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일어난 혁명과 이 과정에서 일어난 유혈 사태에 대해 정리해 보겠다.
〇잔지바르의 독립과혁명
잔지바르는 아프리카 동부에 위치한 섬이며 현재 탄자니아 연합공화국에 속해 있는 한 지역명이다.
하지만 한 번 독립을 겪은 지역이라는 특성상 탄자니아에서 잔지바르로 갈 때에는 출입국 심사가 있다고 한다.
잔지바르가 영국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것은 1963년이었고 탄자니아는 61년에 이미 독립을 이룬 상태였다.
원래 잔지바르는 10세기부터 알랍계 상인들이 살며 이슬람교가 주된 종교였다. 상인들은 땅을 소유하고 있었고 이는 어느 정도 권력과 재력이 있었음을 나타낸다.
영국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도 알랍계 주민들의 힘이 약해지지는 않아 소수의 알랍계 사람들이 아프리카계 사람들을 지배하는 구조를 유지했다.
독립의 기운이 높아지자 아프리카계 사람들은 영국인이 철수하고 난 다음에 다시 시작될 자신들의 노예와 같은 삶에 대해 불안감을 가졌고 이 불안감이 "알랍계 사람들의 재산을 뺏으면 된다"는 발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독립 후 진행된 선거에서는 아프리카계 주민들이 주로 지지한 정당이 과반수의 표를 얻었으나 의도적인 정당 연립 등이 있어 알랍계가 정치적 권력을 가지게 된다.
이에 분노한 아프리카계 사람들이 무기를 들고 폭동을 이르켰으며 그들은 9시간 만에 혁명을 이루었다. 결국 아프리카계 정당에서 대통령이 탄생했으며 그는 그 후 탄자니아 측과 비밀리에 논의를 진행하여 탄자니아에 합병되었다.
잔지바르가 온전히 독립국으로 있었던 기간은 약 100일이었다.
〇혁명 과정에서의 학살
잔지바르 혁명을 이끈 사람은 존 오켈로라는 우간다 출신 청년이었다. 카스트로에 심취하고 쿠바에서 훈련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300~600명의 무장한 아프리카계 사람들과 함께 알랍계, 아시아계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혁명 과정에서 5000명~1만 2000명이 희생되었다.
물론 희생자는 대부분 민간인들이었으며 당시 왕의 가족을 살해하면서 왕에게도 자살을 요구하는 등의 수법으로 9시간 만에 혁명을 달성했다.
그 후 존 오켈로는 고향인 우간다로 돌아갔고 악명 높은 이디 아민 대통령에 의해 살해됐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에 관한 정확한 정보는 없고 71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현대사에 대해 학교에서 배운 거라곤 기아나 말라리아, 빈곤 등의 문제와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정보뿐이었던 것 같다.
잔지바르라는 이름도 성인이 되고 나서 안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알 기회가 많이 없었던 나라였다.
어떤 강대국의 지배에서 벗어날 때 항상 인종이나 국가 내부의 종교 문제, 빈부 격차 등이 안정적인 정치의 걸림돌이 되는 것 같다. 선거나 평화적인 방법으로 잘 해결되면 좋지만 사람들의 불만이 터져 폭동이나 혁명을 겪게 되는 일이 종종 있다. 통치의 어려움, 식민지에서 벗어난 다음에 겪는 후폭풍이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건이다.
누구나 자신의 높은 지위와 인간다운 삶을 원한다. 그 바람이 불안이나 불만으로 변해가기 전에 진정시켜야만 천 명, 만 명 단위의 희생자가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정치인, 민간인 모두에게 가혹하고 잔인한 세상이구나 싶다.
그래도 잔지바르 혁명에 대해 말하자면 최소한 선거 결과에 대한 설명이나 대책, 아프리카계에도 배려한 정책을 내세웠다면 결과가 다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하지만 늘 드는 생각이지만 모든 게 역사가 되어 버린 2023년에 살면서 이렇게 말하는 건 쉬운 일이다. 어떤 정책을 내세웠어도 폭동은 불가피하지 않았을까 하는 절망적인 생각도 한편에서는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