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지 않은 것들을 귀하게 여기는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싶어요. - 류이치 사카모토
인터넷 소설을 좋아하던 십 대 시절의 나는 블로그에서 연재하는 수많은 작품을 읽으며 웃고 울었던 때가 있었다. 왜 사랑이 어렵고, 당사자들에게 잔인한 지, 나라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종류의 사랑이지만 종국에는 왜 다시 돌아가는지 생각의 나래를 펼쳤던 시기. 그때 나는 우연히 그 글을 연재하고 있던 블로그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만나게 되었다.
그 곡은 유명한 류이치 사카모토의 ‘Merry Christmas Mr. Lawrence'였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이었고 작품 속 배경도 추운 겨울이었다. 잔잔한 도입부를 시작은 흰색으로 물든 설원을 연상케 했고 점점 고조되는 멜로디는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상상하게 했다. 나는 처음 듣는 곡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열다섯 살 때부터 나는 류이치 사카모토의 거의 모든 음악을 듣게 되었다. 침착하지만 역동적인, 그 모순적인 멜로디에 흠뻑 취하면서 말이다. <Rain>, <Last Emperor>, <Railroad Man>은 그의 섬세함을 엿볼 수 있는 명곡이다. 성악가와 작업한 <四季>, <Flower>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계절을 보고 싶게끔 만든다. 따사로운 오후에 독서를 하면서 듣고 싶은 <M.A.Y in the Backyard>는 가라앉은 기분도 들뜨게 해 준다.
나는 사카모토의 음악을 틀어놓고 오랜 친구와 깊은 속내를 털어놓거나 언니와 연신 감탄을 내뱉은 적이 많다. 흘러나오는 곡과 절묘한 상황이 연출되면 운명을 만난 사람처럼 환호성을 질렀고, 익숙하지만 질리지 않는 곡을 듣고 또 들으며 이미 말했던 이 곡의 장점을 또다시 말한다. 그 대화 속에는 노래 외에도 젊은 시절의 훈훈하고 풋풋한 사카모토의 모습과 검은색 목폴라를 입고 흰머리를 넘기는 사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무대, 우리 집에 붙어있는 그의 전시 포스터 등에 대해 쉴 새 없이 말하며 끝나지 않는 소녀들의 밤을 보냈다. 이처럼 그의 음악은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인생 톱니바퀴 사이사이에 가루처럼 달라붙어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를 더욱 좋아하게 된 이유에는 그의 인생철학도 한 몫한다. 음악 저작권을 독점 관리하는 일본 음악 시장에 대해 목소리를 냈고, 잔여 지뢰 제거 활동을 위해 자선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반핵운동에도 주도적으로 나섰고 일본 내 부부별씨 제도 도입에 찬성표를 던지기도 했다. 조용한 일상을 추구했지만 자신의 유명세를 선한 행보에 사용하는 모습에서 그를 더욱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사카모토는 내 곁에서 피아노 선율을 몸에 감고 있던, 내적 친밀감이 강한 사람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어느 순간 나는 사카모토의 상태가 위중하다는 사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가 쉽사리 이승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그는 익숙한 사람이었고, 나의 영원에는 언제나 사카모토가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을 진실처럼 믿었기 때문이다. 그저 몸 상태까지 대중에게 알려져서 꽤나 심란하고 곤란할 것이란 걱정만 했을 뿐이다.
오랜 투병 생활, 식지 않는 열정, 계속되는 창작에 대한 고민, 여전히 사랑하는 음악. 그의 말년은 질병과 음악으로 색칠되었다. 마치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죽기 전까지 글을 썼다던 일화를 생각나게 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항상 그랬다. 두려운 죽음 앞에서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들. 사카모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러 번 수술을 받고 쇠약해진 몸이 되었어도 앨범을 발표했다. 제발 치료만 잘 받아서 앞으로 조각해 나갈 미래에 그가 있기만을 바랐지만, 어쩔 수 없이 사카모토의 고집마저 좋아하게 됐다. 내가 사카모토를 사랑하는 여러 카테고리에는 멈추지 않는 그의 음악 사랑도 있으니 말이다.
2023년 3월. 류이치 사카모토를 사랑하는 나와 언니, 친구가 셋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감자전을 젓가락으로 찢어먹고 입 안에 맑은 액체를 털어넣으면서 우리는 그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곧 그가 영원한 음악을 위해 돌아오지 못하는 길로 향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착잡해진 우리는 작은 집에 모여서 그의 노래를 들었고 끊임없이 그를 추억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람이 떠난 것 같아.”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사카모토는 우리에게 친숙하기 그지없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도 그가 이승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씁쓸하기만 했다.
그가 이승의 사람들 곁을 떠난 뒤, 나는 <전장의 크리스마스>와 <마지막 황제>를 보았다. 왜 그전에는 이 영화들을 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까.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 “메리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라는 대사와 선율이 흘러나오자 그간 로맨틱한 느낌으로만 이 노래를 들었던 것이 아쉬웠다. 요동치는 전시가 주는 아픔이자 엇갈리는 두 인물의 짧은 우정이 담긴 곡이었는데 말이다. <마지막 황제> 역시 그랬다. 유명한 멜로디가 창문을 두드릴 때면 한 사람의 폭풍 같은 인생을 한 곡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의 인생도 유명세와 창작, 사소한 문제들로 인해 혼란스러운 찰나들로 점철되었겠지.
한 번도 써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편지로 마무리한다. 생전에 써서 보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았을 것을 내가 너무 폐쇄적인 상태로 그를 좋아했나 보다. 더 후회하기 전에 이곳에 몇 자 남겨놓는다.
당신이 한국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내용이 많더군요. 인터뷰를 포함해서 당신은 많은 선물을 남기고 갔네요. 하지만 양이 지나치게 많아서 전부 다 매듭을 풀어보지는 못했어요. 아마 평생 가도 모든 선물의 내용물을 확인하지는 못할 거예요. 그걸 다 알게 되면 당신이 더는 이승에서 살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에 매우 슬퍼질 것 같거든요. 언젠가는 이 슬픔과 공허함도 지나가겠죠? 아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당신 덕에 ‘크리스마스’라는 단어를 더욱 로맨틱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실은 당신이 영화 음악 작업 중에 떠올렸던 ‘크리스마스’는 그런 분위기를 담고 있지는 않았겠죠. 제 식견이 이렇게나 짧습니다. 그래도 당신 덕에 섬세하고 기분 좋은 기운 하나는 얻었으니 다행입니다. 참 고마워요. 피아노를 통해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준 것도요. 그것이 당신이 가진 유려한 힘입니다.
다음 생에는 돌고래로 태어나거나 풀과 나무와 교류하고 싶다고 했지요? 부디 그러길 바랍니다. 당신의 음악은 내 영혼의 뿌리에 각인되었어요. 지면에 닿으면 사라지는 눈이라도 결국 존재했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하지요? 멜로디는 곡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 존재는 마법가루처럼 계속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편안한 곳에 잘 도착했나요? 그곳에서는 빗소리도, 풀벌레 소리도... 아니에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좋아한 당신이니 그저 내가 여기서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마음껏 들었으면 합니다.
당신이 남긴 말처럼 나도 불완전한 것들을 존중하면서 지내볼게요. 말처럼 쉽지는 않겠지요. 언젠가 돌고래가 된 당신 혹은 연약한 식물이 된 당신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볼게요. 지금도 귓가에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Merry Christmas Mr. Rawrence>가 흘러나오네요. 한 번쯤은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남기며 이만 줄여볼게요. 애정하는 만큼 당신을 아낍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류이치 사카모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