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또 다른 상처, 5·18 성폭력 피해자

by 몽돌이


주말 저녁 시사 프로그램에서 5·18 성폭력 피해자 이야기를 접했다. 오래전부터 떠돌던 소문으로 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실제 사실임을 확인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1980년 5월 광주를 떠올리면, 우리는 흔히 총성과 항쟁, 민주주의를 위한 희생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 영웅적인 서사 뒤에는, 40여 년 동안 사회적 낙인과 침묵 속에서 고통받아 온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5·18 당시 계엄군과 수사기관 등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 피해자들이다.

그들의 증언은 5·18이 단순한 정치적 탄압이 아니라, 국가 폭력이 개인의 존엄성을 성적으로 침해한 인권 참사였음을 보여준다. 2018년 구성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오랫동안 감춰졌던 이 참혹한 진실을 공식적으로 세상에 드러냈다.

조사 결과, 총 52건의 성범죄 의심 사건이 접수되었고, 그중 16건이 실제 성폭력 정황으로 확인됐다. 피해 유형은 강간, 구금 중 성고문, 조사 과정에서의 성적 가혹행위 등 다양했다. 피해자는 시위 참여자와 무관한 미성년자, 평범한 주부 등 매우 다양했으며, 일부는 임산부로서 아이를 잃은 사례도 있었다. 성폭력 후유증으로 자궁 관련 질병이나 각종 암으로 지금까지 고통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 피해가 오랫동안 드러나지 못한 이유는 ‘침묵의 강요’였다. 당시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는 개인의 수치심과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졌기에, 목소리를 내기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2018년 서지현 검사의 성추행 폭로와 함께 본격화된 미투 운동이 촉발점이 되어, 피해자들은 마침내 용기를 낼 수 있었다.그들은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는 단순한 관련자가 아니라, 국가 폭력에 의해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이 용기 있는 고백 덕분에 5·18은 민주화 영웅들의 이야기와 함께, 가장 취약한 방식으로 짓밟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동시에 품게 되었다. 일부 피해 사실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고 대통령의 사과가 있었지만,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모든 피해를 법적으로 확정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 국가 차원의 책임 인정, 공식 사과, 명예 회복, 합당한 보상은 피해자 치유를 위한 최소한의 발걸음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피해자들은 군복이나 특정 냄새에 충격을 받는 정신적 트라우마와 사회적 낙인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열매’라는 이름으로 함께 모인 이들은 서로의 힘이 되어 진실을 밝히고, 묵은 상처를 함께 치유해 나가고 있다.

5·18 성폭력 진상 규명의 의미는 단순히 과거사를 되짚는 데 있지 않다. 이는 국가 폭력에 성이 악용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현재 진행형 과제다.

우리는 이들의 고통을 기억함으로써, 5월의 비극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인권 문제’임을 확인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의 용기에 고개를 숙이고, 치유와 명예 회복을 위한 책임을 다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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