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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 Jun 09. 2024

연인戀人, 단상 #5

2023. 10. 03.


량음에 관해 개인적으로는, 로맨스 서사에서 장현을 오해하게 만들었던 건 있지만 그렇다 해서 무작정 욕하는 건 좀 보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따지고 보면 다 사정이 있잖아. 다들 인조, 도르곤, 칸도 이해해주면서 장채 좀 엇갈리게 했다는 이유로 원색적인 비난하는 건 너무 손 쉬운 결정 같아.



2023. 10. 04.


선공개를 볼수록 대장간에서 이룬 부가 다시 한번 풍비박산 나지 않을까 싶은데 일단 길채가 시작부터 유기그릇을 만들 때 화폐 녹이는 걸 개의치 않아 했단 점과 큰손이 되어가는 점에서 불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었던 것 같고 구씨가 무관인 것과 더불어서 혹시나 길채네 대장간에서 무기를 만든다는 소문이 돌아서 풍비박산이 나지 않을까 싶은데... 어떻게 될지?



2023. 10. 11.


삶을 살기 위한 선택에서 혼인을 하고 의도치 않게 납치되는 인물에게 불륜 잣대가 말이 된다고 보는가?


머리는 그 사람의 사회 내 위치를 나타낼 규범일 뿐 그 사람 자체를 말하는 건 아니잖아. 머리를 올렸다고 해서 유길채가 유길채가 아닌 게 아닌데.


유길채가 머리 올린 첫 상대가 이장현이 아니라는 이유로 유길채와 작가에게 헛소리하는 사람들... 자기는 아니라 해도 현실 인간에게도 사회가 씌운 규범 강제하고 그 인간을 둘러싼 환경 따위 알바냐 벗어나려는 노오력 안 한 개인 탓이지라고 할 것 같음.


여주가 납치 당했는데 머리 올린 거에 꽂혀서 난리 치는 인간들이 있는 2023년 한국.


길현, 길동, 길채.

이름 자체가 길 위에 서 있는 사람 같아서 좋아!


전쟁이란 거대폭력 앞에 가부장이란 하등 쓸모 없는. 물론 전쟁도 가부장제가 낳은 폭력의 형태 중 하나라는 말에 동의하지만, 구원무가 길채를 구하기 위해 어떤 짓을 하든 무력하기만 할 거란 생각이 들어.



2023. 10. 13.


길채가 원무 애인지 장현 애인지 모를 애를 낳는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다. 유길채라는 인간과 유길채의 자식인 게 중요하지 아비가 누구인 게 무슨 상관인가 싶고.


길채 혼인으로 아직도 정신적 불륜 염불 외우는 사람들은 헤테로 로맨스물이라 연인을 보고 있긴 한데 여주인 길채를 좋아하지 않거나 이입을 못하는 인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상하다.



2023. 10. 14.


이장현이 자기 입으로 나는 닳고 닳은 사내다 질리도록 이야기하고 여자 앉히고 술 마시는 거까지 보여주는데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길채가 더 결점 있는 거마냥 취급되는 거 되게 당황스럽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라고 으름장을 놓을만큼 높으신 분의 아내가 되어도 끌려가고 그걸 왕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의 처참함을 봐야 하는 거 아닌가?


길채 삶을 이해해보려는 노력하기 싫은 걸 괜히 배우에게 투영하기까지 하는 걸 목격.


드라마가 구구절절 설명해줬는데 뭘 더 해줘야 하는지 모르겠다. 망가진 국가 체제 하에서 주회인이 되어 고통 받을 백성보다 200년 종묘사직을 지키는 게 우선이었던 왕. 주회도 특정한 누군가가 아닌 불특정한 아무개가 영문도 모르고 끌려간다. 그런 상황 속에서 주인공도 당연히 끌려갈 가능성이 있는 거 아닌가?


원무와의 혼인 생활 속에서 길채가 원무에게 호감을 가졌었다 한들 그게 무슨 잘못인지 모르겠다. 구씨는 어쨌거나 한양에서 살아갈 삶의 터전을 마련해줬는데. 뭐 거기다 대고 구씨가 불쌍하다 하면 어쩔 수는 없는데 그렇다 해서 길채가 못 가질 감정은 아니지 않나.


왕이 머리를 찧을 정도면 백성의 삶은 더 처참했을 텐데 이전의 드라마들이나 교과서 등은 인조의 치욕'만' 드라마인양 보여줬었다.


길채가 뭘 잘못했는지

작가가 뭘 잘못했는지

그 논리를 이해해보려고 생각하는 중


전쟁이라는 국가적 폭력이 민중의 삶을, 특히 여성의 삶을 어디까지 옥죌 수 있는지 길채가 능군리 애기씨이던 시절부터 말했다. 할머니들이 애기씨들 모아놓고 '교육' 시키고 길채와 은애가 은장도를 놓고 서로의 삶을 언약한 게 작가가 심심해서 보여준 걸까? 바닥에 바닥을 찍고도 살아내는 유길채라는 인간의 삶이 궁금하지 않은가.


진짜 이장현도 가만히 있는데 이장현도 아닌 사람들이 이장현에 빙의해서 유길채 까는 거 웃기다. 분명한 건 이장현은 그런 사람들을 혐오할 거란 점임. 이해가 안 가면 그냥 그런 삶이 있나 보다 외웠으면 좋겠어. 사실 이장현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자기들이 보고 싶은 남주, 여주 틀이 있고 거기에 맞춰서 이장현과 유길채를 보니까 유길채를 까고 싶어지는 거지.


사람들에게는 지체 높은 종사관나으리의 아내가 됐는데도 청나라로 끌려간 유길채라는 인간의 안위보다 유부녀라는 위치가 더 중요하다. 주류가 이런 반응이라는 거에 환멸감이 들고 마음이 아프다. 드라마를 보고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 속에서 개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고자 발버둥치는지, 그럼에도 왕족과 사대부 또한 나름의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길채와 장현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등의 전개를 기대하고 있는데, 현실에서의 작품 밖 반응은 "여주가 어떻게 불륜을 하냐." 라니.


유길채를 향한 이장현의 사랑이 감정 그대로 흘러넘쳐서 이장현만 유길채를 사랑하는 것 같지만 유길채는 유길채의 방식으로 장현을 사랑하는 거고 그게 이성의 방식이라 무감해보일 뿐이라 생각한다. 난 솔직히 10화에서 구씨가 간통한 아내와 함께 도망간 이 운운할 때 구씨가 길채를 (사랑해서) 건드리진 못해도 이장현을 가만 둔단 소리는 안 했었기 때문에 기회가 닿으면 수를 써서라도 장현에게 '죗값' 을 치르게 하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길채도 그걸 알았으리라 생각하고. 감정과 순애보다, 이성과 현실이 앞서는 거. 그게 여주인 게 어때서.


연준이 "나는 배운 거 따로 사는 거 따로 할 줄 모릅니다" 라고 했던 거 새삼 멋지게 느껴져. 그 대척점이 임금이라 해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거에 기꺼이 맞서는 게.


여주의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프레임에 맞춰서 가부장 시선에서 '목 졸려도 싼' 인간으로 가정하는 게 여혐이 아니면 뭐란 말인지. 장현이도 결혼시켜서 길채와 평형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니라 길채가 결혼함으로써 닳닳사인 장현과 평형이 맞춰진 거고... 초반 장현이랑 '섬' 타던 여인들 뭘로 본 거지? 그 사람들 다 장현이가 거쳐간 사람들인데? "어떻게 여주가 감히 그런!" 과 같은 마인드가 보여서 당황스럽다. 솔직히 남주가 저런 모습 보이는 건 동서고금 내내 유구하지 않았나...


혼인을 한다 해서 연인이 되는 게 아니고 혼인을 안 한다 해서 연인이 안 되는 게 아닌, 제도와 규범의 타당성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달을 보라고 가리켰더니 손가락만 보며 난리가 난 게 답답하다. 드라마 내내 유길채가 얼마나 멋지고 사랑스러운 인물인지 이장현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이장현의 시선이 닿는 곳은 관심 없고 이장현이 가진 속성 키워드만 보는 게 속상하다. 량음이도 그랬잖아. 장현일 볼 수 없는 순간 길채라도 보니까 살 것 같다고.


한드판에서 '여주맘' 되는 거 그만하고 싶다.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여주를 받아들여줬으면 좋겠어. 이해가 안 가면 "아 저런 삶도 있구나." 라고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남주 순애는 사소한 장면으로도 나노 단위로 분석하고 퍼먹으면서, 도대체 왜.


량음이만이 길채가 모르는 장현을, 장현이 모르는 길채를 알고 있는 게 흥미로워.

그러면서 길채를 보며 장현을 보니 량음이 머릿속에서 길채는 곧 장현인가 싶고.


장현이 없는데도 길채가 잘 살아가는지 지켜보기 위해 길채 곁에 남았던 량음이. 결국 길채의 실종을 목격하고 증언한.


길채가 왜 원무한테 돈돈하겠나. 여전히 함께 살고 있는 영채은애방두네연준이 있고 대장간 사람들도 있고... 길채 어깨 위에 짊어진 삶이 몇인데 감정에 젖어 있을 시간이 있는 게 더 이상해.


장철이 장현 아버지라는 가정 하에 장현의 과거가 무지 궁금했는데 과거 풀어주면 사람들 남주에게 더더더 이입해서 불쌍한 남주 힘들게 한 여주.. 라고 더더더 팰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슬퍼.


원무 마음 이해는 가. 돈을 많이 벌어서 무얼 하겠느냐는 기대에 찬 물음에도 길채는 '원무와의' 행복한 삶이라는 대답을 안 해줬으니까. 직감으로 내내 느끼고 있었으리라 생각함. '이 사람이 내 곁에 머물면서 나를 사랑하게 된 날이 오긴 했을까' 라는. 결국 회의와 혐오가 길채의 시선과 사랑이 닿지 않는 자기자신을 향하는 것 같아서 슬프기도 하고, 더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 지는 거니 어쩌겠어 싶기도 하고.


그치만 결국 사랑한다면서 길채가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혀 내내 회의하던 모습에서

길채가 눈에 보이는 순간 자기 안위고 뭐고 눈 돌아버리는 장현과 비교될 수밖에 없고.


길채는 자신보다 딸, 언니, 가장으로서의 위치와 현실이 더 중요했던 사람인데. 그 현실에 발 디딜 수 있게 도와준 이에 대한 책임감으로서 원무에게 법적 남편 자릴 선물해준 거고. 그런데 그런 길채가, 불륜이라 한들 한번쯤 자기 마음을 앞세우는 게 뭐가 그리 큰 잘못인지 모르겠다. 자기 마음을 톺아보면서도 수백 번, 수천 번 갈등할 텐데... 나라면 네 마음이 시키는대로 따르라고 이야기할 것 같은데.


중요한 건 길채는 끝끝내 원무를 배신한 적이 없어. 원무가 길채를 배신했지.


길채는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자랑스러운 거야.

삶에 있어서 책임을 버린 적이 없었으니까.


연인 드라마가 극중극으로 이장현을 찾으면서 시작된다 해서 이장현만 주인공인 게 아니다. 드라마는 내내 이장현의 시선이 어디를 향하는가를 보여주었고 그 시선이 조선 백성, 소현강빈, 그리고 유길채에게 향했다. 시선 끝에 있는 이들이 어떻게 난세에도 역경을 이기는가를 봐야지 남주만 불쌍하다 그러면 답답할 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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