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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수임 May 14. 2024

쿠스코 시장의 외로운 방랑자

은퇴 여교수의 남미여행기 6.

     

쿠스코, 작고도 화려한 붉은 지붕과 돌로 덮인 모자이크 도시!

거대한 돌로 만든 고대 잉카의 유적과 스페인의 식민지 시절을 기억하게 하는 화려한 대성당. 하늘에서 내려다본 쿠스코의 전경은 이곳에 숨겨진 수많은 이야기를 말없이 들려주는 것 같았다.

    

찬란했던 잉카문명의 수도로서 이 도시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쿠스코는 한때 제국의 중심이자, 태양신 인티를 숭배하는 신성한 장소였다. 16세기 스페인의 손에 넘어가면서, 고대의 영광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이렇게 잉카의 역사와 스페인의 정복이 뒤섞인 쿠스코는 역사의 슬픈 교차점을 보여준다. 제국의 후손들은 자신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부심을 잃어가면서, 동시에 스페인 정복의 아픔을 견뎌야 했다.

    

쿠스코 주변의 유적지로 관광을 떠나기 전에 나는 쿠스코를 더 느끼고 싶었다. 그날 나는 일행과 떨어져 혼자 느린 걸음으로 쿠스코를 즐기고 있었다. 여행지는 어느 곳이나 시장이 재미난다. 쿠스코 시장도 왁자지껄, 사람 사는 냄새를 풀풀 풍겼다. 길 양쪽으로 원주민복장을 한 촐리타할머니들이 땅바닥에  물건들을 무기력하게  다.     

이 고대 도시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매우 특별했다. 길에서 마주 치는 잉카의 후손들은 가슴을 아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이들의 무력한 시선은 고대 문명의 영광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상처와 아픔도 묻어 있었다. 쿠스코의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내 안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의 파도가 일었다.

     

이곳저곳 카메라 렌즈를 돌리고 셔터를 눌러댔다. 그때, 클로즈업되며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아! 매우 포토제닉하다!!’

    

무지개색의 예쁜 비니를 쓴 페루인. 거대한 줄무늬 봇짐을 등에 진 채, 조각처럼 앉아 있다.

재래시장의 북적임 속에서도 조용하고 고요한 존재감을 뽐냈다. 그는 혼자였지만, 그 혼자라는 것이 그에게는 자유로움을 주는 듯했다.


카메라 뷰파인더로 그의 모습을 훔쳐보면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조용히 상상해 보았다.     

‘커다란 개나리 봇짐이라~~ 방랑자인가!!‘     

그는 잉카의 후예도, 스페인의 혈통도 아닌 어중간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피부는 거무튀튀하나 이목구비는 유럽인과 더 닮아있다. 돌아앉은 뒷모습은 원주민들과 달리 비교적 건장한 체격으로 보인다. 그의 머리에 바가지 씌운 듯 딱 맞는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비니는 상상을 초월한 조합이다. 그의 모습은 잉카와 스페인, 두 세계가 충돌하는 이 도시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이 모습은 쿠스코가 간직한 수많은 얼굴 중 하나로 보인다.

              

나는 그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주위를 맴돌다가, 순간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는 깊고도 슬프게 보였다. 그 슬픔은 쿠스코에서 만나는 잉카인들에게서 풍기는 설명할 수 없는 아릿함이다. 그의 눈빛에서는 고대 잉카인들의 슬픔과 스페인 정복자들의 엄격함이 교차하는 듯했다.      

‘그는 무슨 생각에 잠긴 걸까?‘

    

그의 고독과 외로움은 그가 속한 세계와는 거리가 먼 듯하다. 비니 아래 빼꼼히 보이는 눈가엔 세상 모든 것을 흘끗 내다보는 듯한 철학자의 눈빛이 스쳐 갔다. 그는 마치 모든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진 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기의 내면에 깊숙이 뿌리내린 고독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의 삶은 그가 쓴 비니만큼이나 다채롭고 복잡할 것 같다.


그의 모습은 많은 여행자들의 눈에 띄었으리라. 그리고 그들 각자에게 그는 다른 의미로 기억될 것이다. 나에게 그는, 외로움 속에서도 평화를 찾은 사람으로, 그의 고독한 눈빛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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