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베트남에 가려고 했다. 오래 생각해 둔 여행이었다. 낯선 풍경 앞에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고 싶었고, 무엇보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정이 어긋났고, 여행은 말처럼 간단히 ‘다음에’로 미뤄지지 않았다. 마음이라는 건, 한 번 기울면 그 기울기를 따라가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다른 방향을 보았다. 문득, 일본이나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사실 일본은 늘 머릿속에서 어딘가 탁 걸려 있는 나라였다. 멀지도 않은데 멀고, 가까운 듯한데 정작 마음은 경계하고 있는, 그런 묘한 거리감의 나라. “언젠가 가봐야지” 하고 미뤄두면서도, 왠지 가면 안 될 것 같은…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내 안에 오래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규슈는 그렇게 왔다. 계획이라기보다는, 마음의 기울기였다.
공항에서 내려 도시를 걷다 보니, 일본 특유의 질서와 조용함이 먼저 몸에 닿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인도,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신호음, 작은 가게 간판들, 그리고 어딘가 부드러운 공기.
그 순간 나는 어쩐지 이미 알고 있던 세계 안으로 들어온 듯했다. 전혀 새로운 곳인데,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느낌이 나를 뒤흔들었다.
나는 일본을 좋아했었나?
아니면 일본을 미워하고 싶었나?
그도 아니면 이 두 마음이 처음부터 함께 있었던 것일까.
나는 자라면서 ‘일제’는 미워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약탈과 폭력, 지워버린 이름들, 빼앗긴 시간들. 그건 역사이고, 기억이고, 상처다.
그런데 동시에 나는 일본의 전기밥솥에 감탄했고, 책갈피처럼 얇게 정리된 문장들에 매혹되었고, 일본 공예의 조용한 아름다움에 끌렸다.
나는 일본을 싫어한다고 말하면서, 일본의 물건과 문화가 주는 미묘한 매력을 놓지 못했다.
그 말하자면, 두 마음이 공존하는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이 두 마음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의 근대는 침탈의 기억과 함께 이루어졌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선망’과 ‘거부’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배웠다.
미워하면서 닮았고, 닮아 있으면서 미워했다.
그 긴장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
그래서 규슈에 서 있는 지금, 나는 이 복잡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미워해야 하는지 다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함께 살아온 두 마음을 천천히 바라보는 일이다.
좋아하는 마음을 인정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기억하고
그 둘 사이에서 숨 쉬는 나를 받아들이는 것.
그게 치유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성숙일지도.
규슈의 바람은 조용하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조금씩 가벼워진다.
나는 이제 일본을 두려움으로 대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무조건적인 선망으로 포장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내가 느낀 것들을 느낀 그대로 기록하면 된다.
그것이 나의 역사고, 나의 마음이고, 나의 삶이니까.
이 여행은 그런 여행이었다.
도망도 아니었고, 욕망도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두 마음을 만나러 온 여행.
그리고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