더군요.
일단 지금 새벽에 잠을 못 자고 있는 것도 한 효과로 작용하긴 하지만
어차피 할 거고 내가 할 걸 이미 알고 있고
난 할 사람이라는 걸 나도 당신도 아는데
친한 사람이 그러면 ‘나를 아직 잘 모르나?’
라는 생각이 들고
안 친한 사람이 그러면 딱히 말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냥 "어.. 고마워..” 정도?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특징 때문일까요.
제가 뭐든 해내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어느 정도 꼬인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아무튼 해야 할 건 많습니다.
그래서 하기가 싫어요. 귀찮죠.
근데 할 겁니다. 해야 하는 거니까.
포기하진 않아요. 분명히.
그러니 우리, 할 수 있다는 말.
오늘은 좀 넣어두도록 해요.
어차피 우리는 해내는 사람이니까.
그거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어차피 해낼 거니까 외쳐봅시다.
아, 하기 싫다!
집에 있는데도 더 격렬히 집에 가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근데 해야 하니까 할 건데 그래도 하기 싫다!
어차피 해결책은 없는 거 아니까 그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바쁜 세상에 소리 지르게 놔둬주세요.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거예요.
어차피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 제 할 일을 할 테니까.
귀찮은 인생 하루이틀 살아본 거 아니잖아요?
좀 덜 귀찮을 날들을 위해.
우리 인생,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