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계 필요와 불필요의 사이
책.습.관.
열등감은 때로 동기가 된다. 나한테 관계는 바로 그런 동기다. 관계가 서툰 나는 더 낳은 관계 방법이 없나 귀를 쫑긋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끊임없이 두리번거렸다.
초등학교 시절 열혈 학부모의 첫번째 국민학교 학생이었던 나의 머리는 아침마다 우리집 미장원의 헤어스타일리트 엄마 원장님 덕분에 색색깔 머리끈과 핀으로 뒤덮어 졌다. 기억이 뚜렷하진 않지만 4-5학년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반장이긴 했지만 지금으로 치면 야당에서 나온 대통령이었다. 국민학교 주변에 지어진 큰 단지의 넓은 평수 가득한 새 아파트 아이들 무리가 아닌 걸으면 20분은 걸리는 작은 아파트 단지의 작은 아파트에서 나온 반장이다. 내가 특별히 반장이 되고 싶어서 뭘 한 거 같진 않은데 워낙 덩치도 컸고 목소리도 커서 된 듯하다. 내가 반장인 것에 별로 탐탁치 않아 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 당시 우리반에서 공부도 좀 하고 집도 잘 산다고 추정되는 (더럽게 눈치도 없이 순진해서 그 아이들이 껴주지 않는 이유인지도 몰랐다.) 3-4명의 여자아들로 만들어진 그룹이었다. 어느날 그 아이들이 점심시간에 운동장으로 나를 불러내었다. 뭐 대충 기억나는 이야기인즉슨 머리를 그렇게 화려하게 묶고 다니지 말라는 거였다. 남자애들 꼬실라고 그러는거냐, 꼴보기 싫다. 이런 거였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여린 사람 같으면 왕따니, 따돌림이니, 학폭이니 했을 일인데 정말 황당한 건 내가 별로 기가 죽진 않았다는 거다. 왜 저러는건지 이해도 되지 않고 관심도 없고 들어줄 마음도 없었다. 웃기는 건 그 뒤로 난 머리를 하나로 질꾼 묶고 다녔다. 그 아이들 말 때문은 아니었던 것 같고 엄마가 하도 땡땡하게 묶는 바람에 눈이 위로 올라갈 지경이어서였던 것 같다. 어쨌든 서투른 나의 관계 능력은 따돌림한테 마저 철벽을 쳤다. 그래도 지금껏 기억이 나는 걸 보면 흔치 않은 일이긴 한가보다.
관계가 신뢰, 사랑, 믿음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유명한 소설들은 대부분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수많은 상담가들도 없을 것이다. 관계는 피곤한 것이다. 관계로 인해 우리는 질투, 경쟁, 불안을 느끼게 된다. 그런데 관계가 없이는 살 수가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원래 나약한 동물이라 그렇기도 하고 관계를 조금만 하면 삶이 편해지기도 한다.
내가 쇼핑한 관계는 영원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가족관계도 영원하지 않다.
한살 아래 동생이 있는 나와 부모님의 관계도 내가 태어난지 1년후에 변했고, 내가 결혼한 후 나와 부모님, 동생과의 관계도 변했다. 동생이 결혼한 후 모두의 관계가 다시 변했고, 내가 아이를 낳고, 동생이 아이를 낳고 또 변했다. 가족도 이런데 다른 관계는 말해서 뭘 할까.
열심히 하는 동문회장들이 들으면 힘빠질 소리지만 나는 동문회는 나가지 않는다. 멀리 살아 그런 것도 있지만 한국에 있었다 한들 특별히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동문회가 필요하다고는 생각한다. 동문회가 있으려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어야하니 감사할 일이다. 그런데 나는 동문회에 갈 정도의 관계 능력은 없다. 관계를 즐기는 것 같지도 않고 넓은 관계도 없는 것 같은데 왜 교육에서 관계가 중요하다고 노래를 부르는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나한테 즁요한 관계는 현재의 나와 가까운 관계들이고 흘러가는 관계다. 그게 내가 관리할 수 있는 한계다.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비교)를 통해서 나는 내가 그다지 사회적이고 않고, 외향적인 성향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20년이 흘러서 옛 직장 동료, 학교 동문한테 연락할만큼 재미난 이야기도 없고, 부지런하지도 못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내 주변 관계를 집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가게 아주머니, 매주 들르는 도서관 사서c, k, w, 애들 데리러 가서 학교에서 만나는 학부모들, 아이들 친구 부모들, 한국학교 선생님들, 남편 직장 동료분들 그 정도다.
둘째를 낳고 그만 둔 마지막 직장 동료들과는 그나마 일주일에 한번 단톡창에 메세지가 뜨는 덕에 간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이상은 진도가 나가지진 않는다.
나는 미국사는 사람치고는 흔치 않게 종교활동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삿짐 나르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를 사람도 없다. 내 수준에 섣불리 불렀다가 손님 접대한다고 이사는 하지도 못할 판이다.
물론 나에게도 절친이 있다. 밤낮이 바뀌고 각자 삶이 바쁘니 1년에 2-3번 수다하기 쉽진 않지만 한번 전화기를 붙잡으면 2-3시간은 거뜬한 사이다. 서로의 흑역사, 성장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사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 연락이 특별히 없어도 서운하지 않고 어쩌다 연락이 온다면 더없이 반갑고 고마운 관계다.
세상에 나같은 관계를 하는 사람만 있으면 안 된다. 동문회장 같은 사람도 있고, 이삿짐에 연락할 사람이 수십명은 되는 사람도 있고, 안 불러줘서 서운한 사람도 있을테다. 각자 할 수 있는 관계가 다르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조금씩 반경을 넓혀가면 된다.
미국에 사는 나는 한인들과의 관계가 어렵다.
길을 가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 한국인을 만나면 우선은 반갑다. 한국인이니 더 잘해줘야할 것 같기도 하고 친하게 지내야할 것 같지만 막상 상대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고, 기대에 못 미치는 관계가 될 수도 있어 조심스럽다. 한국도 아니고 타국에서 같은 한국인에게 실망하면 그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얼마 안되는 한국인들 사이에도 잠깐 있다가는 주재원들과 자리잡고 정착해 사는 교포들 사이의 묘한 거리감이 있다. 실제 이민와서 정착한 많은 교포 중에는 주재원 출신도 많은데도 이런 문화가 존재하는 이유는 관계 때문이다. 소모품 같이 쓰이는 관계와 이득을 가져다 주는 생활템 같은 관계 사이에서 감정이 상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다. 관계에 서툰 나로서는 완전히 알 수 없는 영원히 남는 자와 언젠가는 떠나갈 자, 먼저 온 자와 나중에 온 자, 끈 떨어진 자와 끈을 붙들고 있는 자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다. 우리 큰 꿀꿀이 (큰꿀)는 학교에서 운영하는 무료 과외봉사활동을 한다. 좋은 학군 덕분에 한인들도 늘어 과외를 받으러 오는 한인 학생들이 점점 느는 모양이다. 한인 학부모들은 교육열이 높으니 주차장에서 아이들만 내려주는 다른 부모들과 달리 학습소에 아이들과 함께 들어온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특정 봉사자를 찾기도 하고, 우리 아이처럼 한국어를 하는 아이가 있다면 고정으로 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과외가 끝나도 여러가지 질문이나 다음 수업에 대한 계획, 수업 외의 다른 내용을 묻기도 한다고 한다. 미국에서 자란 큰꿀이는 한국에 가고 싶어하고 동경했다. 그런 큰꿀이가 이런 한국의 교육열과 한국 학부모들과의 관계를 경험한다는 것은 큰 배움이다.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감정을 배우는 중이다.
아이들도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