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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09. 2024

연인戀人, 단상 #4

2023. 09. 19.


이야기가 액자식 구성이니까,

액자 안팎을 연결해주는 매개와 액자 밖 효종 10년 이후의 장현길채 삶을 보고 싶어.

두 사람이 살았으면 좋겠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에서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

이왕이면 붉은 실 끊어지지 않은 채로, 둘이 함께.



2023. 09. 20.


나는 길채에 대한 감정을 떠나 남연준이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자기가 말한대로 배운 것 따로, 사는 것 따로 할 줄 모르는 융통성 없는 인간의 한 전형이지 않을까 싶고, 그렇기에 개인적으로는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다만 남연준의 '올곧음' 이 지나치다 어떤 계기를 만나면 역적의 송도환처럼 변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들긴 한다. 송도환도 이상을 꿈꾸던 순진한 유학자였고 계유정난을 계기로 현실 속 이상의 구현이 현실의 폭력 앞에 좌절될 수 있음을 알고 흑화됐던 거 아닌가.


여하튼 연준은 자신이 배운 바를 임금에게도 요구하는 대담함을 보이지만 한편으론 이 사람에겐 언제나 인간보다 사상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제는 "그 사상의 가르침이 약자에 대한 억압의 근거가 될 때 눈 감지 않을까" 인 거지. 개인적으로 은애가 '그때의 진실' 을 연준에게 밝힐 때 연준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가 궁금한데, 이게 현실을 사는 자신의 연인과 공맹의 가르침 중 무엇을 더 우선시하느냐를 보여줄 거란 생각 때문에.


유길채가 지금 이장현이랑 이뤄지면, 유길채는 평생 도망 다녀야 한다.

소현이 온전하게 조선에 돌아올 때까지 이장현은 포로사냥꾼 노릇을 계속 할 텐데


구원무를 떠나 도망간다  ➡  조선에서 평생 도망 다녀야 함

청에 간다  ➡  9회에서 보여줬던 이장현의 줄타기 인생 유길채도 함께 해야 함

청에서 도망친다  ➡  조선에서도 쫓기고 청에서도 쫓기는...


이게 해피엔딩인가? 유길채의 삶을, 현실을 극중 맥락 속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살아야 사랑도 할 거 아닌가. 아무리 정인이 있다 한들 평생 이 땅에 발 붙이지 못하고 먼지처럼 부유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삶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연준이가 은애가 말을 한다 해도 오히려 얼마나 힘들었냐 보듬어줄 사람이지 않을까. 융통성이 없는 거지, 사람 자체가 악한 사람이 아니고 현실과 이상이 다르다는 걸 전쟁 참여 이후로도 꾸준히 본인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 같아서.


다만, 드라마 속에서 이걸 고민하는 장면을 보고 싶다. 은애가 두려워하던 위협이 망상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국가 폭력과 같은 위협이었고, 그 상황에서 연준이 자신이 평생을 배우고 따르던 규범과 가르침보다 내 눈 앞의 연인의 아픔을 보듬는 걸 보고 싶어.


장철을 비롯한 "뜻 있는" 선비들이 연준을 뒤흔들 경우는 어떨까? 이 부분도 되게 궁금하고 기대된다. 이장현이 그들과 대립하는 경우도 있을까? 사실 길현과 송도환에게는 없지만 연준에겐 있는 게 올곧고 이치에 밝은 은애인데... (어쩜 이름도 은애) 사랑이 있기 때문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겠지 싶고.


능군리에 어머니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더해보고 싶은데 일단 같이 덕질하던 분들과의 흐름 속에서 나온 의견들이 "전작부터 그런 경향이 좀 있었다," "아버지들의 질서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거다" 등의 여러 공감 가는 의견들이 있었다. (물론 더 있을수도)


한편으론 유길채와 경은애라는 인물들이 새로운 어머니상의 기준을 세울 것 같단 생각도 든다. 물론 어머니가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어머니 없이 자란 길채와 은애가 어떤 어머니가 되는지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2023. 09. 21.


매체 속 여성의 삶에 족쇄를 채우려 든다면 그 족쇄가 현실 여성의 삶에 부메랑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은데.


길채의 남장 장면 묘해. 카메라의 시선이 길채의 머리를 틀어올리고 있는 장현에게 가닿아 있는데, 그 시선이 누군가의 머리를 올리고 있는 자신이 생경하게 느껴져 보고 있을 장현이라 생각해도 묘하고,장현 몰래 장현의 모습을 꼼꼼히 들여다 보고 있는 길채라 해도 묘해.


길채가 장현을 따라가지 않고 원무와의 집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게 보는 입장에선 <갑자기> 가 되는데 사실 의도한 연출일 수도 있겠다 싶다. 구원무가 유길채는 놓아줬지만 이장현을 살려준다는 말을 한 적은 없기 때문에, 조선에서 구원무에게 죽임 당할지도 모를 이장현의 살리기 위해 유길채가 이장현을 보냈다는 해석 정말 너무 납득이 간다.


그렇게 생각하면 길채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나 아닌 다른 이들을 걱정하고 우선시했던 거다.

가족을, 자신을 도와줬던 구원무를, 그리고 이장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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