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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수임 Apr 03. 2024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

인생은 미완성 1. 종각사거리 추억단상

청춘문화의 거리 시작점, 모전교에서 청춘을 회상하다

"번개할까?"


아침부터 여고동창생 카톡방이 분주하다. 4개의 "ㅇㅋ"   를 확인 하고 옷장 문을 열었다. '뭐 입지?' 룰루랄라 노래가 나온다. "긴-머리, 짧은 치마 아름다운 - -". '짧은 치마는 안되고, 이제 파마머리라--.'

대학 시절 청바지  입고 몰려다니며 생맥주를 마시던 종로에 모였다. 너와 나, 우리의 어제를 속속 들이 알고 있어, 종일 떠들어도 지치지 않는 수다쟁이들이다. 한 친구가 물었다.

"너희는 언제로 돌아가서 다시  살아 보고 어?"

"나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왜? 한번 되돌아가서 다르게 살아보고 싶지 않아?"

"아니, 너무 힘들었어, 여기까지 오는데." 모두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창문에 드리워진 빛과 그림자-내마음

"그래--너무 힘들었지, 우리 모두. "

'난 언제로 돌아가서 다시 한번 살아볼까?'


먼저, 대학 시절, 연인 생각.

이블에 쇠, 담배, 라이터, 수첩이 놓여 있었다. 나는 얼른 수첩을 집었다. 웬지 담배, 라이터보다 수첩이 의미 있다고 생각됐다. 카페에 들어오면서부터 눈에 끌리던 그 남학생이 나를 보았다. 순간 눈이  마주쳤고 미소가 번졌다. 카페를 나와 광화문  지하도를 건너 종로로 걸어갔다. 종로 뒷골목은 뜻도 모르는 외래어로 된 경양식집이 한 집 건너마다 있었다. 반줄, 봉주르, 몽쉘통통,... 메뉴는 가벼운 함박스테이크, 돈까스, 맥시칸샐러드 등이었다. 왠지 첫 만남에서는 서양 음식을 먹어야 로맨틱하게 느껴졌다. 그 후 우리는 몇 년간 종로통의 경영식 메뉴를 샅샅이 찾아 먹으며 돌아다녔다.

'정동 돌담길을 걸으면 헤어진다' 라는 속설이 있어 우리는 결코 그 길을 걷지 않았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 하나로 비를 피하며 즐거웠고, 눈 오는 겨울에는 '러브 스토리' 의 한 컷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 얘기했고, 나는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오므라이스를 먹고 싶은데 그는 김치볶음밥을 좋아했다. 내가 산책하길 원할 때, 그는 영화를 보러 가자 했다. 나는 꿈꾸는 삶이 있었으나 그는 내 꿈에 대해 묻지 않았다.


가지 않은 길

                            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중략-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걸어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다음, 어린 시절, 부모님 생각.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날 나는 흰 스타킹에 검정 에나멜구두를 신고 있었다. 부모님은 양쪽에서 내 손을 잡고 걸으셨다. 나는 대롱대롱 매달리다시피 시발택시에 태워졌다. 어지럽게 전차가 오가는 거리를 한참 지나 화신백화점에서 내렸다. 거기서 우리는 유치원 입학식에 입을 원피스를 샀다. 하늘하늘한 흰색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드레스였다.

"수임아, 이거 입을래? 공주처럼 예쁘네?"

"응, 좋아, 너무 좋아!"

나는 머리맡에 선물로 받은 옷을 고이 개켜놓고 내일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소문난 구두쇠였다. 단벌 신사에 구두 뒤축은 닳아서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신으셨다.

"주머니에 넣고 출근할까?"

하며 딸래미를 애지중지했으니 백만금도 아깝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이시다. 명절 때면 어린 시절 고향의 일들을 옛날이야기처럼 해주셨다. 내 나이 60이 다 돼서야 부모님의 고아와 같은 외로운 삶을 깨닫게 되었다. 엄마는 때때로 산정호수로, 강원도로 여행을 다니셨다. 고향과 비슷한 곳을 찾아 가신 듯하다. 엄마 젖가슴 만지듯, 뺨을 비비듯, 등에 업히듯 아늑한 고향이 얼마나 그리우셨을까?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볼 때 문득 갈가에 서 계시는 엄마,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스친다. 불러 보고 싶은 마음에 울컥 목구멍으로 뜨거운 게 치민다.

'다시 한번 볼 수 있다면, 다시 만질 수만 있다면 - - -.'

오랫만에 종각사거리에 서본다. 60년대 화신백화점은 종로의 랜드마크였다. 그 시대의 청춘들은 백화점 시계탑 밑에서 연인을 기다렸겠지. 추억 속 화신백화점 자리에는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주변은 현대식 세련된 고층건물로 빽빽하다. 종각 뒤 아지트였던 다방은 분식집으로 바뀌었고, 뒷골목 젊음의 거리는 경양식집 대신 카페와 다양한 종류의 술집들로 화려하다.

커피 한 모금 넘기며 친구가 말했다.

"나는 지금이 제일 좋아. 후회 없이 살았어."





자화상-갤러리카페 유리창에 비친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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