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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낭만 Nov 13. 2023

요란스러운 네가 싫어

사당



“나는 사당 싫어해.”


초록색 2호선은 온통 싫어하는 역의 이름만 줄줄이 늘어놓은 듯싶다. 나는 사당역과 문래역, 강남역 등 정확히 22살 때 자주 지나다니던 통로를 기피하게 되었다. 특히나 거주지였던 사당역은 아직까지도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적극적으로 찾아가지 않는다.


그 해는 몸에 적색 경고가 켜진 해였다. 언니와 사당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얼굴에는 두드러기 같은 여드름이 송골송골 생겨버렸다.(단 한 번도 피부로 스트레스받은 적이 없었다) 이건 약과였다. 어느 날부턴 가는 징그러운 포진이 오른쪽 허리를 촘촘하게 감싸고 있기도 했다. 고작 피부에 뭐가 난 것뿐인데 체력과 면역력은 점점 0에 가까워졌고, 급기야 허리가 칼로 난도질당하는 것만 같은 고통이 들이닥쳤다. 병원에 가서 안 사실. 그건 대상포진이었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생기는 병.


내가 숨이 벅찰 만큼 힘들게 지냈던가. 대상포진이 끔찍스러운 아픔을 주자, 나는 곧장 교수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집으로 왔다. 그날 빨간 버스에 몸을 실은 채, 후두둑 떨어지는 비를 보며 나의 현재 상태를 곱씹어보았다. 물론 울기도 했다.


당시 나는 학과 일과 관련하여 감투를 3개나 주체적으로 두른 상황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워 일부러 결정한 일이었다. 다음 해 떠날 어학연수를 위해 아침마다 강남에 위치한 학원으로 가서 수업을 듣기도 했다. 직장인들과 수업을 듣고 나오면 곧바로 학교에 가서 전공 수업을 들었고 일주일에 두 번씩 저녁에는 학과 회의나 편집부 세미나에 참가했다. 끝나면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하거나 일본어 단어를 외웠다. 밤이 더 깊어지기 전에 막차에 탑승해서 내적 친밀감을 부단히 쌓기도 했다.


나열해놓고 보면 여러 가지가 있어 많아 보이지만 나는 딱히 벅차지 않았다. 이 정도쯤은 병을 불러일으킬 원인이 되지 못했다. 이렇게 살 거나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조금 억울해졌다. 내 몸만 유난인 건가? 그 유난이 싫었다. 쉬는 게 끔찍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작은 방에 누워서 느린 시간을 셌다.


감각은 피부가 아닌 심장 저편에서 느껴지는 것이던가. 나는 사당에 지내면서 자주 몸이 아팠다는 것을 깨달았다. 빨간 버스를 타고 내리면 앞 다투어 자랑하기 바쁜 형형색색의 간판이 싫었고, 술에 취해서 소리를 지르거나 엽기적인 걸음을 걷는 사람이 싫었다. 오래된 오피스텔의 구린 화장실과 낡았음에도 빼지 말라는 집주인의 성화로 자리만 차지한 체리색 서랍장이 싫었다. 고요하지 않고 소란스러운 역 주변이 싫었다. 온통 싫어할 만한 요소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빨리 일본으로 떠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짜증 나는 사당.


상경의 시작. 더럽게 험난하다. 고초를 겪어서인지 내가 가진 사당의 이미지는 두꺼운 먼지를 날리는 아스팔트와 공기로 굳어졌다. 마음에 안 드는 집, 그보다 더 마음에 안 드는 주변. 차라리 칼바람이 부는 학교나 내 정서와 딱 붙는 광화문이 더 좋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은 딱 잠만 자는 곳. 일말의 정도 필요 없다.


집에 애정이 없으면 다 싫어진다. 설상가상으로 사당에 오고 나서 몇 달 뒤, 언니가 일본으로 떠나게 되었고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언니와는 이리 멀리도 떨어져 본 적 없었는데. 진절머리 나는 공간에 혼자 남겨지자 나는 제대로 된 청소도 하지 않게 되었다. 50리터 봉투에 꽉 담긴 쓰레기가 신발장에 누워 있었고, 배달음식으로 인해 박스가 산처럼 쌓여 있었다. 먹는 것도 헐거워졌다. 냉장고 냄새가 역해서 물 외에는 아무것도 두지 않았고, 가끔 본가에 갈 때만 따뜻한 밥을 먹었다. 내 몸도, 내가 머무는 공간도 어느 하나 돌보지 않았다.


새해가 되었다. 당연히 사당집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지 않았다. 나는 이 지긋지긋한 곳으로부터 떠날 채비를 했다. 어디 하나 사랑이 묻어있지 않은 공간. 소란스러운 발걸음과 눈을 시리게 한 간판 조명. 성격 더러운 친구와 관계를 토막 내듯 나는 미련도 없이 사당을 떠났다.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이상, 이따위 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테다.


그로부터 다시 1년이 흘러, 나는 일본에서 돌아왔다. 귀국 후, 환영의 의미로 맛있는 곱창을 사주겠다는 대학 선배의 연락을 받았다. ‘낭만이가 사당에 살았었지? 여기 알아?’ 물음과 함께 선배는 곱창집의 정보도 함께 동봉해서 보냈다. 사당역 인근이었고, 내가 지내던 오피스텔과 불과 5분 거리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당에서의 일상은 악연과 같아서 일부러 찾아가 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선배의 호의를 받으러 그쪽으로 걸어가야 한다니. 내키지 않았지만 선배와 나눌 즐거운 대화를 위해 몸을 일으켰다.


초록선 노선을 타고 가는 길. 사당역은 점점 가까워졌다. ‘사당, 사당역입니다.’라는 안내음이 익숙하고도 생경하게 느껴졌다. 추위로부터 피부를 지킬 패딩을 단단히 여미고 출구까지 뻗은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디뎠다.


원래 과거는 미화되는 법이지. 나는 사당역 출구로 나오면서 끔찍하게 여겼던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싫지만 아련했다. 왜? 왜 여기가 아련한 거야? 고작 1년 조금 넘은 시간이지만, 변한 거라곤 하나도 없었고 내가 싫어했던 조명은 색이 더욱 짙어졌고, 사람들은 바글바글 들끓고 있었다. 어이없는 웃음이 비집고 튀어나왔다. 너무 싫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당을, 세상에서 가장 엿같은 지역으로 낙인찍었는데 마음 한쪽이 푹 가라앉는 느낌을 받다니.


고소하고 쫄깃한 곱창과 알싸한 맥주를 배불리 먹고 마신 뒤, 나는 사당에 살았을 적 자주 들었던 노래를 재생했다. 낯선 서울에서의 시작, 상경의 고단함, 악착같이 지냈던 이십 대 초반, 혼자라는 서러움, 처음으로 싫어하게 된 지역. 모든 단어가 사당으로 모인다. 서투름도 낯섦도 사라진 현시점에서 돌이켜보면 손에 잡히지 않는 연기처럼 나뒹구는 것들. 그때와 많이 달라진 나. 사당을 떠나오면서, 나는 우당탕탕 험난했던 그 시절을 꺼내서 반복 시청했다. 그리고 단일한 결론을 내렸다.


온통 처음 만져보는 부품이라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아 그토록 미워했었나. 그렇다 해도, 난 여전히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의 험난한 상경기를 다시 마주하기 싫은 만큼. 그러니 앞으로도 ‘피치 못할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후련한 마음으로 사당에 갈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어떡하냐, 난 네가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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