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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리 Jun 20. 2023

영화와 소설의 다른 점

영화 <밀양>과 소설 <벌레 이야기>을 비교, 분석한 비평문

밀양은 벌레 이야기라는 작품을 원작으로 두고 제작된 영화입니다. 전체적인 차이점을 보자면 벌레 이야기는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즉 범인과 아내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을 마주할 때 찾아오는 괴리감을 그린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벌레 이야기의 관계만 생각하고 영화에서도 범인과 아내의 관계에 초점을 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밀양은 종찬의 변화를 통해 인간과 인간 간의 사랑이 신을 향한 신앙까지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두 작품의 내용을 분석하기에 앞서 벌레 이야기와 밀양의 제목의 뜻에 대해 알아보면 벌레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호명으로 인간은 영원한 신의에 도달할 수 없는 벌레들이며 신의 빛 앞에 나오지 못한 채 사람들은 꿈틀거리는 벌레에 불과한 존재라는 이유로 벌레 이야기라고 지은 것 같습니다.


밀양은 제목에서만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닌 이 영화의 배경으로도 두고 있는데 밀양이란 비밀의 햇볕이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비밀이란 쉽게 찾을 수 없게 숨겨져 있는 의미이며 이 의미를 영화 속에 대입해서 생각해 본다면 사람들의 비밀 속에 고통을 겪고, 힘들고 다른 소중한 관계들의 가치를 처음에 몰랐지만, 나중에 보이면서 새 삶을 시작되는 것을 보여주는 의미를 담아 밀양이라고 지었습니다. 이 의미를 영화 속 마지막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집 마당에서 머리를 자르는 신애의 모습을 찍던 카메라가 앞마당을 비추는 장면에서 정원을 비추고 있는 햇빛을 볼 수 있습니다. 마당에 드리운 햇빛은 신애가 다시 희망 어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모종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장면의 차이점을 가장 먼저 찾을 수 있었던 부분은 영화와 소설이 시작되는 부분에서 차이점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밀양에서의 처음 시작은 남편을 잃은 뒤 밀양으로 신애와 아들 준이 같이 내려오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밀양이 어떤 곳인지 종찬에게 묻는 장면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밀양에서 종찬은 소설에 있는 남편 대신 새로 추가된 인물이며 종찬 외에도 새롭게 추가된 인물이 등장합니다.


벌레 이야기에서는 밀양과의 관계성이 전혀 없으며 그렇기에 밀양과 달리 알암이의 실종 사건부터 시작됩니다. 알암이는 준과 다르게 다리가 불편하며 주판에 관심이 많은 아이로 주판학원에 다닙니다. 벌레 이야기에서 알암이가 실종되자 주판학원에도 전화하고 학교에도 전화하는 장면이 있지만, 밀양에서는 학교 다니는 모습은 안 나오고 웅변 학원에 다니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두 작품에서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 주판학원과 웅변 학원이라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으며 직업에서의 차이점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의 범인은 웅변 학원 원장과 딸을 둔 아버지 나타나고 있는데 소설에서는 그냥 아내와 주판학원의 원장으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범인의 딸 역시 영화에서 새로 추가된 인물인데 이후 신애가 딸을 보면서 용서해 주고 싶은 동정심이 들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위에서 종찬을 설명하면서 남편 대신 새로 추가된 인물이라고 하였는데 밀양에서는 남편이 존재하지 않았고 벌레 이야기에서는 존재하고 있는 차이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벌레 이야기에서의 남편은 아내 곁에서 아내를 위로해 주면서 신앙을 믿지 않는 아내를 믿도록 부추기면서 아내를 슬픔 속에서 꺼내주려고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남편이 옆에서 아내를 지켜보고 아내의 행동을 전달하는 듯한 모습도 볼 수 있으며 이 작품은 남편의 시점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볼 수 있는 부분을 보면 거의 전체적으로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볼 수 있는데 아내의 모습을 관찰한 부분 중 약국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내가 약국에 나오지 않는다는 부분과 그 후 아내가 괜찮아졌는지 약국에 나와 있다 등 아내의 모습을 관찰하는 듯한 부분을 찾아볼 수 있어 아내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 볼 수 있는 남편의 시점으로 잘 전개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벌레 이야기는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벌레 이야기와 달리 신애는 남편이 죽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에 남편의 시점에서 관찰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화 속 인물이 관찰 대상의 심리를 바라본다면 자세히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관찰자 시점으로도 전개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밀양에서는 주인공들의 심리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전개되고 있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신애는 피아노 학원을 운영하고 신애의 주변에 종찬이 있는 모습에서 종찬이 신애에게 마음에 있는 부분에서도 볼 수 있으며 신애가 남편이 없기에 신애의 외로운 심정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신애의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는 남편과 아이를 먼저 보낸 후 마음 둘 곳 없는 신애를 더 괴롭고 외롭게 만들어주기 위해 남편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런 신애 곁에 신애의 편을 들어주는 종찬이 존재하고 있지만, 신애의 심리를 공감할 수는 없으며 신애를 외롭게 설정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의 유괴와 관련해서도 몇 가지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벌레 이야기에서 아이의 유괴된 장소를 보면 벌레 이야기에서는 알암이가 원래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학원에 갔는데 이날은 그러지 않고 주판학원이 끝날 시간까지 집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주판학원에서는 오늘 학원에 오지 않았다고 하여 아이가 학교를 마치고 유괴된 것인데 밀양에서는 신애가 집에 늦게 돌아와 준이를 찾으면서 준이가 집에서 유괴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유괴당한 후에도 벌레 이야기에서 알암이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약국이 잘 되는 편이었고 그것이 표적이 될 수 있다고 경찰이 돈을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했기에 두 작품은 돈을 노렸다는 점에 공통점이 있는 줄 알았지만, 벌레 이야기에서는 범인으로서의 연락이 없어 돈이 노린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밀양에서 역시 신애가 밀양으로 내려오면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신애가 자존심이 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어 밀양으로 내려오면서 땅을 살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다녀 돈이 있는 척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렇기에 밀양에서는 유괴범에게 돈을 달라는 요구의 전화가 옵니다. 이 부분에서 차이점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벌레 이야기에서도 유괴범이 밀양에서처럼 돈을 노리고 유괴했을 수도 있는데 소설 속에서 유괴범으로부터 연락을 기다리며 아이에 관해 전국구 방송을 보내고 사건을 크게 만들어 범인이 부담감을 느껴 부모님에게 연락하지 못하고 그냥 재개발구역에 아이의 시신을 그대로 두고 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서 유괴범의 돈 요구가 나타나고 있었지만, 신애에게 더 큰돈을 원하며 없다고 하니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공통점이지만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의 유괴를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두 작품 모두 공통으로 교회가 등장하고 있는데 신에 대한 아람의 엄마와 신애의 차이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 작품의 주인공 둘 다 신에 대한 믿음이 없다가 나중에 믿는 과정에서 교회를 전도하는 인물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벌레 이야기에서 아내는 원래 종교에 관심이 없었던 인물이지만 아이를 잃은 후 절간도 다니고 교회도 가서 돈을 내는 부분을 찾아볼 수 있었으며 이렇게 종교를 믿어왔지만, 아이가 돌아오지 않자 이제는 주님의 능력과 사랑을 신용하지 않고 남은 것은 원망이라고 합니다. 김 집사가 다시 나타나 주님을 빌어 아내를 위로하는 장면에서 아내는 자신에게 주님을 빌어 얘기할 때 아내는 이제 하느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부분은 밀양에서 약사에게 교회를 다니라고 신애가 권유당할 때 교회를 안 믿는다고 거절하는 부분과 신을 믿는 부분이 공통적인 모습입니다. 벌레 이야기에서 아내는 신을 잘 믿고 있지 않으며 아이의 시신이 발견되고 난 후 믿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신에 대한 전체적인 신앙이 없었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는 신애의 성격은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그것만을 보며 살아가는 인물이라고 볼 수 있는데 아들이 살아 있었을 때는 아들에게 의지하며 살아갔고, 아들이 사망하자, 종교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누군가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야 했기에 신애는 그 후 교회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계속 다니며 종교인이 된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두 작품에 종교를 접하게 된 시기가 아이의 시신을 발견하기 전과 그 이후로 다르게 나타나고 있으며 하느님을 믿고 난 뒤 인간적인 증오와 복수심을 버리고 신앙으로 모두를 용서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라는 물음 앞에 신애는 원장을 용서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알암이 엄마 역시 신앙을 갖게 되고 용서를 하러 가서 범인을 만나러 가는데 범인이 이미 자신의 모든 죄과를 참회하고 용서의 사랑 속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있었다고 말하는 모습에 신앙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두 작품 모두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이후 결말이 소설과 영화에서의 차이점이 다시 나타나게 됩니다. 범인을 만나고 난 뒤 소설에서는 알암이 엄마의 자살로 끝나지만, 밀양에서는 신애가 하나님에 대한 배신감으로 복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목사 설교 중에 음악을 틀어두고는 합니다. 그 후 자살 시도를 하고 범인을 용서하지 못한 채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영화가 끝이 납니다.


두 개의 작품이 다른 결말을 가지는 것에는 아마 주변 인물의 차이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영화에서 결말 장면에 종찬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신애의 곁에 있으며 버티는 모습과 달리 소설에서는 남편이 관찰자로만 존재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 신애가 신에 대한 믿음이 무너졌을 때 종찬이 곁에서 계속 버텨주며 밀양의 뜻에 대해 알아볼 때 비밀이란 쉽게 찾을 수 없게 숨겨져 있는 의미이며 이 의미를 영화 속에 대입해서 생각해 본다고 하였는데 사람들의 비밀이 신애가 숨겨뒀던 것이며 아이를 잃고 힘든 생활 속에 종찬이라는 인물의 가치를 몰랐지만, 그 후에 신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곁에 있는 종찬이 신애에게 보이면서 새 삶을 시작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영화와 소설의 결말 차이인 것 같습니다. 영화와 소설에서는 아들의 이름, 시체 발견 장소, 사랑의 요소, 범인의 딸 등 여러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으며 처음 시작과 결말이 다름으로 가장 큰 차이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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