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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은 Mar 16. 2023

시차


우리의 대화에는 시차가 있다. 눈뜨는 시간이 다른 너와 나. 나는 항상 너를 기다린다. 나쁘지 않은 기다림. 너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 행복하다. 기다리고 있으면 반드시 오는 네가 기뻤다. 약속된 시간이 기뻤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고 지나가듯이 말하면 네가 "다음에 같이 하자."고 말해주는 것도 기뻤다. 우리에게 다음이 있다고 해주는 것이 좋았다. 그 말이 뭐가 그렇게 좋아,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런 말도 기쁜 사람이었다.

네가 처음 사랑한다고 말해주던 날은 감격해서 대답조차 못 했다. 그러고선 달력에 표시까지 해뒀다. 처음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날. 사랑해도 된다고 자격을 부여받은 날. 심장이 발밑까지 떨어졌던 날. 이 마음이 사랑이어도 괜찮은 날.

언젠가 꿈속에서 뿌연 안개에 빠져 누군가를 잊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한참을 헤매다가 숨이 목 끝까지 차올랐고,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에야 선명히 네 얼굴이 떠올라서 안심했던 날이 있었다. 그렇게 네가 곁에 있으면 안심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이 생겼었다.

그런 나에겐 마음이 아픈 날, 일찍 잠드는 습관이 있다. 잠으로 벗어나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간편하고 단순한 도피다. 문제가 있다면, 이른 새벽에 깨어나 버린다. 너와의 시차가 더 길어진다. 어둡고 차가운 새벽에 눈 떠버린 나는 더더욱 우울해지고 고장 난 시계처럼 벌어진 시차는 좁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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