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찜토 Jun 23. 2023

할 수 있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하기 싫은 겁니다

귀찮습니다.


다 귀찮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적 없나요?

다 귀찮아서 숨도 좀 덜 쉬는 날.

저는 가끔, 아니 좀 자주 그렇습니다.

그런 말을 주고받곤 하죠.

“어윽, 다 귀찮아. 요만큼도 움직이기 싫어. 손 하나 까딱하기 싫어.”

라고 하면

“넌 그렇게 다 귀찮으면 사는 건 안 귀찮냐? 숨은 어떻게 쉬어?”

라는 말로 돌아옵니다.

그럼 저는

“맞아. 숨 쉬는 것도 귀찮아. 그래서 좀 덜 쉬어. 그냥 안 쉬고 있다가 몰아서 쉬고 그러는데.“

라고 대답합니다.

그럼 친구가 절 짐승마냥 보고는 미친 사람이구나 하고 더는 말을 이어가지 않습니다. 하핫.


그렇게 저는 숨 쉬는 것도 귀찮아서

안 쉬고 있다가 몰아 쉬곤 하죠.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는데

저, 좀 이상한 사람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무기력하거나 다 귀찮아하는 증상이 있다면

우울증일 수 있다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래서 우울증 증상 중 하나가 아닌가,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너무 밝아서, 밝은 척하는 게 아니라 그냥 밝아서

그건 아닌 것 같네요.

그냥 단순히 모든 게 귀찮고 귀찮습니다.

원래가 게으른 사람인 이유도 크죠.

그런데 이 게으른 사람에게 세상이 너무 일을 많이 맡깁니다.

괜히 게으른데 열심히 사는 사람이어서는,

뭔가 공존할 수 없는 말 같은데

그냥 저 자체가 좀 모순인 사람 같습니다.

게으른데 열심히 사는, 게으른 완벽주의자 정도?




갑자기 그 짤이 생각나네요.

이미지 출처 / KBS2 ‘대화의 희열3’

오은영 박사님이 방송에서 말씀하신

미루고 벼락치기하는 건 게으른 게 아니라 잘하고 싶은 것이라는 말.


사실 개인적으로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시각에서 봤을 때

너무 핑계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개인마다 다른 의견을 가지겠지만

저는 게으른 건 게으른 거고, 잘하고 싶은 건 별개라고 생각하거든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게을러서 미루고 안 하면 해낸 게 없잖아요?

그저 저 말을 듣고 위안을 얻으며

“역시, 난 게으른 게 아니라 그냥 잘하고 싶은 거였어.”

라고 해버리면 스스로의 발전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물론 게으른 자신을 탓하며 채찍질하는 것보다는

휴식을 취하며 잘하고 싶은 거라고 응원해 주는 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 상황과는 좀 다른 사람들마저 너무 동요해 버리는 건 성장을 깎는 일인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냥 저를 더 채찍질하면서 사는 중입니다.

나름 스릴 있거든요.

아까도 말했죠. 좀 이상한 사람 맞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한계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힘을 오히려 더 잘 알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아, 하기 싫어. 하기 싫다고!”

하고 작은 투정을 부리면

어차피 할 거니까 투정 부리는 겁니다. 큰 투정도 아니고 그냥 귀엽게 소리 지르는 정도예요.


“아냐. 넌 할 수 있어.”

라는 말은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고맙긴 합니다. 당연해요.

그런데 해야 하는 상황인 거 제가 제일 잘 알고

어차피 할 거긴 한데 그냥 하기 싫어서 소리 지른 거에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왜 오히려 동문서답처럼 느껴질까요?


제가 방금도 들은 말인데 도움은 안 되고 짜증이 살짝 나더군요.

일단 지금 새벽에 잠을 못 자고 있는 것도 한 효과로 작용하긴 하지만

어차피 할 거고 내가 할 걸 이미 알고 있고

난 할 사람이라는 걸 나도 당신도 아는데

친한 사람이 그러면 ‘나를 아직 잘 모르나?’

라는 생각이 들고

안 친한 사람이 그러면 딱히 말이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그냥 "어.. 고마워..” 정도?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특징 때문일까요.

제가 뭐든 해내는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어느 정도 꼬인 사람이라 그런 걸까요.


아무튼 해야 할 건 많습니다.

그래서 하기가 싫어요. 귀찮죠.

근데 할 겁니다. 해야 하는 거니까.

포기하진 않아요. 분명히.


그러니 우리, 할 수 있다는 말.

오늘은 좀 넣어두도록 해요.

어차피 우리는 해내는 사람이니까.


그거 본인이 제일 잘 알잖아요.

어차피 해낼 거니까 외쳐봅시다.

아, 하기 싫다!

집에 있는데도 더 격렬히 집에 가고 싶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근데 해야 하니까 할 건데 그래도 하기 싫다!

어차피 해결책은 없는 거 아니까 그건 필요 없습니다.




그냥 바쁜 세상에 소리 지르게 놔둬주세요.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거예요.

어차피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 제 할 일을 할 테니까.

귀찮은 인생 하루이틀 살아본 거 아니잖아요?

좀 덜 귀찮을 날들을 위해.

우리 인생,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무례한 건 ‘T’인 것과 상관이 없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