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사람의 다양한 의도
흉흉한 세상에 불안함과 어지러움을 느껴... 오늘은 비극과는 약간 다르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미이라에 대한 이야기를 정리해 보겠다.
〇세상에서 가장 예쁜 미이라
1918년 이탈리아. 로잘리아 롬바르도라는 여아가 탄생한다.
아버지는 장군인 것으로 보아 비교적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안에 태어난 것 같다.
그런데 로잘리아는 2살이 되기 전에 폐렴으로 사망한다.
아버지는 시체 보존의 전문가 알프레도 살라피아에 의뢰하고 그녀를 되도록이면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해 달라고 한다.
알프레도는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던 포르말린 등을 조합해서 사용하는 방식으로 미라로 만들었고(약물 조합에 대해서는 알프레도의 사후에 밝혀진다) 그 모습은 정말 잠깐 낮잠을 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로잘리아를 생존 모습 그대로 보존할 것을 간절히 원했던 부모는 처음에는 매일 딸을 보러 갔지만 당장에라도 눈을 뜰 것 같은데 매일 변화 없이 잠들기만 하는 딸을 보기가 힘들어져 그녀가 잠드는 수도원에서 발길이 멀어졌다고 한다.
〇사람의 머리를 가공한 "Shrunken Head"
영어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의 머리를 작게 가공해서 만든 장식품의 일종이며 16세기(추정)부터 현재 남미 에콰도르-페루에 살았던 일부 부족에 있었던 종교적 관습 중 하나이다.
현지에서는 "Tzantza"라 불린다.
육체 전체를 보존하지는 않기 때문에 미이라로 불러도 될지는 의문스럽지만 종교적인 뜻과 어쨌든 신체를 가공한다는 의미에서 미이라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로 적을 살해하고 난 다음 시체에서 머리를 떼어 그 머리를 가공하고 작게 만들어 종교적 의식을 치르거나 장식했다고 한다.
자세한 공정은 상상하면 비위에 좋지 않아 적지 않겠지만 미생물 처리나 두개골 처리, 마지막에 머리카락을 심는 작업까지 꽤나 공들여 만들어야 한다. 작업 시간은 1주일 정도 소요되었다.
이를 만드는 관습을 가진 부족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의 영혼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1. 사후도 증기가 되면서 존재하는 영혼
2. 살아있는 인간을 보호하는 영혼
3. 2번이 지키고 있었던 인간이 사망했을 때 나타나는 복수하고자 하는 영혼
이런 사후관과 인간이 사후에도 가지고 있는 힘을 믿었기 때문에 생긴 문화로 이해가 되는데 그렇다면 적의 머리로 만들어도 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전리품으로 만든 "머리"와 종교용 "머리"는 다른 건지 정보가 없어서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동족의 머리로 만드는 일도 간혹 있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 구분이 있었을 수도 있겠다.
이 "머리"는 조금씩 소수 민족에도 유럽인들이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어떤 유럽인 수집가들이 머리를 구매하기 시작해 종교의식용이 아닌 상업용으로 동물 머리를 가공하는 일도 많이 진행되어 한 때는 꽤나 큰 수익을 내는 사업이었다고 한다.
사적인 이유, 종교적인 이유, 상업적인 이유... 사람들이 시체를 보존하려고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미이라라고 하면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유가 먼저 떠오르긴 하지만 찾아보면 다양한 배경들이 있어 인간의 욕심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는지 때로는 흥미롭고 때로는 무섭다. 또 약품을 쓰는 로잘리아 같은 현대식(?) 미이라와 달리 고대 미이라는 환경도 중요했기 때문에 그걸 살피고 연구한 사람들의 탐구심이란... 대단하고 신기하다.
Shrunken head에 관해서는 현재도 여러 박물관에서 전시되어 있고 나도 몇 년 전 도쿄에서 전시된 머리를 보기도 했다.
영혼이 느껴졌냐고 물어본다면 잘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나무나 흙으로 만든 인형이나 무덤에 함께 묻은 각종 장식품들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징그럽다고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정면에서 오래 보면 안 될 것 같은 신기한 아우라가 있었다.
그런데 이 유물에 관해서는 전시의 방식이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최근에 영국에서 Shrunken head의 전시가 중단되었는데 박물관 측은 그 이유로 관람객들이 "야만족의 문화"로 인식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들었다. 문화적인 유물을 소개하는 전시가 차별적인 사고를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야만적인 걸로 따지면 그 머리를 수집하고 싶어 하고 상업용으로 대량으로 사들인 당시의 유럽인들이 훨씬 야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호기심에 대해서는 시대가 그런 시대라 어쩔 수 없는 일로 납득하면서 당시 부족들의 종교적 의식에 대해서는 야만적이라고 하는 건 약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차별적인 사고와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판단된다면 전시를 안 하는 게 해당 민족이나 인종을 지킨다는 의미에서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전달하고 싶은 정보나 메시지를 온전히, 제대로 전달하는 것도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