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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 수임 Apr 03. 2024

다시 한 번, <화양연화>

인생은 미완성 3

그녀가 사원의 긴 회랑 끝, 돌 틈에 입을 대고 속삭이는 포즈를 취하며

엄마, 사진 찍어줘”

라고 말했다. 마치 영화 ‘화양연화’의 남주인공 차오가 한 것 처럼.


어느 가을, 우리는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사원, 앙코르 와트로 여행 중이었다. 앙코르 와트는 ‘사원의 도읍’ 이라는 의미로 데바라자(神王)의 사후세계를 위해 지어진 사원이라고 한다. 거대하 게 산처럼 생긴 탑들과 긴 회랑들을 누비며 그 신비스러움과 원시미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부조 의 형태로 정교하게 장식된 힌두 신화의 이야기들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화양연화의 촬영장 소인 바로 그 기둥이 어디였을까 궁금했다. 홍콩영화 ’화양연화’는 첸부인과 차오의 슬프고 짧은 미완의 러브스토리다. 동병상련으로 서로 를 의지하던 두 사람은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이 시간들로 차오와 첸은 인생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꼈으나 모든 것을 비밀로 감춘 채 결말을 맺는다. 영화의 엔딩 장면에서 남주인공 차오는 앙코 르 와트 유적지의 돌 틈에 입을 대고 자신의 비밀을 채워 넣는다. 영화의 이 마지막 장면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해서 나에게 오랜기간 여운을 남겼다.


‘화양연화花樣年華’ 글자의 의미로 파악한다면 ‘꽃 모양이 화려한 때’ 이다. ‘행복해서 꽃처럼 빛나 는 때’ .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 삶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 절,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던가 생각해 본다. 20 대는 풋풋한 첫사랑으로 화양연화의 꽃봉오리를 터트렸다. 풋사랑이 그렇듯이 너무 덜 익어서 화려하게 빛나지는 못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가장 후회되는 시간이다. 그러나 뜨겁게 사랑해서 행복한 대상이 꼭 사람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랑의 본질적 의미가 ‘어떤 대상을 집착하여 귀중히 여기는 욕망’ 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첫사랑이 첫 번째 화양연화라면 30 대에는 그 대상이 학문이었다. 새로운 책을 보며 설레었고 지식에 굶주려 밤을 하얗게 새우곤 했다.


사랑이란 감정은 새로움에서 부터 피어나는 것 같다. 내 가슴에는 항상 새로운 것에 대한 설레임과 그리움이 있다. 그러니 언제든 꽃은 필 수 있다. 누구는 사는 매일이 화양연화라 하지 않았는가. 이제 청춘의 화양연화와 같은 화려하고 빛나는 아름다움보다는 구비구비 넘어 쌓인 내면으로, 향기나는 사랑을 시작하고 싶다. 그리하여 나도 차오와 같이 돌 틈에 채워 영원히 봉인할 아름다운 비밀 하나는 간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녀가 사원을 걸어 다니는 사이, 잠시 돌무더기 사이에 앉아 쉬자니 바람 한줄기가 이마를 스친다. 태고에도 불었을 바람이다. 바람을 따라 차우가 속삭인 그 비밀이 들리는 듯 했다.

                       ‘언제든

                       꽃은 핀다          


                       문제는

                      가슴의 뜨거움이고

                      그리움, 기다림이다’     

                                                     - 나태주 <꽃필 날>-

                                           차오의 흔적을 찾아 앙코르 와트 유적지를 헤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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