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허무함
오늘은 1904년 러일전쟁을 앞둔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정리하겠다.
〇사건개요와 배경
이 사건은 1902년 1월에 일어난 일본 육군 제8사단 보병 제5연대의 설중행군 참가자 210명 중 199명이 목숨을 잃은 조난 사건이다.
행군은 아오모리현 핫코다산(八甲田山)에서 진행될 예정이었으며 이 산은 현재 일본 100 명산 중 하나로 많은 등산객이 등반하고 있다.
지리적으로는 홋카이도와 가까운 일본 북부에 위치해 있으며 2024년 2월 말 현재 영하 10도를 찍는 산이다.
이 설중행군을 감행한 배경은 1894년에 일어난 청일전쟁이 있었다.
겨울 전투에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 군은 러시아와의 전쟁을 대비해 추운 곳에서의 훈련을 감행했다.
그런데 눈으로 덮인 산을 200명이 넘는 군인들이 가야 하는데도 제8사단의 준비는 부족했다.
군인들을 비교적 얇은 외투 하나를 걸치고 행군을 떠나야 했고 이를 알게 된 핫코다산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말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행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〇조난과 속출하는 사망자
첫날 오후부터는 많은 눈이 오면서 폭풍이 불어 각종 장비들을 태운 썰매 부대가 지연되기도 해서 어두워진 후에야 겨우겨우 야영지를 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불을 피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식사도 물론 제대로 하지 못했다.
이틀째가 되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연대원들은 동상 위험도 있어 하산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날 눈이 많이 온 관계로 길이 잘 보이지 않아 산속을 헤매게 된다.
벼랑을 오를 때 낙오자가 속출했고 동사자도 생겨 연대 분위기 자체도 살벌해진다.
그 후에도 지속되는 폭풍과 눈으로 사망자는 늘어만 간다.
이때 구원부대가 투입되어 수색을 시작하지만 날씨 때문에 산을 오르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행군 5일 차부터는 곳곳에서 많은 시체가 발견되기 시작한다.
수색이 끝나보니 결국 생존자는 11명이었다.
그들도 심한 동상을 입었고 사지 절단 등의 처치를 받았다고 한다.
모든 게 무모한 훈련의 잔인한 결과였다.
그리고 이 행군을 살아남아 기적적으로 빠르게 회복했던 한 대위는 결국 러일전쟁에 투입되어 목숨을 잃게 된다.
이것 또한 전쟁으로 인해 목숨이 가볍게 여겨진 결과인 것 같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와의 전쟁 중에 희생된 군인 수가 3만 명을 넘는다는 뉴스를 보았다.
러시아 측에서도 당연히 군인들의 희생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어떤 일을 했든 그들의 죽음은 "전쟁"에 의한 죽음이다. 민간인의 희생이 슬프고 화가 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나는 이런 죽음들 또한 정말 허무하고 불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 봐도 그렇다.
이들은 분명히 일본의 전투력이 될 사람들이었다.
전쟁을 나가서 어떤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었는지는 모르겠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전쟁터에 가서 민간인에 대한 전쟁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반대로 사람을 구할 수도 있고...).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200명 가까운 젊은 사람들이 전투를 앞둔 훈련 중에 희생되었다는 사실을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훈련에서 살아서 돌아왔어야 되고 돌아왔다면 러일전쟁은 안 나갔어야 되고 애초에 군 입대를 안 해도 되는 세계였어야 한다.
지난 일에 대해 말해봤자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그런 세계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자꾸만 멀어져 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사건도 전쟁의 잔혹함, 허무함을 보여주는 한 사건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