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제야 Jul 25. 2023

이혼 후 남은 것들

마지막 정리

 

 시골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가장 처음으로 침구를 싹 다 바꾸었다. 떠날 때 그대로 널브러진 침구를 베개까지 한데 싸 모아 버리고 새로 주문한 사각사각한 베딩을 깔았다. 오롯이 내 취향인 색감과 촉감, 그리고 늘 갖고 싶던 사각거리는 무봉제 이불.

 건조기에서 갓 꺼낸 뜨끈하고 좋은 냄새가 나는 새 이불을 가만히 안고 있으니 지난 몇 달간의 긴장이 사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시작의 포근한 향.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한 가지씩만 바꾸기로 결심했지만 몸이 먼저 움직였다. 빨리 집을 새로 단장하고 싶어서 안달이 나 닥치는 대로 쓸고 닦고, 이리저리 배치를 바꿨다.

 안방에 새로 칠 할 고운 페인트가 도착했고, 그가 주로 앉아있던 가구는 싹 다 헐값에 팔거나 버렸다. 공간이 비어갈 때마다 새로 채울 나와 아이의 생활이 한 움큼씩 와닿았다.  


 우리 집. 아이와 나의 고운 집.




 집을 가져오게 되어 다행이었다. 나는 재산분할로 집을 가져오면서 양육비를 일시불로 받는 것으로 갈음했다. 아이가 19세가 될 때까지의 비용을 계산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금액이지만, 나는 이것이 훨씬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결혼생활에 책임감이 없던 사람이 이혼한다고 책임감이 생기겠는가. 매달 양육비 입금일을 체크하며, 혹여나 그가 '먹튀'를 할 경우 몇 달간 그 내역을 모아 이행명령이니 소송이니 할 생각만 해도 피곤했다. 양육비 못 받을 걱정을 왜 하느냐고?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도려낼 사람이니 깔끔하게 안 얽히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았다.


  속행으로 진행된 2차 조정 기일 날, 그는 역시나 오지 않았고 나와 내 변호사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1차 조정기일 때 나왔던 현실적인 조정안으로 상대 변호사에게 사전에 제안을 했고, 그는 또 조정기일 당일이 돼서야 답변을 했다. 

 별지품목으로 작성된 반환 요청 물품들. 그는 마지막까지 구차하게 티브이와 리클라이너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혼 진행 중 이미 자신의 짐을 다 가져갔고, 심지어 공구함까지 챙겨 갔음에도 가져가고 싶은 게 생각났나 보다.

 티브이는 아이가 가끔 보기 때문에 딱 잘라 거절했고, 리클라이너는 하필 그 조정기일날 중고판매 예약이 되어있어 그 역시 거절했다. 결국 그가 받아가는 것은 자동차 키(내가 갖고 있던 것)와 질구레한 전자기기 장비였다.

  

 가 보낸 아이의 카시트가 도착했다. 아이도 없는데 대체 왜 카시트를 가져간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로서 당장 주고받아야 할 물품의 처리는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집 명의 이전과 통장정리. 숫자로 이혼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모든 서류를 사전에 준비해 두었다. 차근차근 법무사와 소유권 이전 등기를 준비하고, 은행 방문 예약을 했다.

 하나씩 어려운 일을 해결할 때마다 조금 더 어른이 되는 기분이다. 이제는 내가 혼자서 해나가야 할 크고 작은 문제들을 처리하며 나는 진짜 홀로서기를 한다.


판도라의 상자 바닥엔


 법원에서 발행한 최종 조정조서를 받자마자 구청에 가서 그를 가족관계에서 추방해 버렸다. 창구 직원은 사무적인 말투와 딱딱한 표정으로 내가 준비해간 서류를 훑어보았다. 이혼신고를 하러 왔다는 말에 '아 그러세요' 라며 무표정을 유지하며 전산에 이것저것 입력을 했다. 처리를 기다리는 동안 데스크 앞에 붙은 자질구레한 안내문들이 눈에 들어왔다.


 '혼인신고 기념사진 포토존 안내'

 나도 어느 구청에서 이런걸 찍은 적이 있었는데. 더운 유월의 어느날 혼인신고를 마치고 촌스러운 포토월에서 해맑게 사진을 찍었었다. 왜 이혼신고 기념 포토월은 없는걸까. 결혼보다 더 어려운 길을 헤치고 나와 마침내 종지부를 찍는 날인데 말이다. 


 호적제가 폐지되었다 해도 '호적에서 파버린다'는 표현처럼 단칼에 그와의 서류 정리를 마치고 나오던 길. 문득 첫 번째 조정기일 생각이 났다.

 오늘처럼 쨍한 햇볕이 내리쬐는 텁텁한 도로 위를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걸어가던 그날의 나를 만난다. 벌써 과거가 되어버린 슬픈 나, 긴 터널을 지나 마침에 그 끝에 도달한 장한 나.

 마음으로 나 자신을 안아주며 스스로를 격려한다. 이젠 다 지났어. 더 이상 아픔도, 후회도 없이 아이가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시골 햇볕에 구릿빛이 된 아이와 함께 우리의 작은 집을 가꾼다. 가 잘 드는 곳으로 장난감을 모두 옮기고, 아이가 잠든 밤에는 음악을 틀고 페인트칠을 한다.

 이웃 김 씨 아저씨가 선물한 채송화를 예쁜 화분에 옮겨 심고, 친구가 분양한 식물을 여기저기 놓았다. 로운 인생의 생명력에 괜스레 벅차오른다.


 그의 판도라의 상자를 열던 날, 나는 내 인생이 끝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상자 바닥에 마지막에 남아있던 것, 이혼 후 내게 남은 것은 결국 희망이다. 이미 잃은 것은 잃은 것이고, 지나간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저 내 앞에 놓인 감사한 것들을 마음껏 누리며 하루만큼 더 행복할 내일을 기대한다.


 

타이틀 이미지

ⓒ This Ivy House , 출처 Tumblr

매거진의 이전글 시차는 있어도 오차는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